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혐오는 반대로 귀결된다. 그러나 모든 반대가 혐오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롬멜과 몽고메리는 반대입장이었으나 서로 혐오하지는 않았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단순한 반대관계가 아니었다. 서로를 철저히 혐오했다.
2002년의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국민들의 대부분이 이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똘똘 뭉친 경상도 태생의 영남친노들만이 아직까지도 노무현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했다. 진보개혁진영이 노무현한테 표출하는 혐오감을 이명박을 향한 조갑제의 태도에서 발견하고야 말았다. 소위 좌파정권 종식을 위해 그동안 꾹꾹 억눌러온 조갑제의 혐오의 감정이 이회창의 대선출마 선언을 계기로 봇물 터지듯 분출한 결과다. 반대하기에 혐오하기 시작한 게 아니다. 혐오하므로 반대하게 된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노무현을 주제로 쓴 마지막 신문칼럼이 참 인상적이었다. 한국일보에 실린 글이었는데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실패한 궁극적 원인은 그가 근본 없는 인간인 탓이란 지적이었다. 부산에서 요트나 타던 부유한 조세 변호사가 민주화운동에 우연히 뛰어들었다가 어찌어찌해서 대통령이 됐다는 거였다. 특별히 도덕적이거나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병적인 승부욕에 더하여 주변 정치상황까지 유리하게 작용한 덕분에 노무현이 정권을 잡을 수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요 칼럼을 끝으로 강교수는 직접적인 노무현 비판을 신문지상에서는 더는 하지 않고 있다. 재수 없는 인간에게 침 한번 걸쭉하게 뱉은 다음 깨끗이 관심 끊어버린 격이다. 강준만 교수 조만간 성불하시겠다.
기초부터 차분하게 준비하지 않고 운과 요령에 의지해 집권에 성공하면 한결같이 뒤끝이 좋지가 않다. 운과 요령에만 뛰어난 인사를 대표주자로 내세웠던 집단은 재기불능의 치명상을 인과응보로 입게 마련이다. 문제는 듣보잡들이 자기들 동네에서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면 운과 요령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정치는 듣도 보도 못한 잡놈들에게는 천혜의 블루 오션이다. 변화무쌍한 우리나라 정치판은 차근차근 실력을 닦으며 미래를 설계할 틈을 좀처럼 허락하지 아니한다.
조갑제는 선수 특유의 육감과 직관이 발동한 눈치다. 이명박을 우두머리로 삼아 정권을 탈환하면 대한민국 보수 전체가 앞으로 5년 후에 지금의 범여권 꼬락서니가 되리라고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많은 이들이 후회 막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지 않는가? 노무현이 차라리 정권을 잡지 못했더라면 민주화세력이 오늘처럼 완벽히 결딴나지는 않았으리라고.
5년 전의 우리에겐 현재의 이회창에 비견될 경쟁력 있는 스페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최후의 마지노선이었다. 그가 듣보잡과 다름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민주화투쟁의 대오에 슬며시 끼어든 사실을 진지하게 숙고할 여유가 없었다.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이명박은 공사판에서 함바집 운영하다가 얼떨결에 우익의 머리띠를 둘러맨 검증 안 된 미지의 인물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구기득권세력의 처지는 5년 전의 진보개혁진영 이상으로 다급하고 절박했다. 잡초든 잡것이든 상관없으니 정권만 되찾아주면 된다는 정서가 팽배했다.
정권교체가 확실해진 지금에서야 보수성향의 유권자들 눈에서 뒤늦게 비늘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해운대 앞바다서 요트항해 즐기던 유복한 세무전문 변호사가 진보의 짱을 먹었을 때 벌어졌던 참극이 이번에는 보수를 배경으로 주연배우 캐릭터만 약간 바뀐 채 고스란히 재연될 판국이니.
듣보잡의 헤게모니는 보스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똘마니들 차원에서도 관철된다. 이명박 주위에는 학생운동권 출신이란 콤플렉스를 가진 신흥 수구들과, 신혜식 등의 질적으로 떨어지는 3류 보수가 잔뜩 포진하고 있다. 어디선가 지겹도록 봐왔던 풍경 아닌가? 한나라당에 안 간 것이 아니라 못 갔다는 자격지심에 시달리는 영남 B급 인재들이 유연한 진보랍시고 설치고 다니는 노무현 정권과 너무나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국민원로는 이명박에 대한 조갑제의 혐오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래서 세상은 공평한 거다. 이쪽에서 폭탄이 터지면 언젠가는 저쪽에서도 반드시 폭탄이 터진다. 듣보잡들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법이다. 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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