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범여권 대통합은 불가하다는 종전 입장을 고수했다. 이 날 50여분 간 이뤄진 만남에서 박 대표는 45분 이상을 할애해가며 대통합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역설했고, 김 전 대통령은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박상천 “대통합 되는 일 절대 없을 것”

29일 동교동 자택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난 박 대표는 면담이 시작되자마자 “대통합은 성사도 어렵고 부작용도 많다”고 전제한 뒤, “대통합에 친노파도 포함되는 것이냐”면서 곧바로 통합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민주개혁세력이 다 포함되는 것을 대통합이라 하는데 누가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 하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다”며 박 대표의 특정인사 배제론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박 대표는 “소위 대통합을 하면 대선승리가 어렵다”며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고, 국정실패 특히 민생경제의 실패로 인해 국민들이 등을 돌려 대선 때까지 국민신뢰를 회복할 수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박 대표의 ‘대통합 불가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합은 언뜻 듣기엔 좋은 것 같지만 열린우리당 이미지를 주고 내부갈등이 심화되어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며 김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또한, 그는 “정당이란 이념과 정책노선이 같은 사람들의 결사체”라며 “대통합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무분별하게 통합되면 이질세력이 모이기 때문에 대선공약 채택도 어렵고 엄밀히 말하면 정상적 정당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해 일부 인사들은 통합 논의에서 배제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김 전 대통령의 대통합론과 명확한 선을 그은 셈.

또한 박 대표는 “민주당은 2005년 2.3 전당대회에서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을 만장일치로 반대하는 특별결의를 채택했다”며 “만일 통합을 하기 위해서 전당대회를 열면 아무리 내가 앞장선다 하더라고 부결될 것이다”라고 말해 현실적으로도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는 “대안은 중도개혁대통합이고, 민주당은 기득권을 상당부분 포기할 것”이라며 “실정에서 자유로운 정당이 새로운 정책을 가지고 국민에게 호소하면 대선에서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은 4.25 재보선에서 입증됐다”고 말했다. 나아가 박 대표는 “4.25 재보선은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면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없는 대결에서 한나라당이 3분의 2 지역에서 패배했고, 이는 국정실패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세력이 한나라당과 대결하면 정상적인 선거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한나라당과의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어 박 대표는 “열린우리당과 차별성이 부각되는 정당을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제시하면 한나라당에 임시로 가 있는 지지자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며 “중도개혁통합정당을 만들 때 기본정책합의서를 채택할 것이고, 서민과 중산층을 보호하고 햇볕정책을 계승 하겠다”고 말했다. 중도개혁통합신당과는 이미 합의가 끝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 대표가 주장하는 소통합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박상천 “후보단일화 성사시키겠다”, DJ "무슨 일이 있어도 단일후보“

김 전 대통령이 대통합과 함께 내세우는 후보단일화 문제에 대해서 박 대표는 “중도개혁통합정당을 만들고 열린우리당 세력이 대선후보를 낼 경우 표가 갈라지는 경우가 있다”며 “후보단일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1월쯤 열린우리당 잔존세력이 내는 후보 지지도가 미미하면 단일화될 수 있다”며 “만일 우리 후보가 그런 상황이면 나부터 앞장서서 단일화시킬 것이다”고 말해 후보단일화를 반드시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또한 박 대표는 “국민의 신뢰를 얻고 나면 친노든 누구든 후보단일화를 해서 함께 가는 것은 국민들이 이해할 것이다”며 “마지막 후보단일화는 틀림없이 해 내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단일정당이 어려우면 연합해서 단일화를 하라는 것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가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단일후보에는 이른다는 각오를 하기 바란다”고 말해 후보단일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만일 열세인 쪽이 단일화에 응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까지 하며 범여권 후보단일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상천 VS DJ, 날카로운 대립각 세운 박상천

이 날 만남에서 박 대표는 대통합 문제에 대해 시종일관 김 전 대통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김 전 대통령과 어느 정도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일부 의견을 무색케 하는 순간이었다.

박 대표는 “나는 야심도 없고 대선에 나갈 사람이 아니다”라며 “내 희망은 확고한 중도개혁정당을 만들어 대선에 승리하고 한국정당의 구도를 보수와 중도의 양대 정당구도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께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극소수의 국정실패 책임자만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을 포용하여 친노파든 민노당이든 모두 포용해서 한나라당과 맞서겠다”고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오히려 김 전 대통령이 “박 대표가 연구를 많이 했다”며 화답하며 물러서는 입장을 보일 정도였다.

박 대표가 대통합에 맞서 민주당 중심의 소통합을 계속 강조하자, 김 전 대통령은 “단일정당이 어려우면 연합해서 단일화를 하라는 것이다”라고 살짝 입장을 돌려 말하며 “후보단일화든 대통합이든 나는 어느 쪽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표의 대통합 반대 의지에 김 전 대통령이 한 발 물러난 셈.

김 전 대통령이 “여하튼 단일화든 연합이든 국민 앞에서 힘 합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말하자마자 곧바로 “처음부터 무조건 합치면 신뢰를 상실한다”고 대답한 것도 박 대표의 대통합 불가론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편, 이 날 박 대표가 김 전 대통령 면전에서 통합인사 배제를 고수하면서 대통합에 결사반대하는 발언을 쏟아냄에 따라 범여권 통합 협상은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