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힐러리 클린턴 상원 의원(뉴욕주)의 '독주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민주당 후보 지명을 위한 당내 경쟁에서는 바락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주)를 큰 격차로 따돌렸으며, 공화당 후보들과의 양자대결도 모두 큰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린턴 의원의 '독주'는 여론조사 지표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제(1일) 발표된 라스뮤센리포트(www.rasmussenreports.com) 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의원은 민주당 후보지지도에서 44%를 얻어 22%에 머문 오바마 의원에게 '더블 스코어'로 앞서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지난 9월 27일 발표된 Foxnews/Opimion Dynamics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 내에서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는 46%대 39%, 프레드 톰슨 전 상원의원에게는 48%대 35%, 그리고 존 매케인 상원 의원(아리조나주)에게는 46%대 39%로 모두 오차범위를 벗어난 리드를 잡고 있다. 이는 두달 전 조사와 비교할 때 각각 2%(46대 41), 4%(47대 38), 4%(45대 42)씩 더 벌어진 것이며, 줄리아니 전 시장과 매케인 의원의 경우 양자대결서 오차범위를 훌쩍 넘어섰다.
워싱턴 정치평론가들은 이같은 클린턴 의원의 절대 강세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바람몰이, 오바마의 부진 그리고 공화당 후보들의 혼전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3개월 전부터 방송출연, 모금파티 참석, 특별강연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톡톡히 '외조(外助)'를 하고 있다. 그는 "힐러리를 선택하면 부록으로 빌까지 얻는다"는 메시지를 미국민들에게 주며 적극적인 바람몰이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왕(上王)'이라는 비아냥에 대해서는 "어떠한 포스트도 맡지 않고, 국정운영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뒷자리에서 힐러리를 보좌할 것"이라며 미국민들의 우려를 진정시키고 있다.
오바마 의원의 부진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9월 22일 조사 당시의 35%대 27%와 비교할 때 도리어 격차가 14%나 더 벌어졌다. 기부금 규모에 있어서 클린턴 의원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공화당 후보들과의 양자대결에서도 모두 앞서있음을 감안할 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지표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흑백 인종갈등에 대한 미온적 반응으로 흑인들과 유색인종들의 지지세가 위축되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흑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있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클린턴 의원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 후보들의 혼전 양상도 '클린턴 독주'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줄리아니-매케인 양자구도 속에서 줄리아니 전 시장이 여론의 우세를 보이던 흐름이 프레드 톰슨 전 상원 의원의 레이스 합류로 '시계 제로' 상황으로 돌변하였다. 톰슨 전 의원이 9월 6일 대선후보 출마선언 이후 일약 선두로 뛰어오르더니 그 후 줄리아니와 엎치락뒷치락 오차범위 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매케인 상원 의원의 추격세도 계속되고 있다. 30%를 넘는 후보도 아무도 없고, 10% 이하인 후보도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 상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낮은 인기와 이라크주둔 미군 철수에 대한 공화당의 어정쩡한 입장이 이들 후보들의 경쟁력을 조금씩 갉아먹는 형국이다.
정책발표를 통해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얻는 경쟁에 있어서도 클린턴 의원은 다른 후보들에게 앞서고 있다. 지난 28일에는 "미국 정부가 미국 시민권자에게서 태어나는 신생아에게 액면가 5천달러(약 460만원)의 국채(savings bond)를 나눠주어 이들이 18세가 되는 해에 이것을 시가로 매각하여 학자금 혹은 결혼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독특한 공약을 내놓았다.
공화당에서는 이것을 '무책임한 선심성 공약'이라면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그 후 힐러리의 여론조사 지표가 호전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적지않은 파괴력을 나타내고 있다. 라스뮤센리포트 여론조사에서는 27%가 이 공약에 찬성하고 60%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책에 대한 찬반 흐름과 후보 지지율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 공화당측이 적잖게 당황하고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클린턴 의원의 이번 공약이 미국인구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찬성'보다 '반대' 흐름이 높게 나타날 수 있지만 친공화당 성향 및 중도성향의 지지자들을 클린턴 의원 쪽으로 돌려놓는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 중 이 공약에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민주당 내에서 클린턴 의원 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계속 지지할 수 밖에 없고, '가족간의 유대'를 중요시하는 공화당 성향 지지자들 중 일부에게 이 공약이 상당한 호소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로 20~30대가 많이 분포해있는 중도성향 지지층에게도 대단히 현실적인 공약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클린턴 의원이 세원조달 및 지원방법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경우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이들은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속단은 금물이다. 2004년 대선을 앞두고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높은 인터넷 지지 열기 속에 민주당 내에서 상당기간 독주하다가 존 케리 상원 의원(매사추세츠주)과 존 에드워즈 상원 의원(노스캐롤라이나주)에게 허무하게 무너진 전례가 있다. 비록 오바마 의원이 현재는 클린턴 의원에게 크게 뒤지고 있지만 미국 최초의 흑인(혼혈)후보라는 점과 40대의 '젊은 피'라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클린턴 의원이 높은 지지층 만큼 광범위한 안티계층을 갖고 있는 반면, 오바마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토층이 대단히 적다.
한국의 대통령선거 레이스에서는 이명박 후보와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박근혜를 비롯, 한명숙, 추미애, 심상정 등 여성후보들이 잇따라 고배를 마셨으며, 현재는 민주당의 장상 후보만이 겨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장 후보 역시 민주당 경선에서 최하위권을 형성하고 있어 그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과연 한국정치가 꽃피우지 못한 '여성 대통령'의 꿈을 미국이 2008년에 이룰 수 있을까? 세계 유일 초강대국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과연 여성이 앉을 수 있을지에 대해 지금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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