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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경선 8월 19일은 소련 쿠테타의 날

옐친과 시민들은 보수세력의 쿠테터를 막았다


한나라당이 대통령 후보자 선출을 위한 당내경선을 예정대로 치를 모양이다. 8월 19일에. 국민원로는 여기에 관해 일부러 침묵을 지켰다. 제발 날짜 변경하지 말라고. 왜냐? 8월 19일은 정당행사를 개최하기에 몹시 부적절한 날이기 때문이다. 엄청 재수 없는 날이다.

1991년 8월 19일을 기억하시는가? 이날, 세계 주요 외신들마다 긴급뉴스를 타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련에서 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다. 야나예프 부통령을 필두로 한 강경보수파들은 흑해로 휴가를 떠난 고르바초프 대통령 일가를 현지의 대통령 전용별장에 감금한 다음 자신들이 정권을 장악했음을 선언했다. 음모자들은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을 뒤엎음으로써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시도했다.

옐친이 이끄는 시민사회의 저항과 군부의 비협조로 말미암아 보수파의 권력찬탈은 3일 천하로 끝났다. 쿠데타가 실패한 결과로 소련공산당이 얼마 후 불법화되었고, 1991년을 마지막으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독립국가연합에 자리를 물려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기득권에 집착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세력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수구세력은 개별국가의 상황에 따라 때로는 좌파적 성격을 띠기도, 때로는 우파의 외관을 갖추기도 한다. 다수민중의 피땀을 착취해 소수의 특권층만 호의호식하겠다는 도둑놈 심보야말로 이념적 성향에 상관없이 모든 수구세력의 공통점이다. 1991년의 소련 수구세력의 거점이 공산당이었다면, 2007년 대한민국 기득권집단의 아성은 한나라당이다.

역사의 진보와 사회의 발전이 잠시 주춤한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더욱 멀리 도약할 힘을 비축하려는 목적에서다. 1991년 8월 19일의 소련수구파는 고르바초프만 쫓아내면 저희들의 부귀영화가 영원히 보장될 걸로 착각했다. 한국의 수구기득권도당은 2007년 8월 19일의 한나라당 후보경선만 무탈하게 마무리되면 세상이 곧 뒤집힐 줄 안다.

정치권 인사들은 점을 매우 즐긴다.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길일을 묻기 일쑤다. 한나라당한테 필요한 건 부채도사가 아니었다. 고등학생들 공부하는 세계사 교과서의 연표만이라도 대충 훑어보는 최소한의 성실성이었다. 한나라당이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었다면 소련공산당이 무모한 역모를 획책했다가 쫄딱 망한 8월 19일을 대선후보 경선일로 택일하지는 않았을 터. 8·19 한나라당 경선은 박상아와 전재용이 하필이면 5월 18일을 골라 웨딩마치를 울린 격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게으름과 멍청함을 마냥 기뻐하기만은 이르다. 노무현이 고르비가 아니듯이, 범여권 대권주자들은 배짱 두둑한 카리스마로 수구세력의 발호에 단호히 맞섰던 옐친 같은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다. 멀어도 한참 멀다. 보수파의 쿠데타 소식을 듣자마자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를 위시한 소련 각지의 인민들은 거리로 뛰쳐나가 역사의 반동을 온몸으로 막았다. 현재의 한국민중들 또한 집밖으로 나서기는 매한가지다. 그들은 애들 보습학원으로, 아파트 모델하우스로, 증권사 객장으로 달려가기 바쁘다.

역사에는 공짜가 없다. 참고사례로 기능할 수는 있을지언정 역사 스스로 알아서 자동적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8월 19일이 미래의 역사책에서 어떤 날로 기록되고 평가될지는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뼈를 깎는 자성과 주체적 결단에 전적으로 달려있는 셈이다.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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