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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4 VS 88, 타워팰리스의 대선 투표

다시 억울하면 돈벌고 출세하는 시대


지인이 맛있는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약속하여 중랑구 면목동을 다녀왔다. 서울의 서북부다. 수도 서울 가운데서도 제일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히는 동네다. 낙후의 원인은 그곳 주민들의 나태와 무능에 있지 않다. 한강 건너 특정지역의 무한정하고 무절제한 물질적 탐욕에 기인한다.

청담동 사람들에게는 면목동보다는 Manhattan이나 Beverly Hills가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훨씬 가까운 곳이다. 청담동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 어떨까? 태평양 너머 뉴욕의 케네디 공항에 가본 적이 많은지? 면목동과 인접한 상봉동 시외버스 터미널을 이용해본 경험이 많은지? 청담동과 면목동은 지하철 7호선으로 여덟 정거장 거리다. 미국은 8마일, 한국은 여덟 정거장. 빈부를 나누고 계급을 가르는 물리적 거리의 표현이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미국식 Global Standard에 봉헌하고자 불철주야 기울여온 노무현과 영남친노세력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오늘도 노무현이 또 이겼다!

면목동과 청담동이 얼마 전 드물게 의견일치를 이뤘다. “심판 노무현!”으로. 청담동과 면목동의 기상천외한 의견일치를 깨는 방책을 지인과 의논하려는 만남이었다. 바람직하지도, 상서롭지도 않은 국론통일을 종식시키려는 목적의.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는데 지인이 오케스트라 공연을 구경하자는 제안을 불쑥 해했다. 웬 오케스트라? 것도 고전음악 감상의 격식과는 거리가 먼 잠바때기 차림으로? 중랑구청에서 신년음악회를 연다는 거였다. 집에 가서 일일연속극을 시청하느니 그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못해본 일들이 수두룩하기에. 연애와 더불어 클래식 음악회 구경도 그 중 하나다. 구청이 주최하는 행사라 무료였다. 정말로 신기한 사실은 중랑구에 오케스트라 연주단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망우리 공동묘지가 조건반사적으로 연상되는 궁벽한 자치구에.

중랑구청에 당도하니 1부가 끝나고 2부를 준비하는 휴식시간이었다. 장내 분위기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객석에 아이들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10분 이상 뭔가에 집중하기 어려운 아주 어린애들이. 아이들을 별도의 탁아시설에 맡겨놓고 공연을 진행하기가 현실여건상 무리인 모양이었다.

공연안내 팸플릿을 살피니 아는 단어가 딱 두 개다. 모차르트, 베토벤. 굳이 한 개를 추가하자면 'Vivace' 길거리에서 흔히 눈에 띄는 경양식집 이름이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관람할 기회가 없었으므로. 이른바 ‘삑사리’가 발생하지 않은 걸로 미루어 중랑구라는 이미지가 풍기는 부정적 선입견을 불식하고도 남음이 있는 실력인 것 같기는 하다. 솔직히는 모르겠다. 나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여하튼 공연시간 동안 딴생각은 잠시 했을지언정 전혀 졸지는 안았다. 오케스트라의 타악기와 관악기는 청중이 졸지 못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책임진 듯싶다.

공연이 끝나고 지인과 함께 야식으로 멸치국수를 먹은 다음 집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동네가 1호선 노량진역과 7호선 상도역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인 터라 편하게 돌아왔다. 열차가 청담동과 논현동 사이의 구간을 통과할 때는 혹여 예쁜 아가씨들이 전동차에 타지는 않을지 기대가 되더라. 오렌지 수확에 실패한 미모와 지성이 철저히 반비례하는 된장 계열의 젊은 여성들이. 욕하면서 동경하는 나쁜 버릇을 나는 완전히 졸업하지 못했다.

상도역에서 하차하니까 후배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어느 냉동창고에서 불이나 수십 명의 인명이 희생됐단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을 써달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유구무언이란 응답을 발송했다.

관련속보가 연이어 전해진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하청회사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따라서 정확한 피해상황조차 파악하기 힘들다는. 노무현 정권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재난방지 시스템이 작동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노정권의 졸렬한 국정운영 덕분에 권력을 잡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시스템은 분명 작동하지 않을 전망이다. 아니, 비록 허울뿐이었던 시스템마저 아예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지향하는 기업친화적 정부는 행정규제의 완화 내지 혁파를 정책의 골간으로 삼는다. 완화 내지 혁파하려는 규제에는 안전관리규정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만 된다면 사람목숨은 얼마든지 없어져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이다. 소위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안전불감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노무현의 개망나니 짓거리와 이에 따른 이명박의 청와대 무혈입성 모두를 막지 못한 역사의 죄인인 내가,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명박 정부의 싹수 노란 사고방식을 새삼스레 비판해서 뭐하겠는가? 이명박 정부에 대해 규제의 완화 내지 혁파를 가장 소리 높여 요구하는 계층은 면목동이 아니라 청담동에 거주할 테고, 청담동 살면서 위험한 냉동창고 공사장서 일하는 사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리라.

2,274 대 88. 이 숫자의 뜻을 아시는가? 요번 대통령 선거에서 집계된 타워팰리스의 득표수다. 전자는 이명박이 얻은 표수고, 후자는 정동영한테 투표한 유권자들의 머릿수다. 타워팰리스 거주민들이 예상외로 무신경한 인상이다. 자신들의 주거공간을 독립된 투표소로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정치성향 뻔히 들통 나게. 재산으로 튀는 자들이 정치적으로도 튀면 오래 못 간다. 그래서 청담동이 도곡동의 한 수 위라는 건가? 이명박 정부 아래서 산업재해로 다치고 숨질 면목동과 청담동 사람들을 비교한 비율도 아마 이와 비슷하리라. 면목동이 2,274명이면 청담동은 88명. ‘88만원 세대’의 기막힌 변종인 셈이다.

중랑구청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구경한 후에 떠오른 느낌들을 거칠게 정리해봤다. “억울하면 돈 벌고 출세해!” 타워팰리스에서 이명박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2,274명의 유권자들은 지금쯤 나머지 국민들을 향해 이렇게 호통치고 있지 않을까.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시간 나시면 타워팰리스 담벼락에 소금이라도 좀 뿌리고 오시라. 국민들에게서 간만에 박수 받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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