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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서울시청 앞을 비롯, 전국 곳곳을 민주화의 함성으로 가득 메웠던 `6.10' 민주항쟁이 10일로 20돌을 맞는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두번 지나는 동안 세상도 크게 바뀌어 당시 거리에서 민주항쟁을 주도했던 이른바 `운동권' 인사들의 상당수는 이제 제도권 주역으로 변신했다.

특히 당시 민주화를 위해 똘똘 뭉쳤던 이들이 대거 포진한 범여권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제대로 된 후보 하나 내지 못한 채 지리멸렬한 상황은 어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다.

6.10 항쟁 주역 가운데 현역 정치인으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당시 부산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한 노 대통령은 미국 방문 길에 올랐던 2005년을 제외하고는 취임 후 매년 6월10일을 전후해 6.10 항쟁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 격려해왔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유세과정에서 "6월 항쟁을 다시 한번 하고 싶다"며 눈물을 비쳤을 만큼 `늦깎이 운동권'으로서 6.10 항쟁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83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를 함께 결성했던 김영삼(金泳三.YS)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도 7인의 국본 상임공동대표단 멤버로 활동하며 투사들의 버팀목이 됐다. DJ는 최근 범여권 예비 대선주자들과의 잇단 면담을 통해 `훈수정치'의 수위를 높이며 대선정국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6.10 항쟁 당시 가택연금 상태였던 YS는 6.10 항쟁의 결실로 나온 6.29 선언으로 사면 복권돼 제도권에 재등장했다.

대선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도 국본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재야파의 핵심이었다.

이 전 총리는 6.10 항쟁의 한축이었던 재야세력의 핵심활동 근거지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정책실장이자 국본 상황실장을 맡아 시위 기획 및 상황을 지휘하는 현장사령관으로 활약했다. 황인성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도 당시 실무자로 이 전 총리와 호흡을 맞춘 사이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이상수 노동부 장관, 이미경, 김부겸 의원 등도 당시 국본 집행부에서 활동했으며 유시민 전 복지장관의 누나인 유시춘 민주평통 상임위원(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상임 집행위원중 `막내'였다.

민청련 사건으로 투옥 중이던 열린우리당 김근태(金槿泰) 전 의장은 국본에 참여했던 부인 인재근씨를 통해 전해 들은 6.10 항쟁 소식을 교도소에 전파하고 단식에 들어가는 등 옥중투쟁을 벌였다.

민청련 막내 세대로 당시 수배중이던 우리당 유기홍 의원은 국본 산하 청년학생공동위에서 활동하며 민청련 기관지였던 민주신문 편집인을 맡아 6.10항쟁 소식을 시민들에게 전하는 `거리의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6.10 항쟁 당시 군사독재 타도,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거리투쟁의 선봉에 섰던 `386 학생운동권' 출신들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대거 원내에 입성했다.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우리당 임종석 의원과 2기 의장이던 오영식 의원은 16대에 이어 재선에 성공했다.

이인영 의원은 고려대 84학번으로 당시 고대 총학생회장이자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이었고, 우상호 의원은 그해 7월 9일 서울시청 앞에서 100만명의 장례 인파가 운집한 채 거행됐던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의 집행위원장이었다.

85년 전남대 삼민투 위원장이었던 강기정 의원, 88년 2기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으로 활동한 백원우 의원,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 83학번이자 노 대통령 최측근인 이광재 의원과 안희정 참여정부 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도 넓게 보면 6.10 세대로 분류되며 청와대 비서관.행정관급에도 6.10 세대가 상당수 포진해 있다.

범여권이 통합 대상으로 거론하는 시민사회세력에도 6.10 항쟁의 주역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 해 6월10일 덕수궁 옆 대한성공회 구내에서 진행된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사회를 맡았던 오충일 목사와 이해학 목사 등은 재야인사로서 항쟁에 적극 참여했고,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의 최 윤 공동집행위원장은 국본 강원지부 사무처장을 맡았다.

한나라당에서는 민통련 민족통일위원장을 지낸 이재오 의원이 국본 상임집행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역시 민통련 출신의 박계동 의원은 당시 5.3 인천사태 수배자 신분으로 전주, 마산 집회 등을 주도했다.

당 윤리위원장인 인명진 목사는 87년 당시 국본 대변인을 맡았으며 83년 성균관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고진화 의원도 6.10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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