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사장이 이끄는 신당이 드디어 닻을 올린 모양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10월 30일 오후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창조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냥 모른 체하고 넘어가려다가 쓴소리라도 조금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사장과 창조한국당 당원들은 축하는 못해줄망정 초부터 친다며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마시라.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선은 ‘추대’라는 표현이 매우 거슬렸다. 창조한국당이 문국현을 중심으로 급조된 정당임은 알겠으나 대통령 후보를 추대형식을 빌려 뽑는다는 것이 참으로 거시기하다. 체육관 선거하던 유신시대도 아니고. 수구꼴통들의 집합체로 지탄받는 한나라당조차 각종 공직선거 출마자를 이제는 경선으로 선출하는 세상이다. 위장경선이라도 좋으니 뭔가 경쟁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편이 좋았으련만. 정 여건이 안 되면 정범구와 김영춘을 들러리로 세워 즉석 인기투표라도 실시하던가.
개인적 이야기를 해야겠다. 몇 년째 알고 지내는 선배를 지난주에 만났다. 나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다. 속내를 모두 털어놓을 정도로 친밀하지는 않되 마음에 없는 소리를 덕담이랍시고 주고받을 만큼의 사무적인 관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시국에 관한 정보와 정세분석을 교환하는 걸로 끝날 줄 알았던 자리가 약간 이상하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선배가 나의 의견을 구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문국현 진영에 결합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차에 마침 내가 머리에 떠올랐다는 거였다. 국민원로가 보기에는 고민하고 말고 할 값어치가 없는 문제였다. “선배님, 가지 마쇼!”
선배는 ‘노명박’이란 화두에 무척 공감하는 눈치였다. 노무현과 이명박을 동시에 타격하지 않으면 대통령 선거는 기본이고 내년 총선까지 희망이 없다는 진단과 시각을 나와 공유하고 있었다. 선배가 최종적으로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여러 지인들의 견해를 골고루 취합해 거취를 결정한다고 말했으니까. 마당발 성격의 인물이기에 그가 접촉한 인간들 중에는 문국현 지지입장을 취한 이가 필시 존재했으리라.
인터넷을 검색해 신당의 창당발기인 명단과 대의원 명부를 조사하면 선배가 문국현 캠프에 합류했는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다. 허나 그럴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가 가든 말든 창조한국당은 조만간 좌초할 터이고, 창조한국당이 주저앉건 말건 선배는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훌륭하고 성실하게 소화해낼 테니까. 망한 나라의 유능한 충신. 선배가 문함대에 동참했을 경우 그에게 주어질 운명이리라.
선배의 문국현행을 만류한 가장 큰 이유는 노무현에 대한 문국현의 모호한 태도에 있었다. “죄는 미워해도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 현재 문국현이 견지하고 있는 참여정부 평가기조다. 문국현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은 분명 옳다. 그럼에도 죗값은 죄가 아닌 죄인이 치른다. 노무현 정권의 정책은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노정권 식구들은 반갑게 맞아들이는 모순된 행동은 두고두고 문국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전망이다.
얼마 전 장성민이 문국현을 상대로 노이즈 마케팅을 펼쳐 짭짤하게 재미를 봤다. 노사모 핵심인사들이 문국현 캠프에 대거 들어갔다는 주장이었다. 전 노사모 대표로 영남친노세력의 마스코트라 할 노혜경을 포함해서. 확인해보니 동명이인으로 밝혀졌지만. 정확히는 밝혀졌다는 것이 문국현측의 해명이다.
본질은 노혜경 한 명이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문국현이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친노세력을 새롭게 결집시키는 노빠의 방주 혹은 숙주 노릇을 한다는 데 있다. 친노세력이 살아나면서 노무현 정권을 파멸시킨 그릇된 시책들마저 어영부영 복권되는 양상이다. 좌파 신자유주의의 창시자가 노무현이라면 2대 교주로 문국현이 취임한 형국이다.
국민원로는 문국현과 친노세력의 연대를 차단하려 노력한 적이 잠깐 있었다.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모든 병균은 저항력이 약하거나 위생상태가 불량한 사람들의 몸에 주로 침투하는 법이다. 달라붙은 영남친노세력만큼 달라붙도록 허락 내지 방조한 문국현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난치병일수록 합병증 증세를 많이 띠기 마련이다.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 친노 단일후보 이해찬이 미역국을 마시기 무섭게 노빠들 여럿이 문국현에게 달려간 마당이다. 이참에 유시민도 가고, 안희정도 가고, 이광재도 가고, 김병준도 가고, 이병완도 가고, 이기명도 가라. 노빠 여러분, 다들 목청 가다듬고 구호 한번 힘차게 외쳐봅시다. “가자 문국현으로! 오라 문국현으로! 만나자 문캠프에서!”
‘창사랑노빠(약칭 창노빠)’라는 신조어가 온라인에서 한때 유행한 적이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을 지지했다가 이후 노빠로 전향한 정치인과 유권자들을 경멸조로 일컫는 단어다. 이회창 찍었다고 하여 노무현 지지하지 말란 법은 물론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몰표 덕택에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이 자신의 경쟁자인 이회창을 밀었던 계층과 집단의 이해와 요구에 영합하는 가치와 노선을 좇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상도 출신의 기회주의적 창노빠들이 노무현 지지기반의 중추부를 형성ㆍ장악하면서 노무현 정권의 보수화와 우경화는 통제불능의 지경으로 내달렸다.
창조한국당! 누가 지은 당명인지는 모르지만 참 엿같이 지었다. 초보적 브랜드 지식과 최소한의 네이밍 감각만 있어도 정당명칭을 요따위로 허접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창조한국당이란 낱맡을 접하자마자 나는 대뜸 ‘창노한국당’이 연상됐다. 창사랑노빠한테 점령당해 실패의 나락으로 빠져든 노무현 정권처럼, 문국현 진영 역시 원래의 지지자들이 이탈한 공백을 스멀스멀 기어들어온 패잔병들이 채우면서 쇠락과 부패의 징후가 역력해졌다. 문국현과 창노한국당, 아니 창조한국당의 미래가 내 족집게 예언과는 다르게 전개되기를 바란다.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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