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의원이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해 문국현 진영에 가세했다. 당적까지 정리하고 문국현 캠프에 합류한 현역 국회의원 1호다. 그는 탈당과 아울러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원로는 김영춘 의원의 결정이 매우 아쉽다. 그와 독대할 기회가 있었다면 분명 정반대의 선택을 권유했으리라. 내가 하려던, 이제는 쓸모없게 된 훈수를 글로나마 소개해보련다. 부산 출신인 그가 먹튀, 즉 먹고 튄 노무현을 대신해 호남에 보은하라는 취지였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든 절대로 당에서 뛰쳐나가지 말고. 타의로 쫓겨나는 경우는 상관없으나.
나는 문국현 사장의 홈페이지 동향을 꼼꼼히 파악한다. 대문에 띄워놓은 거창한 공약들을 보려함은 아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게 정치다. 정치인의 진정한 정체성과 궁극적 지향점은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의 면모와 성격에서 드러난다. 문사장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 분위기는 노사모 웹사이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친노성향의 인터넷 정치웹진들에서 광적으로 노무현을 빨아줬던 네티즌들이 종전의 필명과 아이디를 그대로 유지한 채 문국현 홈피의 터줏대감으로 행세한다. 노빠들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최후의 안전지대인 셈이다.
그들 터줏대감들은 문국현을 ‘노빠의 방주’라고 생각해 탑승한 불쌍한 난민이 아니다. 문국현 진영의 명실상부한 오피니언 리더다. 노무현 정권은 성공한 정권이고 그러므로 문국현은 노무현의 정책기조를 충실히 계승해야 마땅하다는 의견을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서슴없이 개진한다. 문국현이 상속해야만 한다는 노무현의 가치와 노선에 한미FTA와 영남 퍼주기가 끼어있음은 물론이다.
혹자는 우리가 문국현 홈페이지로 쳐들어가 문사장과 영남친노들을 갈라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친노집단이 문국현을 일방적으로 짝사랑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문국현과 친노세력은 이미 합방식마저 치른 사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PK지역의 주요한 친노인사들이 문국현 지지대열에 동참했다는 소식이다. 출처가 어디냐고? 어느 매체보다 현지사정에 정통할 부산일보다.
문국현의 화답 또한 당연히 있었다. 친노와 반노를 불문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재의 정치권에서 친노세력까지 포용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대권주자는 오직 문국현뿐이다. 국민화합을 강조하려는 목적에서의 단순한 덕담 차원이라 해석하면 곤란하다. 친노세력과 커플링을 교환한 문국현 진영에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김영춘 의원이 들어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를 직접 만나 만류하지 못한 것이 후회될 따름이다.
어차피 조만간 들통날 관계다. 문국현 사장은 외곽을 빙빙 돌면서 친노세력을 단계적으로 영입하지 말고 본인이 노무현의 후계자임을 정식으로 선포하기 바란다. 이삭줍기하는 솜씨만 살핀다면 누가 감히 문국현을 정치 문외한이라 부르겠는가? 단 한 명의 노빠도 새지 않을 정도로 뽀송뽀송한 문사장의 친노 흡수능력을 바라보니 유한킴벌리가 생산ㆍ판매하는 여성용품이 수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이유를 알 듯하다.
경상도 노빠들이 요 며칠 입에 달고 사는 레퍼토리가 있다. 노무현의 국정지지율이 조사기관에 따라 최대 53퍼센트까지 치솟았다는 자랑이다. 이명박 지지도와 막상막하 수준이다. 문사장은 자신감을 가져도 괜찮다. 임기 말기에 53프로의 지지율을 과시한 집권자는 대한민국 역사상 노무현이 유일하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사장에게 연락해 인터뷰 한번 더 갖자고 제안하라. 인터뷰를 빌려 당당하게 커밍아웃하시라. “저 문국현이야말로 노빠중심 진짜친노 후보입니다!”라고.
통합신당의 대통령 후보자를 선출하는 국민경선에서 한 가지 결과만은 확실하다. 이해찬은 안 된다는 거다. 이해찬이 왜 고소고발 남발하며 저리 추해졌겠는가? 자기가 무너지면 친노후보는 대선정국에서 전멸되고 만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문국현 사장이 친노후보로 안착하면 이해찬은 팔자에 없는 법무사 노릇을 즉시 포기하고 깨끗하고 정정당당한 포지티브 선거전을 펼칠 수 있다.
“참여정부가 아이젠하워의 공화당 정부보다 더 진보적인가? 아니었다.” “지금의 신당은 한나라당과 아무런 차별성 없는 성장지상과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로부터 과감히 절연해야 한다.” 김영춘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의 내용이다. 뭔가 조화되지 않는다. 심각한 불협화음이다. 서민경제가 파탄 나고 민생이 도탄에 빠졌다는 논리는 조중동 프레임 탓이라고, 신자유주의가 반드시 나쁜 이념만은 아니라고, 참여정부는 유연한 진보라고 강변하는 영남친노세력이 소위 문함대의 핵심전력을 구성한다. 김영춘 의원을 제도정치에 입문시킨 김영삼처럼 김의원 역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뛰어들었다고 주장할 요량인가?
김영춘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서평도 실려있다. 서평제목은 ‘사라진 여진의 꿈’. 프랑스 역사학자 르네 그루쎄가 1939년에 저술한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 관한 감상문이다. 김의원은 서평을 통해 우리민족이 광활한 만주벌판과 절연된 현실을 가슴 아파한다. 그의 서평을 읽은 국민원로는 언젠가 광개토대왕비를 함께 찾아가 서로 부둥켜안고 못난 후손들의 과오를 사죄하며 대성통곡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차라리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서평이었다. 김의원은 ‘유라시아…'를 일독한 소감을 마음속에 조용히 간직했어야 옳았다. 말로써는 드넓은 대륙이 자아내는 사나이다운 기개와 진취적 기상을 찬양하고선, 행동으로는 한반도 동남쪽 귀퉁이에서 국회의석 몇 개 얻자고 연정이네, 개헌이네 온갖 비루한 수작질을 벌였던 작자들이 점령한 곳에 가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한반도 철새망국사’란 자서전이라도 손수 집필할 작정이신가? 사라진 김영춘의 꿈을 안타까워하면서 나는 오늘 단골서점에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를 전화로 주문했다.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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