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위화도회군
툭 까놓고 말해서 이번 대선은 끝났습니다. 최종적인 국면반전의 기회는 당연히 있었습니다. 통합신당 만들 때였습니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선수끼리. 통합신당이 말이 통합이지 실제론 친노세력 털어내는 게 창당목적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김대중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특검과 분당 등을 소재로 노무현 정권을 맹타했지요. 그런데 이상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해찬이 동교동과 청와대 사이를 파발마로 몇 번 왔다갔다하더니만 DJ의 범여권 재편구상이 갑작스럽게 바뀌었습니다. 모두를 안고가야 한다는 쪽으로. 친노세력도 합류하라는 신호였지요.
이해찬을 통해 동교동과 청와대가 어떠한 메시지를 교환했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알겠죠. 하여튼 그 결과 영남친노들이 대거 신당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할 가능성은 영영 물 건너가고 말았습니다.
왜 위화도회군이냐? 이성계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요동수복을 포기한 비겁자라는 느낌이 먼저겠죠. 아닙니다. 그는 위화도회군 이전에는 단 한 차례도 임전무퇴의 정신을 저버린 적이 없던 맹장 중의 맹장이었습니다.
위화도회군은 고려조정의 2차 요동정벌이 낳은 부산물이었습니다. 1차 요동정벌 당시 이성계는 요동성에서 홀로 악전고투하며 거의 1년을 버텼습니다. 그때 고려의 국력은 요동을 함락한 이성계에게 증원부대와 보급물자를 도저히 지원해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악전고투 상황에서 요동을 차지해 지켰다는 사실은 이성계가 얼마나 용맹무쌍한 장수였는지를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그때 이성계가 차라리 요동성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나라를 세웠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신라-발해를 잇는 고려-조선의 남북국 공존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한민족이 광활한 만주벌판을 항구적으로 영유했을 터이기에. 이성계는 누르하치보다 이백 수십 년 앞서서 청나라를 건국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겨레의 힘으로.
그렇게 씩씩하고 용감했던 이성계가 무인으로 살면서 딱 한번 적군과 싸우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던 사건이 위화도회군입니다. 덕분에 조선왕조를 창업했지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한국사는 그를 요동을 이민족에 내준 새가슴으로 낙인찍은 것을. 게다가 이성계 개인으로서도 인생 말년에 왕자의 난을 연이어 겪으며 완전 폐인이 됐고.
저는 김대중을 굉장히 높게 평가합니다. 그는 민주화운동의 기수로서 수많은 긍정적 유산을 남겼으며, 대통령으로 재임할 때는 많은 치적을 쌓았습니다. 야당분열과 20억 수수, 측근 및 아들 비리 등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음에도, 그의 전체적 위상과 본질적 가치를 무너뜨릴 정도의 심각한 하자는 아니었습니다. 한데 삶의 종장에 이른 그가, 2007년의 대선정국에서 돌연 방침을 변경해 대통합민주신당에 친노세력을 받아들인 결정은 아마 두고두고 후세에 씹힐 겁니다. DJ를 장군에 비유하면 그가 현역으로 지휘하는 최후의 전투였으니까요.
국민원로는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DJ가 대관절 뭔 연유로 친노세력에게 마지막 순간 문호를 개방했는지. 80대 중반의 고령에 기인한 자연적 판단미스인지, 노무현이 DJ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탑승시킨 건지는 저로서는 알 도리가 없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비록 지금의 막장정국을 초래한 주역은 아닐지언정 최소한 마지막 결재도장을 찍은 것이 김대중인 점만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DJ가 오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은 존재합니다. 그가 일반국민과의 접촉이 끊긴 지가 금년으로 10년째입니다. 지난 10년간 DJ가 만난 사람들의 대부분은 고위관료, 실세정치인, 국내 외석학, 중견언론인, 재야명망가, 직업적 시민운동가 등입니다. 거리의 장삼이사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죠. 동교동을 둘러싼 인의 장막이 김대중의 눈을 가렸다기보다는 그가 처한 인터페이스가 그로 하여금 오판을 하도록 이끌었다고 할 밖에요. 민심과 멀어지면 누구나 판단착오를 저지르는 시스템. 그게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손해찬은 노명박의 도플갱어
국민원로가 누누이 역설했습니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정치적 도플갱어라고. 과거 노무현의 소위 수용소 발언의 이명박 버전이 요번 부시와의 면담불발 소동입니다. 노명박의 도플갱어 역할을 신당 경선에서 수행하는 인물이 손학규와 이해찬, 즉 손해찬입니다.
판 엎어지는 게 겁나서 손해찬과 얼렁뚱땅 타협하기를 정동영에게 종용하는 사람들은 노명박과 싸울 능력도, 의지도, 자격도 없습니다. 노명박과 싸울 능력도, 의지도, 자격도 없는 인간들이 한나라당 집권저지를, 영남패권 타파를, 양극화 극복을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쌈 싸먹는 소리입니다. 손해찬과 타협하려는, 노명박을 두려워하는 분들은 대한민국에서 손을 떼십시오. 뉴질랜드 이민 알선하는 국민원로의 친구를 소개해드릴 테니.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전두환과 노태우 시대에 학생 시위대가 수없이 외치던 구호입니다. 광주학살의 진상을 규명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요구였죠. 며칠 전 아는 선배가 제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답답하다고. 현재의 구도와 분위기 아래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이후에는 과연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국민원로는 자신 있게 향후의 행동방침을 설명했습니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한나라당에 정권을 팔아넘기게 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들을 어떠한 형태로건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긴 경위와 과정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유시민, 이해찬 등의 정권헌납 주모자들을 가차 없이 응징해야죠. 성역도, 예외도 없는 엄정하면서도 서릿발같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영남친노의 세력확장에 이바지한 과오가 국민원로에게 있음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실체적 진실이 뚜렷이 밝혀지고, 영남친노세력의 수괴들이 단죄된 다음에는 제 스스로 역사의 법정에 출두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무엇을 할까 막막하다고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입니다. 부산정권이 확실히 역사를 20년은 후퇴시켰습니다. 80년대의 레퍼토리를 다시금 꺼내야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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