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거래에서 계약서를 작성할 경우 계약을 체결하는 쌍방 가운데 한 쪽은 갑(甲)이 되고, 나머지 한 쪽은 을(乙)이 되는 법이다. 갑과 을은 결코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갑이 주(主)이고 을은 종(從)이다. 즉 전자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뜻이다. 왜냐? 돈줄을 갑이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갑이 변심하면 을은 ‘고난의 행군’에 나서야 한다. 만약 관(官)이 갑이고 민(民)이 을이면 고난의 행군조차 소용이 없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청계 이명박 선생이 갑과 을의 역학관계를 새롭게 뜯어고칠 모양이다. 그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는 동안 관을 상대하면서 겪었던 설움을 측근 인사들에게 털어놨다는 것이다. 민간인 신분으로 경험한 과거의 설움이 정부조직 개편작업을 밀어붙이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국민 위에 고압적으로 군림하기 좋아하는 관료들의 오만방자한 권위주의적 자세를 혁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평생 갑으로만 지내온 공무원들의 못된 습성을 이참에 확실히 고쳐놓지 않으면, 공직사회의 비효율을 영원히 극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의 소산인 셈이다.
국민원로는 이와 같은 흐뭇한 희소식을 접하자마자 속담 하나가 느닷없이 머리에 떠올랐다. “시집살이 독하게 한 며느리 못된 시어머니 된다!” 나한테 금년에 재운이 있단다. 큰돈이 수중에 굴러온다나. 사람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토정비결이었다. 주위 어디에도 돈 나올 구석이 없는데. 한데 점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나의 착상을 말없이 가져간 것이다. 이제는 수금만 하면 된다. 그러나 당선자 측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날로 먹으려는 심산인 듯싶다.
국민원로가 ‘실용정부’ 대신 ‘이명박 정부’로 다음 정부의 이름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 때가 지난 12월 21일이었다. 실용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중간에서 당선자 진영이 갈팡질팡하던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아흐레가 경과한 구랍 12월 30일, 새 정부의 호칭이 이명박 정부로 공식 확정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전해졌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인수위원들 사이에 이에 관련된 토론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신빙성이 의심스런 설명이다. Brand Naming이란 영역이 하루 이틀 귀동냥으로 정복될 성질이 아닌 탓이다. 고도의 전문성과 장기간의 훈련이 요구되는 분야다. 인수위 대변인이 밝힌 명칭 채택의 이유와 배경은 내 블로그에서 제시된 내용 및 논리와 매우 유사하다. 표절과 도용의 흔적이 짙다.
나는 2002년 대통령 선거전서 노무현 캠프가 내가 창안한 광고카피를 임의로 사용하는 것을 관대하게 용인한 바가 있다. 그를 지지해서였다. 청와대에 들어간 노무현이 한나라당의 정권탈환에 앞장설 걸 예견했더라면 정상적으로 저작권을 행사했으리라.
국민원로는 청계 이명박 선생을 지지하지 않는다. 공들여 개발한 브랜드를 그에게 ‘봉헌’할 까닭이 전혀 없다. 더군다나 차기 정부는 기업친화적 정책노선을 천명한 터다. 사익추구의 권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국정운영기조를 설정했다. 친기업을 외치는 차기 정부가, 한 개인이 수년간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로 탄생한 고유 브랜드를 사실상 몰수해갔다. 사유재산의 강제 몰수는 사회주의 체제 정권들의 대표적 통치행위다. 사유재산을 몰수하는 기업친화적 정부! 말인지 막걸리인지 엄청 헷갈리는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원로가 만든 브랜드다. 청계 이명박 선생은 부하들이 무상으로 징발해간 브랜드 상품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시기 바란다. 차기 정부가 나의 지적 재산에 대한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명박 정부야말로 겉은 시퍼렇지만 속은 완전 새빨갛게 익은 수박정부임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데 매진할 것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한다고, 정식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청계 이명박 선생은 왜 몰인정한 갑부터 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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