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는 (건강보험료 축소납부)하면 되고 왜 우리는 안 돼?”
“대통령 후보도 자녀교육을 위해서 (위장전입을)했는데 왜 우리 아이는 전학해야 해?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에 언론에 보도된 위 두 가지 중 하나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료 축소납부가 적발돼 고액 보험료가 추징된 사람들의 항의 내용이었고 또 하나는 대구에서 모 중학교 학생들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 전학 조치되자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항의시위를 한 내용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실증적 사례 외에도 인터넷에 새로운 이명박 현상이 나타나면서 주목되고 있다.
우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이 전두환 군부 쿠데타에 협조하는 국보위 상임위원이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이 기사에 즉각 “뭐 전두환에게 협조했으면 어때? 이명박이 경제를 살린다는데...” 등의 댓글이 달렸다.
또 이런 댓글은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로 생업의 터전을 잃고 시름에 빠진 현지 어민들의 가슴 아픈 뉴스에도 “바다에 기름 좀 있으면 어때? 이명박이 경제를 살린다는데....”라고 붙는가 하면, 심지어 파키스탄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부토 전 총리가 사망했다는 기사에도 “그게 뭐 어때? 이명박이 우리 경제만 실리면 되지”라는 엉뚱한 댓글까지 달리면서 네티즌들이 냉소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네티즌 사이에는 이런 이명박 현상이 생기기 전 노무현 현상이 완전히 지배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는 용어로 귀결되었다. 국내외 어떤 사안이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가 통했고 급기야 이 용어는 인터넷에서 세상으로 나와 국민 전체에 회자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것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로 통했다.
이 같은 자조성 댓글이나 뻔뻔 댓글의 유행과 확산형태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료하며 빠르다. 포털 사이트 등에 게재되는 어떤 기사에도 “그러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혹은 “그러는 게 대수냐. 이명박이 경제를 살린다는데” 등의 비아냥에서부터 “나가죽어라 너 같은 건 이명박이 경제 살리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저주성 댓글까지 천차만별이지만 결론은 이명박이라는 단순성이다.
예를 들어 “테러 좀 나면 어때. 이명박이 경제를 살린다는데.”(파키스탄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암살 관련 보도에 대해), “폭설 좀 내리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대설 주의보 관련 보도에), “유괴 좀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댓글에는 또 그 밑에 “나가 죽어라. 너 같은 건 이명박이 경제 살리는데 도움 안 된다” 식이다.
이는 ‘노무현 댓글 놀이’를 연상케 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 놀이는 지난해 5·31 지방선거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진 후 긴 생명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17대 대선에서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는 맹위를 떨치더니 대선패배가 확정되자 “결국은 노무현 때문이야”로 귀결되었다.
하지만 이런 인터넷 댓글 놀이를 모두 일종의 ‘분풀이식’ 말 장난에 불과하다고 간과하면 안 된다. 아니 반대로 이 댓글의 대상인 이명박 당선자와 한나라당은 더욱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는 땅투기 의혹, 주가조작 의혹, 건강보험료 축소납부, 자녀 위장취업과 위장전입 등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노무현 때문이며 경제 때문"이라는 자조와 한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경숙 위원장의 ‘국보위 경력’ 논란은 이 같은 ‘이명박 댓글 놀이’의 전형이다. 이 위원장이 1980년 신군부가 만든 국보위 입법의원을 지낸 경력이 문제가 되자 이명박 당선자 측은 “과거는 묻지 말라. 능력만 있으면 된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자 바로 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쿠데타에 협조했으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라는 글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댓글들은 이 당선자의 인사정책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롱과 냉소를 보내는 것으로 네티즌들에게 읽혔다.
또 이 같은 이명박 댓글에는 어김없이 “그런데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오르고 그 다음엔 다시 “서민경제 말고...”라는 답도 오른다. 더구나 이 당선자가 재벌총수들과 만나서 “기업친화적인 정부가 되겠다”라는 말을 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즉각 “그러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가 올랐고 곧 바로 “그래 재벌 경제 살려서 집값 좀 팍팍 올려, 나 집 팔고 떠나게”가 그 뒤를 따랐다.
김영삼 정부 유행어는 “YS는 못 말려”였다. 그리고 YS를 말릴 사람이 없어서 결국 IMF에 부탁했다.
노무현 정부 유행어는 “놈현스럽다”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로 자연스럽게 통합되었다. 국립국어원에서 신조어로 “놈현스럽다”가 등재될 정도인데다 대선패배로 인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이상의 유행어를 나올 수 없도록 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쓸쓸한 퇴장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아직 취임도 하지 않은 당선자 측은 벌써 “맹박스럽다”를 완벽한 유행어로 히트시켰다. 그리고 목하 “하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 라든지 “뭐 어때? 이명박이 경제를 살린다는데...”를 히트 댓글 반열에 올리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경제에서 조금만 국민의 눈 밖에 난다면 “그게 경제 살리는 거야?”라는 비아냥이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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