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야기가 나왔으니 평론가 얘기 또한 등장해야 균형이 맞을 듯하다. 일반대중의 열광적 호응을 얻는 통속적 인기 극작가의 대척점에는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높은 순수한 문학비평가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그 자리에 ‘비평과 전망’ 편집주간으로 활동하는 이명원 전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교수를 위치시키겠다. 그와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명예 제주도민의 역설’이란 칼럼이 하필이면 눈에 띄어서다.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 이명원을 소개하자면 그는 원로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표절의혹을 제기했다가 공부하던 대학원에서 추방된 인물이다. 지도교수가 김윤식의 제자였던 탓이다. 이명원의 팔자가 엄청 드센 모양이다. 대학원에서 쫓겨난 것만으론 모자라 다니던 직장에서도 잘렸다. 서울디지털대의 학내문제를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했다가 학교재단의 미움을 산 결과다. 이명원을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학교측의 결정은 부당하다. 따라서 그를 이전교수가 아닌 이교수로 호칭하겠다.
격려와 응원은 딱 여기까지다. 억울하게 보복당하고 탄압받는 깨끗하고 실력 있는 젊은 문학연구자로서의 이명원 말이다. 이교수가 국익, 특히 장기적 국가안보와 관련된 주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짜증과 답답함을 느낀다. 그가 대한민국 진보좌파의 전형적 시각과 사고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짜증과 답답함은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접어든다.
우리나라 진보좌파의 대표 이데올로기는 “착하게 살자!”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보살피며, 노동자와 농민, 영세 자영업자 같은 서민대중의 정당한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의 살벌하고 역동적인 국제정세와 마주설 때면 잽싸게 슬로건을 바꿔야 올바르다. “독하게 살자!”로.
이교수는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이 불가함을 주장한다. 그가 해군기지 건설을 막으려는 명분과 논리는 여타의 반대자들과 다른 구석이 없으므로 굳이 설명하지 않으련다. 이교수의 칼럼을 접하고 다시금 결심을 단단히 굳혔다.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는 시나리오는 기필코 저지해야겠다고. 왜냐? 나라 말아먹기에, 정확히 표현하면 나라를 통째로 들어서 외세에 갖다바치기에 안성맞춤이니까.
이교수는 일본우익의 발호를 경계하자는 글을 예전에 한겨레 지면에 실었었다. 그런데 일본극우세력의 준동을 제어할 대응책이 너무나 허망했다. 일본시민사회와의 연대를 강화하자나. 세상에나! 이라크가 미국시민사회와 연대가 부족해서 부시한테 묵사발이 났던가? 아르헨티나 기층민중이 영국시민사회에 애걸복걸했다고 대처 여사가 포클랜드제도로 대영제국의 기동함대를 파견하지 않았을까?
군사문화 극복을 부르짖는 의도를 이해한다. 평화체제의 필요성에도 동감한다. 하지만 군사문화 폐해의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이 국가의 안보기능 방기나 또는 일방적 무장해제로 오인되어서는 곤란하다. 진보진영은 인권옹호만을 맹목적으로 강조하다가 흉악범들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라는 역효과를 빚은 바가 있다. 이러한 사태를 국방정책 분야에서 확대재생산하겠다는 심산인가?
광범위한 작전반경을 가진 대양해군 건설이야말로 참다운 자주국방의 초석임은 진보좌파조차 인정할 게다. 강력한 원양해군으로 도약하자면 함대의 수용에 적합한 항만시설과 지리조건을 갖춘 기지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최적의 입지는 제주도다. 고민의 초점은 제주도민들에게 상응하는 보상과 예우를 제공하는 데 두어져야 옳다.
해군기지를 용납한 제주도민의 결단에 보답하는 뜻에서, 희생과 혜택이 정비례하는 바람직한 선례를 확립한다는 측면에서 제주도의 주력산업인 감귤농업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켜져야 한다. 감귤시장 개방이 포함된 미국과의 FTA협정의 비준을 국회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기지건설에 협조한 제주도민을 위하여 국가가 이행해야만 할 기본적 의무다. 제주도 유치가 예정됐던 APEC 정상회담을 부산으로 불법적으로 강탈해간 노무현 정권 고위인사들의 사법처리 역시 아울러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응당 더 비싼 가격을 치르고서 더 많은 양의 감귤을 먹어야 한다. 휴가철 동남아 관광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제주도로 옮겨야 한다. 진보세력이 매진할 과제는 국민 대다수가 고루 행복한 부강한 나라를 모두가 고통과 노력을 함께 하며 만드는 것이다. 무조건 착하게 살자고 시도 때도 없이 고집하는 처사는 진정한 좌파의 자세와 거리가 멀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린 까닭으로 말미암아 한국의 진보좌파는 노무현 따위의 질 낮은 3류 양아치들로부터 교조적 진보라는 조롱과 멸시를 사는 거다.
우리에게 해양수송로는 집으로 통하는 골목길과 마찬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심야의 안전한 귀가를 돕고자 어두운 골목입구에 보안등을 밝히고 방범초소를 설치하듯, 대한국민 국가경제의 사활 및 번영과 직결된 바닷길의 통행과 통상의 자유는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확고한 해양주권은 선진복지국가를 지탱하는 튼튼한 버팀목이다. 우리네 진보좌파는 경찰관과 보안등을 없애고, 대신 골목에 착하게 살자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이라고 요구한다. 잠재적 범죄자의 선의에 호소하는 대자보가 강도와 도둑에게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준다는 투다.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에 시큰둥한 이유가 이쯤 되면 충분히 납득이 되리라.
이명원 교수가 소녀진보들의 무책임한 감성정치에 감염된 나머지 쓸데없는 정치적 발언을 일삼음으로써 자기의 소중한 재능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번 역지사지해봐라. 내가 내일부터 당장 정권컨설팅 때려치우고 문학평론에 본격적으로 종사하겠다고 선포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는가? 이교수의 시사논평은 나의 문예비평만큼 황당무계한 콘텐츠다. 자제해야 마땅하다.
우리기술로 건조한 이지스 함정인 세종대왕함이 최근 진수되었다. 국산 순항미사일 ‘천룡’의 독자개발에도 이미 성공한 터다. 무릇 진취적 기상의 책임 있는 진보좌파는 세종대왕이 즉각 출동해서 감귤개방을 밀어붙이는 과천 정부종합청사와 여의도 전경련회관을 목표로 유도탄을 발사해야 한다고 외쳐야 옳다. 착하게 살자만 주기도문처럼 외우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은 책임감과 상무정신을 겸비한 원숙한 수권집단으로 진화해야 한다. “착하게 살자”가 도저히 포기하지 못할 철학과 소신이라면 이참에 현실정치에서 아예 손을 떼던가.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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