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헌책방을 통해 ‘트루만 회고록’을 샀다. 초판이 나온 날짜가 1971년 4월 10일이다. 내가 구입한 책은 동년 11월 30일에 발행된 7판이다. Truman의 한국어 발음이 ‘트루먼’이 아닌 ‘트루만’이던 때다. 신문은 물론이고 웬만한 책들 또한 전부 세로로 인쇄되던 시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글씨 크기마저 매우 작다. 10분만 읽어도 눈이 아프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진도 참 안 나간다.
바뀐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그냥 ‘트루먼 회고록’이라 부르기로 하겠다. 트루먼의 회고록이 한국서 번역출판된 1971년은 마침 전태일이 청계천에서 분신자살한 해다. 11월 13일의 일이다. 내가 아직 전태일 평전을 읽지 않았다. 게으름 탓도 크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못된 놈들이 착한 사람 괴롭히는 이야기는 부아가 치밀어서 끝까지 진중하게 대하지 못한다. 때문에, 같이 숙직하던 선배가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온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눈물콧물 훌쩍이며 볼 적에 난 억지로 귀를 틀어막고 기어이 잠이 들고야 말았다.
사실은 ‘트루먼 회고록’이 더 열을 받아야 마땅한 책이다. 트루먼은 이토 히로부미 이상으로 우리겨레의 운명에 커다란 먹구름을 드리운 인물이다. 그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한민족은 쓰라린 분단의 고통과 참혹한 전쟁의 시련을 차례로 겪었다.
그럼에도 절판이 되었다. 독자들이 찾지 않으므로 출판사에서 찍어낼 까닭이 없다. 절판된 지가 하도 오래된 터라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 덕분에 12권짜리 ‘세계의 대회고록 전집’을 통째로 샀다. 예전에 찜해뒀던 24권짜리 세트는 이미 누군가 사간 뒤였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는 소리는 순 뻥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정말 제대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인 국가면 미국인들이 자기나라의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손꼽는 트루먼의 회고록이 아이아코카나 빌 게이츠의 자서전 못지않게 한국의 출판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으리라. 미국과 친한 척하는 부류는 허다할지언정 진실로 미국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계층은 드문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미국에 머물고 있는 숱한 유학생들은 아까운 달러만 축내는 밥버러지라고 믿는다. 미국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의문스러운 사항이 있는 분들께서는 차라리 나한테 연락을 주시기 바란다. 친절하고 상세히 설명해드리겠다. 원래 서울 안 가본 녀석이 남대문에 관해서 더욱 소상히 아는 법이다.
여기까지는 광고고 지금부터가 본방송이다. 노국공주 서지혜가 향단이로 변신한다. ‘커피프린스 1호점’ 후속작품으로 배용준이 출연하는 ‘태왕사신기’가 곧장 방영될 예정이었단다. 한데 방영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9월 3일과 4일 양일에 걸쳐 대체프로그램이 편성된다. 서지혜 주연의 ‘향단전’이다. 우리나라 전래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패러디하고 짜깁기한 신세대풍 퓨전사극이란다. 꽤 재밌을 듯싶다. 서지혜양 팬을 자처하면서도 ‘오버 더 레인보우’를 외면했던 게 굉장히 미안한 터였다. 엊그제 생일을 맞은 그녀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드라마 광고해봤다. 꼭 시청해주시라. 재미없으면 날 욕해도 좋다.
다시 제공, 즉 광고방송을 시작하겠다. 한국사의 8월은 고분고분 물러가지 않는다.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을 1910년 8월 29일, 우리는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겼다. 그 얄미운 일본을 트루먼은 원자탄 두 방으로 혼내줬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두 동강냈다. 원자폭탄에 뒤지지 않는 충격과 분노를 한국인들에게 안겼다. 병 주고 약 준, 아니 약 주고 병 준 꼴이다.
역사란 참으로 묘해서 동아시아에 끼친 끔찍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미국 현지에서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추앙된다. 그를 향한 후세의 평가는 날이 갈수록 후해지는 추세다. 미국이 자랑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가 적지 않게 작용한 인상이다. 트루먼은 고졸이다. 무식한 레이건조차 땄다는 대학졸업장이 그에겐 없다. 노무현이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무렵 수많은 국민들은 루즈벨트에서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진보개혁의 황금시대가 한국에서도 김대중과 DJ에 의해 재연되길 희망했다.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무엇보다 노무현이 트루먼과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노무현은 지미 카터의 얼굴을 한 조지 부시였다.
절판된 트루먼 회고록만큼이나 전태일에 관한 기억 역시 찬밥신세다. 이제는 청계천 하면 대뜸 이명박부터 떠오른다. 이명박 입장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인 선거캠페인을 수행한 셈이다. 적의 상징가치를 나의 정치적 자산으로 용도변경시켰으니까.
이명박만 남의 것 가져다가 장사하란 법 없다. 범여권 대선주자 캠프의 참모들을 가끔씩 만날 적마다 나는 이명박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기습적인 전격전을 구사해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지루한 토론회에서 이명박 비판하지 말고, 이명박의 본진인 청계천으로 대담하게 쳐들어가 이명박을 성토하라는 전략이었다.
장사꾼의 천적은 장사꾼일 걸까? 직업정치인들은 죽어라 듣지 않던 훈수를 뜻밖에 문국현 진영이 접수했다. 청계천 뒷골목에 자리한 봉제기술 훈련기관 수다공방에 들러 이명박의 급소를 구석구석 찌른 것이다. 수다공방은 전태일의 여동생 전순옥씨가 대표로 있는 곳이다. 요즘 허다한 사람들이 갑자기 목 놓아 문국현을 외치는 연유가 조금은 이해되는 바이다. 앞으로 여기저기서 ‘Fly me to the moon' 메아리치겠네.
여러 가수들이 'Fly me to the moon'을 열창했다. 한국에선 일본의 걸작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테마곡으로 유명한 노래다. 잘 부른 경우만 들으면 따분하다. 못 부른 사례가 궁금하다. 영화배우 김윤진이 딱 걸렸다. 노래실력 완전 꽝이다. 김윤진에 견주면 '불후의 명곡' 진행하면서 매번 음치라 놀림 받는 탤런트 김성은은 인순이고 이선희다. 확실히 하늘은 공평하다. 미모에 머리에 연기력에, 어느 한 군데 빠지는 구석이 없으리라고 생각되던 그녀였는데…. 인간 누구에게나 하나씩 약점은 있게 마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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