한반도의 허리를 잘라놓은 철조망을 걷어내고 열차가 처음으로 휴전선을 넘기까지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지뢰를 골라내고 노반을 닦아 철로를 놓고 역사(驛舍)를 번듯하게 세우는 데도 7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지만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철도도로 연결사업이 남북합의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 2월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그 후 진전이 없었지만 6.15정상회담이 사업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 7월 31일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연결에 합의하면서 막이 올랐다.
그 해 9월 1일 제2차 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도로 연결에 합의하고 같은 달 18일에는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기공식이 거행됐다.
2002년 4월 초에는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에 각각 합의하면서 같은 해 9월 18일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사업의 착공식이 동시에 열렸다.
한반도 동서에 놓인 도로는 2004년 12월부터 이용되면서 금강산과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통로가 됐지만 철도는 수 차례 시험운행이나 개통에 합의해 놓고서도 군사보장의 벽을 넘지 못해 실천에 옮기질 못했다.
실제 남북이 그동안 합의문이나 공동보도문에 열차 시험운행의 시기를 넣어 합의하고도 지키지 못한 게 5차례 안팎이나 되며 2004년부터 매년 합의와 불이행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처음 명문화된 것은 2004년 3월 5일 제8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에서 `올해 안에 경의선 개성-문산, 동해선 온정리-저진(제진) 사이 가능한 구간에서 철도시험운행을 진행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또 2004년 9차 경협위 때는 시험운행을 2004년 10월, 개통을 2005년으로 잡았고 2005년 7월에는 10차 경협위와 그에 이은 철도도로연결 실무협의회 5차회의에서 그 해 10월에 시험운행을 하기로 각각 합의했지만 무산됐다.
이어 작년 5월 12일 제12차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에서는 같은 달 25일로 시험운행 날짜를 처음으로 잡으면서 기대를 높였지만 하루 전날 북측이 군사보장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무기연기하면서 또 성사되지 못했다.
우리측은 이에 작년 6월 제12차 경협위에서 열차시험운행을 8천만달러 어치의 경공업 원자재 제공사업의 이행조건으로 연계해 합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께 열차가 오갈 수 있는 추진동력을 확보해 놓았지만 그에 앞선 7월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무산됐다.
이 과정에서 작년 연초부터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방북을 추진하면서 열차를 이용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시험운행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DJ의 방북 역시 미사일 사태로 무기연기됐다.
정부의 노력은 올해에도 이어지면서 지난 2월말 7개월만에 재개된 제20차 장관급회담에서 상반기 내 시험운행에 합의하고 지난 달 제13차 경협위에서 5월17일로 시험운행 날짜를 잡았다.
이런 남북 당국의 노력은 통계가 그대로 보여준다.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접촉만 해도 2000년 7월 이후 61차례에 걸쳐 196일 간 이뤄졌다. 시험운행까지 합하면 거의 200일을 얼굴을 맞댄 셈이다. 특히 밤샘 협상도 적지 않았다.
남북장관급회담 및 실무대표 접촉이 21차례에 82일로 가장 많았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한 2002년 4월 임동원 대통령 특사의 방북을 포함한 특사회담이 2차례에 걸쳐 7일 간 있었다.
또 경협위 및 위원급 접촉이 20차례에 63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 실무협의회 및 실무접촉이 18차례에 44일간 이뤄졌다.
그 동안 철도연결에 투입된 비용도 5천454억원이다.
남측 구간에는 ▲경의선 철도 914억원 ▲동해선 철도 1천144억원 ▲경의선 철도 출입사무소(CIQ) 260억원 ▲경의선 공용 야드 840억원 ▲동해선 공용 야드 487억원 등 모두 3천645억원이 투입됐다.
북측 구간 공사비용으로는 대북 자재.장비 차관으로 1천523억원이 제공됐고 이에 따른 수송비 등 부대 비용 286억원 등 모두 1천809억원이 들었다.
이번 시험운행에는 15억원 안팎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로 곳곳에는 공사에 투입된 우리 측 인력들의 땀도 배어 있다. 철도연결에 참여한 우리 측 인력은 연인원 7만3천900명이나 된다.
특히 공사구간 중에는 비무장지대 등 민간인 접근이 통제된 구역이 많은데다 지뢰제거 작업도 필요했던 만큼 군인들의 노고가 컸다는 후문이다.
(서울=연합뉴스) prin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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