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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전 의장은 11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우리당간에 당정분리가 이뤄진 계기는 2004년 김혁규(金爀珪) 의원의 총리 지명 여부를 둘러싼 당청간 냉랭한 구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신 전 의장은 이날 출판기념회를 갖는 자서전적 저서 `신기한 남자는 진보한다'를 통해 이 같은 비화를 소개했다.

신 전 의장은 "나는 2004년 총선 후 당의장에 취임한 뒤 개혁과제를 강력히 추진할 것임을 선포했지만 노 대통령의 탄핵사태 복귀 일성은 실용주의였고, 정국운영 구상은 `CEO형 총리론'을 앞세운 `김혁규 총리지명'으로 나타났다"며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에 토를 달진 않았지만 마음에 드는 일은 아니었고 당의장이던 나는 (김혁규 의원 카드를 지지하지 않는 우리당 태도에 대한) 대통령의 `진노'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신 전 의장은 대통령의 국정개혁 추진을 든든히 뒷받침하겠노라며 정기 회동을 요청했지만 대통령은 "당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테니, 당도 청와대에 개입말라"고 언급하면서 당정분리의 첫 단추가 꿰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2001년 민주당 내에서 초.재선이 주도하는 정풍.쇄신운동이 벌어졌을 때도 "노 대통령은 정치생명을 걸고 감행한 정풍.쇄신운동을 외면했다. 아니 반대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며 "그 때 우리는 그의 지원을 기다리던 시점이었지만 마치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여기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동교동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노 대통령이 우리당 창당과정에서 `속도조절론'을 내세워 반대하는 바람에 창당의 기운이 꺾였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노 대통령의 대선 승리 사흘 후인 2002년 12월22일 신 전 의장을 포함, 민주당 의원 23명 명의로 신당 추진을 천명했으나 노 대통령은 신당은 나중의 일이라고 하면서 "갈등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밝히고, 민주당 막후 실력자들에게 "여러분 덕택에, 여러분이 지켜온 민주당으로 인해 당선될 수 있다"고 공개천명해 신당 추진을 가로막았다는 것.

신 전 의장은 `오세훈 선거법'으로 알려진 2004년 3월 정치관계법 개정이 "사실은 우리당이 야(野) 3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의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시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열린우리당 선거법'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당시 야3당이 되도록 개혁을 피해보려는 안을 갖고 표결을 강행하려 하자 우리당 의원들이 법사위 회의장을 가로막았고, 국민적 여론이 우리당의 손을 들어줘 우리당 안이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신 전 의장은 "오세훈 의원이 후원금 모금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고집을 부려 수용됐는데 결과적으로 중산층과 서민 출신 의원들만 불리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신 전 의장의 출판기념회에는 김근태 정동영 전 의장,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천정배 의원,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범여권의 주요 대선주자들이 참석한다.


(서울=연합뉴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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