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 수정을 통한 불임 시술이 보편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 이혼 부부가 냉동 보관중인 체외수정란의 소유권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어 법원이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0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96년 결혼한 랜디와 오거스타(46) 로만 부부는 2년뒤부터 아이를 갖기로 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하자 체외수정을 시도키로 했고 마침내 2002년 4월 6개의 난자에 인공수정을 하는데 성공했지만 자궁 착상 시도를 불과 10시간 앞두고 랜디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
수년간 계속해서 잠재해 왔던 결혼생활 지속 여부에 관한 의심들이 명백해졌다고 판단한 랜디는 전문가와 상의한뒤 결정할 때까지 수정 난자를 냉동시켜 줄 것을 요구했고 결국 상담은 실패로 끝나면서 이들 부부는 16개월뒤인 2003년 8월에 6년간의 결혼을 청산하기로 했다.
아내인 오거스타가 텍사스 휴스턴의 집과 가재도구 대부분을 갖기로 하는 등 이들 부부는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 합의했지만 그때까지 살아남은 3개의 냉동중인 수정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오거스타는 이들 난자를 통해 아이를 갖겠다면서 "전 남편에게 재정적 또는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지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랜디는 "혈육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수정란을 없애거나 끝까지 냉동상태로 보관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오거스타는 냉동 보관할 당시 "이혼하면 어떤 수정란도 폐기한다"고 문서에 이니셜로 사인했지만 당시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도 못한채 엉겁결에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고 2004년 2월 해리스카운티 지방법원은 오거스타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지난해 열린 항소심은 이를 번복함에 따라 텍사스주 대법원이 이 문제를 떠안게 됐다.
현재 체외 수정은 1984년 호주에서 처음 성공한 이래 불임 치료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으며 2003년 조사에서는 미국에서만 40만 개의 냉동 수정란이 보관중이고 해마다 5만개씩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불임 클리닉마다 수정란을 보관.유지하는게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다. 폐기냐 연구기관 기증이냐, 아니면 다른 부부에게 넘길 것이냐를 놓고 종종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수정란이 과연 얼마나 냉동상태로 보관될 수 있는 지는 불확실하지만 기록상 13년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분명하게 협의하지 못한채 이혼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이런 경우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할 연방정부의 규정이 없는 상태다.
결국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각 주의 법원이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고 있는데 지금까지 6개 주에서 내려진 판결은 오거스타 보다 랜디에게 유리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법원들은 출산을 원치 않는 한 쪽이 출산을 원하는 쪽보다 우위에 설 권리가 있다고 봤다. 1992년 테네시주 대법원은 "수정란들은 엄격히 말해 사람이나 재산이라기 보다 생명체로서의 잠재성으로 인해 특별히 존중해야 할 범주에 넣어야 한다. 하지만 출산을 피하고자 원하는 개인이 우세하다. 왜냐하면 상대편이 다른 수단을 통해 친권을 획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판시했다.
문서상 합의가 없었던 이 사안과 달리 이후의 판결들은 냉동되기 전에 사인한 합의 문서에 초점을 맞췄지만 그럼에도 법원들은 억지로 부모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매사추세츠 법원의 경우 "이혼후 아내가 냉동 난자의 권리를 갖는다고 합의했더라도 과거의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는 개인의 의견을 거슬러 강요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이들 부부는 주대법원 판결에서 패한다 하더라도 서로 연방 대법원에 항소할 뜻을 밝히고 있어 지난 1973년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처럼 수정란의 권리에 관한 `로만 대 로만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랜디는 "오거스타의 주장은 체외 수정을 시도하는 남성들의 법적인 입지를 축소하려는 것이며 성공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임신을 왜 시도하려는 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지만 오거스타는 "냉동 난자들은 내 아이들이다. 나는 거의 임신한 상태이며 이런 나에게 누군가 `그가 아버지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가능성이 1%가 된다 하더라도 그 기회를 놓치지는 않겠다"고 주장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isjang@yna.co.kr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