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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9시뉴스 김경란의 굴욕

읽을 것 없는 신문에 볼 것 없는 방송뉴스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에서 이종격투기를 능가하는 결투장면이 방영되었다.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끌려간 대조영이 당군 제일의 무사 우골과 생사를 건 무술시합을 벌인 것이다. 대조영이 우골을 극적으로 쓰러뜨리자, 카메라는 그와 중국 유일의 여자황제 측천무후의 얼굴을 번갈아 클로즈업했다. 순간 국민원로는 대조영과 무측천이 내연의 관계를 맺을 듯하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야 말았다. 채널번호를 잠시 착각한 결과다. 이게 다 SBS 때문이다.

연예가소식도 아니고 언론계동향도 아닌 이상한 뉴스가 전해졌다. ‘대조영’과 마찬가지로 KBS 1TV에서 전파를 타고 있는 인기드라마와 관련된 보도다. 평일 8시 25분에 방송되는 일일연속극 ‘하늘만큼 땅만큼’이 KBS 2TV로 이사를 갈지도 모른다나.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을 상업광고가 가능한 채널로 옮기겠다는 뜻이다. 시청료 인상이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발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KBS가 궁리해낸 고육책인 셈이다. 물론 한국방송 입장에서 고육지책이다. 시청자들 판단으로는 편법이고 잔머리다.

번호이동성 제도가 방송콘텐츠에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드라마가 무슨 휴대폰인가? 그럴 바에는 아예 타방송사와 트레이드를 시도해라. 광고 몇 개 옵션으로 넘겨받고 MBC나 SBS의 시청률 저조한 프로그램과 맞바꾸라는 소리다. 작년 연말 입이 귀밑에 걸린 채 미칠이 최정원과 다정하게 팔짱 끼고 각종 시상식에 나타나더니만 정연주 사장이 하다하다 이제 별짓을 다한다. 광고수주가 급감했으면 광고영업을 더욱 부지런히 뛰던지,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 조직의 군살을 제거하던지 하면 될 일이다. 수백만 시청자가 재미있게 시청중인 연속극을 갑자기 채널을 변경해 방송하겠다니? 대충 사이즈가 맞는 말씀을 하셔야지. 별꼴이다 정말! 공영방송 총수가 아냐. 일개 단말기 대리점 주인이지.

정사장의 잔꾀보다도 훨씬 웃기는 게 KBS 보도국의 반응이다. 시청률 1위의 드라마를 2TV로 차출하겠다고 하자 9시 뉴스를 제작하는 보도본부에서 펄쩍 뛴 모양이다. 이전작업을 추진하는 편성기획팀과 마찰을 빚은 눈치다. 내가 방송국 사정에 정통하지 못한 터라 보다 구체적 갈등양상은 파악하지 못했다. 허나 대충 그림은 나온다. 그동안 일일드라마 덕분에 KBS 9시 뉴스 장사 편하게 잘해먹었다. 뉴스시간 직전에 배치된 일일홈드라마는 경쟁프로인 MBC 뉴스데스크를 시청률에서 최대 3배까지 압도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그걸 빼가겠다고 하니 누가 KBS 보도국 책임자라도 꼭지가 돌 노릇이지.

곰곰이 생각하니까 나 또한 KBS 일일연속극을 시청하는 습관과 관성에 힘입어 9시 뉴스에 채널을 고정한다. 프로그램 사이에 광고가 없는 데다가 다른 곳으로 리모콘 누르기도 귀찮다. 방송국 뉴스마다, 특히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경우에는 구성과 논조가 거의 그게 그거다. 이왕이면 불륜과 출생의 비밀 따위의 자극적 소재 없이도 드라마를 담백하고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KBS를 밀어주는 편이 낫지 않겠나? 일종의 ‘보은시청’이랄까. KBS 보도국은 양국화 구혜선한테 아직도 감사패 안 줬냐? 감사패 주기 싫걸랑 기자들 회식할 때 꼭 ‘처음처럼’ 마시던가.

요즘 신문 정말 읽을 것 없다. 텔레비전이라고 다르지 않다. TV뉴스는 날이 갈수록 영양가가 떨어진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북창동 술집종업원 보복폭행 같이 인구에 회자되는 엽기적 사건을 빼면 열심히 시청할 욕구가 좀체 발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항상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사안의 본질에서 빗나가는 식상하고 진부한 얘기들뿐이다. 며칠 전에는 진짜 욕 나오더라. 아파트 청약제도가 바뀌어 무주택서민들의 내집마련 기회가 대폭 늘어났다면서 제도의 변동내역을 시시콜콜 세심하게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지루하고 짜증나 미칠 뻔했다.

이 화상들아! 서민대중이 절차와 방법 몰라서 집을 안 사냐? 돈이 없으니까 못 사지? 심층분석이랍시고 파헤치려면 땅값폭등을 부추기는 강남부자들부터 족쳐야 순서가 올바르다. 법원과 검찰청은 강남판검사가 점령하고, 신문방송은 강남기자가 접수했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구나. 어디 기자뿐인가? 잘 나가는 아나운서들 역시 태반은 강남출신이다.

뉴스라고 해봤자 영양가 없는 하나마나한 공자님 말씀만 해대니 시청자들의 눈길이 엉뚱한 구석으로 쏠릴 수밖에. 국민원로가 기억하기에 KBS 9시 뉴스가 최근 가장 강력한 임팩트를 발휘한 시점은 김경란 아나운서가 과감하고 도발적인 패션을 선보인 날이었다. 깊숙이 파인 네크라인에 저절로 집중이 되더라. 그녀가 담당한 멘트가 끝나자마자 곧장 MBC로 채널을 돌렸다. 박혜진 아나운서는 얼마큼 파였는지 확인하려고. 공중파 방송사가 자랑하는 뉴스의 심층성은 스타앵커우먼들의 네크라인에서만 빛을 발하기 일쑤다.

굴욕이다. 김경란의 굴욕이자, KBS 보도국의 굴욕이고, 한국방송 전체의 굴욕이며, 나아가 대한민국 언론의 굴욕이다. 궁극적으로는 드라마에 낚여 뉴스서비스를 선택하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의 굴욕이다. ‘하늘만큼 땅만큼’ 이동편성 소동은 TV가 여전히 바보상자임을 증명한다. 방송국 임직원들에게 시청자주권은 저희들이 울리고 싶을 때 맘대로 두드려도 상관없는 동네북임을 웅변한다. 국민들에게 사실과 진실만을 전달해야 하는 방송사 기자들이 치밀한 기획과 충실한 취재에 올인하는 대신에, 드라마 시청률에 무임승차하려는 뻐꾸기임을 만방에 폭로한다. ▶◀ 효주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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