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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미소녀는 괴로워

중학생마저도 문화산업 전쟁에 나서는 현실


약속한 대로 남북 정상회담에 관심을 끄겠다. 노무현이 북한에 머물고 있는 동안은 한국정치와 관련된 주제를 가급적 언급하지 않을 작정이다. 따라서 오늘부터 며칠 동안은 정권컨설팅 대신 연예평론에 주력하련다.

사람의 생각은 다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며칠 전에 함께 술을 마셨던 후배가 내가 다루려던 아이템을 날름 선점해버렸다. 우리가 술자리에서 벌였던 짤막한 논쟁을 잠시 소개하겠다. 심각한 말다툼은 아니었다. 굉장히 원초적이면서도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설전이었다. 서지혜와 김태희, 또는 김태희와 서지혜 가운데 누가 더 예쁘냐는 거였다. 국민원로는 당연히 서지혜를 편들었다. 후배는 주저 없이 김태희의 손을 들어줬다.

토론의 요점은 김태희의 학벌에 있었다. 서울대 졸업장으로 말미암아 김태희의 미모가 과대평가됐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후배는 정반대 견해를 피력했다.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사실로 인하여 그녀의 아름다움이 오히려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논리였다. 역차별의 희생자라는 투였다. 최종평가는 제3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겠다. 대학 못 가고 상고만 나왔다는 이유로 영화사에서 퇴짜맞았던 이태란의 사례를 관전포인트로 삼기 바란다.

서지혜가 예쁘냐, 김태희가 예쁘냐 하는 말싸움이 부질없는 짓거리임을 깨닫고 말았다. 선거에서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기듯, 대중문화에서는 대충 엇비슷한 조건일 경우에 어린 게 아름다운 걸 누르기 때문이다. 후배가 방금 이야기한 원더걸스 앞에서는 김태희도, 서지혜도 누리꾼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 소위 떡실신을 당하고 만다.

지구촌 전역에서 외모 지상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성들의 외모 가꾸기를 엄격히 단속하기로 소문난 이슬람세계에서조차 화려한 무늬와 빛깔의 히잡이 날개돋친 듯이 팔린다는 소식이다. 가히 미녀시대다. 더군다나 미인박명도 옛말이다. 요즘에는 영양상태가 양호한 지역과, 소득수준이 상위권인 계층일수록 예쁜 여인네들이 많이 배출된다. 잘 먹고 잘 살아야 미녀 되기도 쉬운 세상이다.

뭐든지 과하면 탈이 되는 법이다. 미녀의 시대에서 멈췄으면 괜찮았으련만 소비대중의 욕망과 문화자본의 전략은 급기야 미소녀의 시대를 열었다. 인구구조의 전반적인 고령화 추세와 맞물리면서 미소녀에 대한 수요는 더욱더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 평균연령이 높은 서유럽에서 젊은 정치인이 약진하는 배경에는 노인들의 이른바 영계선호가 자리하고 있다. 청년인구가 많은 제3세계의 통치자들은 대개가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원로급 정치지도자들이다. 유권자들이 굳이 젊은 집권자를 특별히 필요로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방심한 틈에 논의가 정치로 엇나갔다. 연예계로 복귀하자. 나는 주된 취미생활이 인터넷에서 가요동영상 구경하는 거다. 원더걸스의 ‘tell me’는 후배의 지적처럼 엄청난 중독효과를 발휘한다. 이렇게 강력한 중독성을 경험하기는 쥬얼리 이지현의 ‘게리롱 푸리롱’ 이후 처음이다. ‘게리롱…’이 한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무렵, 이불 펴고 잠자리에 누우면 이지현의 음성이 귓가를 간질이곤 했다. 그럼 다시 컴퓨터를 켜고 쥬얼리의 라이브 동영상을 음미해야만 했다.

원더걸스의 ‘tell mm’도 마찬가지다. 무의식중에 저절로 “텔 미 텔 미 텔텔텔텔텔 텔 미”라는 후렴구 혹은 추임새를 반복하게 된다. 게다가 이지현의 ‘게리롱 푸리롱’은 음향차원의 중독에 국한되는 반면, 원더걸스의 ‘tell me’는 노래 초반 멤버 전원이 일제히 연출하는 무용동작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으로도 최면에 빠지게 한다. 저러한 어깨춤은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추어온 보편적 몸놀림이다. b-boy의 춤사위는 멋있기는 하되 중독성과 전염력은 약하다. 일반대중이 따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탓이다.

내 개인적 기준으로는 다섯 명의 멤버들 중에서 곡의 도입부에 중앙에 서 있는 아가씨가 제일 섹시하고 매력적이었다. 한 번은 카메라가 그의 가늘고 얇은 발목을 클로즈업시키는데 굉장히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더라. 西土오랑캐 녀석들이 문명사회의 놀림감이 되면서까지 여자들 전족 고집한 게 순간 이해가 됐다.

