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9일 광주 무등산에 올랐다. 전날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담양의 한 온천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날 아침 다시 광주를 찾아 산행에 나선 것.
무등산 입구인 증심사를 출발해 장불재까지 2시간20분이 소요된 이날 등반에는 서남해안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 등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 인사와 지인 등 30여 명이 동행했다.
노 대통령이 이날 무등산에 오른 것은 대선후보 시절 광주에서 "대통령이 되면 무등산을 함께 오르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산행 중 만난 광주 시민들에게 "오늘 그 약속을 지켰다. 저의 제일 큰 관심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무등산 기슭의 쉼터인 장불재에서 열린우리당 당원과 광주 노사모 회원 등 300여 명의 지지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눈 뒤 이들을 상대로 약 40분간의 즉석 연설을 했다.
산상 연설은 '노무현의 역사 인식과 참여정부의 판단이 옳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노 대통령은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과 역사의 대의를 좇는 사람이 있다"면서 "대의만 따르면 어리석어 보이고 눈앞의 이익을 따르면 영리해 보이지만 멀리 보면 대의가 이익"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저는 국민의 정부를 계승한 대통령"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역사가 뒤돌아 가고 있느냐. 제자리 걸음 하고 있느냐. 진전의 속도가 느린가"라고 물었고, 지지자들은 일제히 "아니오"라고 답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경제적 성과를 소개한 뒤 "어떻게 아직까지 대통령을 하고 있는가가 의문이 들 정도"라며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의 '국정 흔들기'를 정면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 정책 중 절대 안된다고 한나라당이 끝까지 반대한 법은 국가보안법, 사학법, 개헌 정도인데 이것 때문에 참여정부가 많은 욕을 먹거나 힘들어진 것은 아니다"며 "이것들 말고 (한나라당이) 딱 부딪쳐서 반대하는 법이 어떤 건지 모르겠다. 반대는 안하면서도 흔들어 대서 정책을 제때 제때 추진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그 예로 들어 "한나라당은 반대는 하지 않고 있으면서도 흔들어대고 발목잡고 진을 다 뺀다"고 했다. 또 "대북정책은 퍼주기라고 흔들고, 북핵문제가 불거진 때에는 느릿느릿 대응한다고 공격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결국 가는 길은 그 길이다. 참여정부가 가는 대로 가고 있다"며 "교육정책에 대해서 지금 반대하고 있는데 그것도 바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앞으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참여정부 주요정책 중에서 안하겠다고 부정할 정책이 몇 개나 있을지 모르겠다. 지켜볼 일"이라는 말도 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에 대해서도 "국정운영에서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고 성과도 당당히 내놓을 수 있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다만 정치문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치인으로서는 행복하지 않다. 정치인으로서 정치도 정치답게 하고 싶다"며 유감스럽다는 태도를 보였다.
노 대통령은 "민주정치는 각자가 자기주장을 펼치고 마지막에 규칙에 따라 결론을 내는 것이고, 그래서 대립은 필연적이지만 문제는 결론을 낼 수 없는 대립"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등반에 앞서 무등산 입구의 의재미술관을 둘러본 뒤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증심사를 찾아 불자인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대웅전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무등산이 5.18 광주의 상징이란 점에서 노 대통령의 이번 산행은 광주와 호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준 의미 있는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전날 광주.전남지역 경제인들과 만나 정부 차원의 각종 지원 의사를 밝혔고, 이날 산행에서도 지역 현안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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