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범여권이란 작자들이 되지도 않을, 그리고 절대 돼서도 안 될 통합을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을 노무현이 살려놓았듯이, 김대중과 김근태가 이끄는 이들 통합론자들은 뇌사상태의 영남친노세력을 기사회생시키고 있다. 너희들끼리 어디 잘들 해봐라. 국민원로는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보련다.
요즘 월화드라마가 볼 만하다. 무식의 대명사 노무현 부산대통령을 계몽군주 정조대왕에 억지로 꿰어 맞추려는 의도가 역력한 KBS 2TV의 ‘한성별곡’은 일단 패스다. 노무현이 정조면 이명박이 전봉준이게. 정연주의 한국방송이 드디어 막장방송의 극치를 달리는구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동시간대에 방영되는 MBC와 SBS 연속극들이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거다. 나름대로 의미도 있고.
1순위 선택은 문화방송의 ‘커피프린스 1호점’이다.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에 애쓰는 중이다. 당연히 2순위는 서울방송에서 전파를 타는 ‘강남엄마 따라잡기’고. 의외의 결과다. ‘커피프린스’ 시청자의 대부분은 나와는 생각과 정서 모두가 엄청 다른 젊은 미혼여성들이라고 하니까. 거북스럽기 짝이 없는 동성애코드마저 극중에 양념으로 버무려져 있고. 반면 ‘강남엄마’는 공공연한 강남음해라는 부자신문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한 처지다. 강북에서 잔뼈가 굵은 현민주(하희라)가 전형적 강남아줌마를 상징하는 윤수미(임성민)의 얼굴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을 마주하니 10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더라.
허나 나의 1호점은 ‘커피프린스’다. 2호점으로 밀려난 ‘강남아줌마’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 따라잡는다. 왜냐? 참다운 강북드라마는 ‘강남아줌마 따라잡기’가 아닌 ‘커피프린스 1호점’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결말이 어떻게 되든 ‘강남아줌마 따라잡기’는 강남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강남을 진정 이기는 길은 서민계급 전체가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강남을 보이콧(Boycott)하는 방도뿐이다. 그러므로 정말 나쁜 인간은 윤수미가 아니라 현민주다. 강남을 향한 동경과 선망이야말로 강남을 무소불위의 괴물로 키운 포르말린인 것이다. 강남문제의 근본해결책은 오직 두 가지일 따름이다. 따라잡거나, 때려잡거나.
말이 좋아 따라잡기지 진실은 굴복이고, 야합이고, 추종이다. 자식새끼 출세가 삶의 목표이자 인생의 보람인 데서는 윤수미와 현민주 사이에 아무런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투자액의 크기만 다르지 투자의 동기와 방식은 동일하다. 원래부터 강남에 터를 잡고 살던 윤수미보다도 대리운전조차 마다하지 않으면서 기를 쓰고 아들을 강남으로 전학시킨 강북출신의 현민주가 훨씬 한심하다는 뜻이다. 드라마의 풍자대상은 강남아줌마의 사악한 이기심을 지나 강북과 지방아줌마들의 그릇된 모방심리로까지 확장된다.
힘없는 아줌마들 놀려먹는 걸로 만족하면 뭔가 허전하다. ‘강남아줌마 따라잡기’를 빌려 평범한 국민들이 기필코 때려잡고픈 집단은 따로 있다. 주인공 현민주의 이름이 노골적으로 시사하는 이른바 민주화세력이다. 왕년의 민주화운동경력 팔아서 재미 좀 봤다는 신흥귀족들 말이다. 노무현 정권 아래서 승승장구한. 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으로 대변되는.
김영삼의 문민정부까지 소급해 올라가면 민주주의 정부가 벌써 세 번째 집권했다. YS의 대표적 치적으로 손꼽히는 정책이 공직자 재산등록제도다. 국민의정부 시절 도입된 인사청문회법도 민주정부들이 남긴 긍정적 유산으로 평가된다. 요런 제도적 장치들 덕택에 과거에는 베일에 가려졌던 고위관료들과 공직취임 희망자들의 자산내역이 상세하게 공개됐다. 기본재산 10억 원인.