포털사이트에서 원더걸스 구성원들의 인적사항을 당연히 검색해봤다. 사진 몇 장 골라서 모니터 배경화면으로 번갈아 깔아두게. 으악!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을 짓 했다. 발목이 예쁘장한 문제의 처자가 1992년 생이라니. 우리나이로 열여섯 살 먹은 중학교 3학년짜리다. 내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온 인간은 아닐지언정 파릇파릇란 중학생한테 음흉한 마음을 품을 정도로 띄엄띄엄 막 살지는 않는다. 물론 나도 변명할 구실은 있다. 요즘 청소년들은 신체발육이 무척 왕성하다. 몸이 빨리 여문다. 어른스럽게 입혀놓고 무대에 올리면 중학생이라고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카메라에 잡히는 인물들 밑에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6개를 일일이 써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내친 김에 원더걸스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조사했다. 월드스타 비를 키운 박진영이 야심적으로 육성한 미소녀 댄스그룹이었다. 참고할 가치가 있는 동양상 한 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원더걸스 멤버들이 리허설을 하는 장면을 담았다. 현란한 무대의상이 아니라 수수한 평상복 차림이다. 화장기도 없고. 여느 또래들같이 영락없는 애들이다. 동네 떡볶이가게에서 흔히 목격되는. 그냥 귀엽게 여겨질 따름이지, 엉큼한 호기심은 전연 유발하지 않는다. 이대로 곱게 자라면 5~6년쯤 후에는 제법 아가씨 티가 나겠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야구대회에서 특정 투수가 한 경기에 200개 가까운 공을 투구한 적이 더러 있었다. 그때 나온 비판이 이건 분명 아동학대라는 거였다. 생각해보니 맞는 소리다. 성인선수들이 활약하는 프로야구에서도 투구수가 100개를 넘으면 투수가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서너 경기를 쉰다. 요게 정상이다. 10대 청소년이 연일 수백 개의 공을 던지는 건 운동이 아니나. 노동이다. 것도 혹독한 중노동이다.

공연모습으로 금세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원더걸스는 데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쳤음이 명백하다. 그들의 훈련과정은 학습이라고 칭하기보다는 근로라고 불러야 어울린다. 원더걸스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춘 대가로 웬만한 성인들이 회사 다니면서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거둔다. 그러나 어른이 하여도 피부에 해로울 진한 분장에다가 밤무대에 출연해도 무방할 복장을 하고서 쇼를 펼치는 것은 실상 파렴치한 아동학대에 다름 아니다.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담론이 사방에서 무성하다. 한류를 확대재생산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민관을 불문하고 드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숙한 10대 초중반 소년소녀들이 이끄는 콘텐츠발전과 한류바람이 우리나라의 미래에 장기적 관점에서 과연 긍정적으로 작용할지는 참으로 의문이다. 틴에이저들이 외국인 관광객 마사지하면서 외화벌이 주도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오직 혐오와 경멸뿐이지 않은가?

거리의 청소년들만 학교와 가정으로 돌려보내서는 곤란하다. 방송국 무대 위의 청소년들도 가정과 학교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배려해야 할 때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드라마의 과도한 아역의존 관행도 조속히 불식돼야 마땅하다. 아역 탤런트가 빠지자 연속극의 흐름이 쳐지는 작금의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내달이면 청계천 의류공장의 10대 소녀들을 가정과 학교로 돌려보내고자 전태일이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른 지 만으로 37년째가 된다. 공장에서 해방된 아이들이 이제는 방송사와 콘서트현장으로 끌려간다. 문화산업의 첨병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그들은 심각한 노동착취에 시달린다. 기획사와 부모들은 그들이 벌어오는 목돈에 눈이 멀고 이성을 잃기 일쑤다.

한나라당이 불러들인 IMF 관리체제의 후유증과 노무현 정권이 심화시킨 양극화의 영향으로 비록 몸살을 앓고 있으나, 한국경제가 여중생들마저 문화산업 전쟁의 최전선 총알받이로 차출해야 할 만큼 어렵지는 않다. 나는 원더걸스의 ‘tell me’가 그들의 마지막 히트곡으로 팬들에게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아직 성년에 도달하지 못한 팀원들은 학교와 가정으로 돌아가야 옳다. 이는 소녀시대를 비롯한 여타 아이돌팀들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 또한 원더걸스의 다양한 공연광경이 갈무리된 영상물을 감상하며 침을 흘린다. 동영상 제작자의 설명에 의거하면 무려 10시간의 작업시간이 소요된 분할편집된 버전이란다. 나한테도 능수능란하게 동영상을 요리할 재주와 기술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게 바로 중독의 무서움이자 국민원로의 한계임을 솔직히 인정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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