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듣는 순간 대단히 기뻤다. 한나라당 이명박 예비후보 캠프의 진입장벽이 엄청 낮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서였다. 거기는 개나 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로구나. 이명박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한편으로는 몹시 한심스러웠다. 조선일보 진성호 기자의 얄팍한 처세술이. 수염값도 못하는 양반 같으니라고.
진성호 조선일보 미디어전문기자가 이명박 선거사무실에 취직했다. ‘합류’ 따위의 거창하면서도 식상한 표현은 쓰지 말자. 그냥 취직 또는 취업이라 부르자. 종신고용의 신화가 끝나고 구조조정의 삭풍이 휘몰아치기는 언론계 또한 마찬가지다. 평생 기자노릇 하면서 생계를 영위하기가 불가능한 풍토다. 게다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치와 언론이 유착단계를 지나 거의 일체화된 정언일치 사회다. 기사를 자기소개서 용도로 작성하는 기자들이 부지기수며, 몇몇 부자신문사는 정당 이상의 정당역할을 자임한 지 이미 오래다. 유력 대통령 후보들에게 유수의 언론인들이 빌붙는 현상이 새삼스럽지 않은 현실이다.
허나 진성호 기자의 변신에 대해서만큼은 조용히 보아 넘기기 어렵다. 나와 진기자와의 독특한 인연 탓이다. 2004년 1월이었다.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 좋은 건수로 이름을 날렸다면 상관이 없겠는데 참으로 엽기적인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국민원로가 청와대에서 밥이나 얻어먹고 다니는 한 마리 빈대로 졸지에 알려진 것이다. 개요는 이렇다. 당시 청와대 국민참여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던 박주현 변호사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장소는 경복궁 인근의 한정식집. 새만금 간척사업을 비롯해 각종 시국현안과 관련된 시중여론을 탐문하려는 목적에서 박주현 수석이 마련한 회식자리였다. 강남에 사는 박수석을 향해 나는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었다. 당신 얼른 잘려야 된다고.
모임의 성격이 악의적인 방향으로 왜곡되어 보도됐다. 과도한 향응과 접대가 제공됐다는 투였다. 나를 포함한 참석자들을 청와대의 관리를 받는 파렴치한 청부논객으로 음해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 진성호 기자다. 그때 진기자의 직책은 사회부 차장대우였다. 조선일보에서 퇴사하기 전에 결국 ‘대우’ 꼬리표를 뎄더라. 수구매체에 의해 식충이로 매도된 게 매우 억울하기는 했으나 내가 분명 부주의하게 실수를 저지른 부분이 있었으므로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 부적절한 술자리였음을 국민원로는 대범하게 인정했다.
실수란 별다른 게 아니었다. 얌전하게 소주만 마시지 못하고 눈치 없이 산사춘을 주문하고 말았다. 두 병인가 세 병인가를 시킨 다음 나 혼자 꿀꺽꿀꺽 모두 마셔버렸다. 이런 기회 빼면 비싼 술 먹을 일 없으니까. 이게 다 효리 때문이다. 허심탄회한 사과와 더불어 밥상에 오른 음식들을 공개하자 소위 ‘밥게이트’는 한바탕의 소극으로 이내 마무리되었다.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이 오히려 머쓱해지는.
불미스런 식사자리 동참을 반성하며 생각했다. 1인당 만 원 남짓한 식대에 산사춘 두세 병 마신 행위를 두고서 마치 어마어마한 액수의 부도덕한 접대와 향응이 오간 듯이 묘사한 진성호 기자는 결코 권력의 단물을 탐하지 않으리라고. 진기자야말로 진실로 대쪽같은 선비정신의 소유자일 거라고. 아무리 배가 고플지언정 이슬만 먹고살 우리시대의 마지막 양심 진성호 기자, 정말 존경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라이프스타일은 호화스럽지만 인생이 저렴한 사람. 반대로 생활수준은 싸구려일망정 삶의 품격은 고급인 사람. 아마 전자의 대표는 전두환의 차남 전재용과 청담동의 29억 짜리 아파트에 살림을 차린 탤런트 박상아일 게다. 진기자에게 묻는 바이다. 아저씨는 어디에 속하세요? 라이프스타일은 호화로우나 인생은 저렴한 쪽이세요? 아니면 생활수준은 싸구려이되 삶의 품격은 고급인 편이에요? 제 경우에는 후자걸랑요.
진성호 기자는 나를 밥이나 대충 서너 번 사주면 충분히 구워삶을 수 있는 녀석으로 단정한 모양이다. 이명박 사무실 취업 축하하는 의미에서 진기자에게 정식으로 제안하겠다. 나 밥 좀 사줘라. 이왕이면 돼지갈비에 산사춘 곁들여서. 진기자를 망국적 정언유착의 화신으로 비판하지는 않겠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짧은 안목을 질타하고플 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철면피한 이중잣대 역시 아울러 꼬집어야겠지. 이참에 솔직히 밝히겠다. 나 여러 캠프로부터 밥 얻어먹었다. 그것도 여야와 정파를 넘나들며. 대신에 철학은 확고하다. 밥은 밥이고 글은 글이라는.
이명박 진영을 위해 늦게나마 밥값을 하련다. 진성호 기자한테 절대 기획분야를 맡기면 안 된다. 캠프 말아먹기에 제격이다. 자신의 미래조차 예측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얼어죽을 기획이야! 진기자는 술 사주고 밥 사주는 단순업무가 딱 알맞다. 사람 만나면서 인생공부 더하게. 세상사람들은 진기자가 믿는 것처럼 가볍지도, 말랑말랑하지도 않다. 어차피 나야 술 따라주고 밥 처먹이면 손쉽게 관리될 놈으로 낙인찍힌 몸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화끈하게 관리당하고 싶다. 진성호 기자께서는 대통령 선거일까지 매일 저녁만이라도 확실하게 책임져주시라. 나 요즘 풀만 먹고산다.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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