한데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사실은 달리 있었다. 민주화투쟁에 헌신했다는 상당수 인사들의 재산규모와 성격이 민주화운동진영이 적으로 설정했던 부류와 별 격차가 없다는 대목이었다.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세간의 심증이 물증을 확보한 순간이다. 억울하게 옥에 갇힌 지아비를 가난한 셋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뒷바라지하는 지고지순한 지어미의 모습은 꾸며진 허구였던 셈이다. 남편들은 편을 갈라 싸웠을망정 여편네들끼리는 여고와 여대동창생으로 무리를 지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땅투기를 일삼았다.
위장전입 의혹을 비롯한 무수한 폭로와 악재에 아랑곳없이 이명박의 지지도가 좀체 꺾이지 않는 까닭이 이제 이해가 되시는가? 골프예찬은 물론이거니와 자기 역시 부동산투기 시비에 휘말렸던 이해찬이 이명박을 한 방에 끝장내겠다고 설치는 모양새가 지금의 대선구도다. 이해찬 따위의 B급 대권주자들 수십 명 얼기설기 그러모아 인해전술 펼치면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다는 논리가 DJ와 GT가 입을 맞춰 부르짖는 평화개혁세력 대통합의 고갱이다. 이해찬급 저그 20마리로 이명박-박근혜 캐리어 두 대를 물리친다는 무모한 시나리오에 견주면, 다수의 고속정 편대를 동원하는 벌떼작전으로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최신예 이지스함을 격침하겠다는 임종인 제독의 전략구상은 단연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시청률 조사에서 ‘커피프린스 1호점’이 ‘강남아줌마 따라잡기’를 앞선 상황이다. 현민주나 윤수미나 그 년이 그 년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톡톡히 작용한 탓이다. 윤수미와 현민주의 확실한 차별성이 존재했다면 ‘강남아줌마’의 시청률이 ‘커피프린스’를 월등히 압도했으련만, 한강다리를 건너자마자 민주는 수미와 똑같은 속물이 되어버렸다. 비록 졸부의 마누라일지언정 수틀리면 주저 없이 강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인 이미경(정선경)이 개중에서는 가장 자존심 세고 정신 똑바로 박힌 인물인 형국이다.
극의 분위기는 ‘커피프린스’가 ‘강남아줌마’와 비교해 한층 사치스럽다. 게다가 줄거리마저 유치하다.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신데렐라 스토리다. 그럼에도 시청하기에 무척 편안한 드라마다. 배경공간이 낯익고 친근한 느낌을 풍긴다. 원인은 간단하다. 트렌디 드라마로서는 이례적으로 종로와 중구를 위시한 강북지역이 무대를 이뤄서다. 우리가 흔히 목격하는 낡은 다세대주택과 비좁은 골목길이 화면에 등장한다. 기존 드라마들의 촬영장소는 휘황찬란한 강남거리가 대세다. 강남만 씹는다고 진짜 서민드라마가 아니다. 진짜 서민드라마는 진부하고 식상한 사랑타령을 되풀이하더라도 제작진의 시야가 강남을 벗어난다. 욕하면서 닮아간, 혹은 다가간 사람들로 말미암아 모순의 뿌리는 깊어지고 넓어진다.
이러한 원리는 정치에도 대입해볼 수가 있다. 강남요지의 수십 억 짜리 중대형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개혁세력의 일원임을 주장하는 족속들은 십중팔구 사기꾼이다. 이는 강남 사는 측근들로 청와대 참모진 구성한 다음 조선일보 논조와 한나라당 노선 따라잡기에 총력 매진한 노무현 정권의 경우에서 충분히 입증된 바다. 겉으로는 수구꼴통들과 대립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할 짓 다하고 챙길 것 다 챙긴다. 예컨대 부동산으로 재테크하고, 아이들 미국으로 조기유학 보내며, 주말마다 골프장 예약한다.
강남부자를 흉내내고자 발버둥치는 인간들이 강남패권을 타파할 수 없는 것처럼, 라이프스타일에서 이명박과 판박이인 종자들은 이명박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그들의 비판은 오히려 이명박을 돕는 역할만 한다. 강남아줌마 출입금지인 커피프린스를 내가 즐겨 찾는 이유다.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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