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냐, 연장이냐를 가늠할 17대 대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범여권 내부는 침울한 분위기다.
이는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대세론’에 밀리며 고전 중이던 2002년 7월보다 더 비관적인 분위기다. 당시 노 후보는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에 뒤지고 있었으나 ‘제 3후보’로 출마했던 무소속 정몽준 의원과의 지지도를 합산할 경우 이회창 후보에 앞섰기에 ‘범여권 후보단일화’라는 한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2007년 7월 현재,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지지도를 모두 합쳐도 한나라당 ‘빅 2’ 중 한명에게 조차 앞서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범여권 유력 주자로서 20%에 육박하는 지지도를 유지하던 고건 전 총리가 지난 1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로 7개월째 고착화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분’에도 범여권 반사이익 전무
범여권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한나라당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간의 검증 관련 공방에도 불구하고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전국 803명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도는 각종 의혹과 검증 논란에 의해 소폭 하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범여권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지사는 6%의 지지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3.1%)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2.1%)도 세를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 후보의 지지도를 합쳐도 한나라당 내 2위인 박근혜 전 대표(26%)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5%p)
조인스닷컴과 미디어다음이 12일 공개한 주간 여론조사에서도 손학규 전 지사는 7.6%에 그쳤고, 정동영 전 장관(3.3%p)과 이해찬 전 총리(2.6%)가 뒤를 이었다. (전국 1,000명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11일 조사,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노무현 디스카운트’ 효과, 대선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공격적인 대선 개입 발언에도 불구하고 ‘反 한나라당 전선’의 규모는 현재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의 지지도는 범여권 인사들 중에서도 최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여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을 적임자로서 친노세력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p 내외의 지지도를 기록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는 지난해부터 각종 포털사이트에 댓글 도배 등으로 ‘유시민 띄우기’에 나선 친노 네티즌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결과다. 역시 친노인사인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 김혁규 의원 등도 유 전 장관과 비슷한 상황이다.
친노세력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소식은 유 전 장관에 대한 ‘신뢰도’ 조사 결과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이 공동으로 지난달 26일~27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남녀 944명을 대상으로 전-현직 대통령과 유력 대선주자 11명이 대선정국에 미치는 영향력과 신뢰도에 미치는 평가 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 전 장관은 신뢰도 조사에서 2.16점을 얻는데 그쳐, 이해찬 전 총리(2.80)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2.76)에게도 뒤졌다. 이는 일부 친노세력의 여론 선동에 의해 유 전 장관의 이미지가 개선되기 힘든 상황임을 뜻한다.
‘노무현 디스카운트’ 현상을 입증하는 조사 자료는 또 있다. 조선일보가 TNS코리아에 의뢰해 전국 1,000명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지난달 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79%의 응답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원하는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노 대통령이 지원하는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7.6%에 불과했다. 이는 선관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는 노 대통령의 대선 개입이 범여권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DJ 영향력도 의문
범여권의 ‘반 한나라당 전선’을 이끄는 또 하나의 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 역시 의문시된다. DJ의 거침없는 ‘훈수 정치’에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인 것.
조인스닷컴과 미디어다음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월 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발언에 대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64.1%, ‘적절하다’는 의견 16.8%로 나타났다. (전국 800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조사.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5%p)
CBS가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월 29일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에 대해 ‘전직 대통령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입장이 62%로 조사됐다. ‘전직 대통령으로 할 수 있는 발언’이라는 입장은 32.9%에 그쳤다. (오차한계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이같은 여론은 DJ의 텃밭인 전남지역 재보궐 선거에서도 입증됐다. 지난 4.25 재보선 당시 무안-신안 지역구에 출사표를 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씨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희호 영부인 여사 등 동교동계 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절반에 미달되는 49%의 득표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히든카드’였던 오픈프라이머리도 사실상 무산
범여권이 경선 흥행을 위한 히든카드로서 고안했던 ‘오픈프라이머리’가 무산됐다는 점 또한 범여권에는 만만찮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헤럴드경제가 1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범여권은 본경선 때 중앙선관위에 위탁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전국 순회 경선을 벌여 오는 10월 7일 최종 후보를 선출하며, 본경선 때에는 여론조사를 활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인단 규모는 20만명 내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당심-민심이 혼합된 한나라당 경선과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로서 유권자 수백만명이 참여하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전국적인 ‘反 한나라당 전선’을 규합하려던 범여권의 구상에는 제동이 걸렸고, 범여권 인사들이 희망해 온 ‘경선을 통한 컨벤션 효과’에도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불출마 이후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좌편향 인사들 일색이라는 점도 범여권의 외연 확장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범여권 주요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손학규 전 지사, 이해찬 전 총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등은 국보법-대북정책 등 이념적 사안에서 ‘극좌’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어, 중도층을 상대로 외연을 확대하기에 어려운 입장에 있다.
한 범여권 인사는 “중도 성향의 고 전 총리와 정 전 총장이 있었다면 훌륭한 불쏘시개가 됐을 텐데 아쉽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경선이 본격화될 경우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감정대립 및 검증 공방이 한나라당보다 더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다.
통합민주당 김경재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정치웹진 <프리존>과의 인터뷰에서 ‘범여권 주자들은 대부분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는 중이기에 조금만 노력하면 범여권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렇기에 이들의 공방과 폭로전이 한나라당 경선보다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김주년 기자 (daniel@freezonenews.com)
[세상을 밝히는 자유언론-프리존뉴스/freezonenews.com]
Copyrights ⓒ 2005 프리존뉴스 - 무단전재, 재배포 금지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