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나마 경과보고를 하련다. 청계 이명박 선생 당선 축하연이 지난주 토요일, 노량진의 작은 술집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청계 선생한테 투표한 유권자는 예상한 바와 같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청계 이명박 선생의 앞날이 순탄치 않다는 소리가 나도는 거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줄을 대려고 혈안이 된 출세주의자들을 빼면 누구도 그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선사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미래가 없다. 국물과 이권의 공급에는 한계가 따르는 탓이다.
취흥이 한창 고조될 무렵, 축하연 참석자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했다. “경부운하는 이명박의 로망입니다.” 한반도 대운하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지적이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청계 이명박 선생이 운하공사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근본연유를 날카롭게 짚은 셈이다.
로망(Roman)이란 무엇인가? 사전은 이를 중세 프랑스 문학의 운문체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사전적 의미를 벗어난 실생활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을 뜻하는 로맨스(Romance)의 약자로도 쓰인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함의를 띠기도 하다. 결코 양보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인생의 지상명제를 일컬을 때다. 이상(Ideal)이 다소 추상적이면서도 여성적 측면이 있다면, 로망은 보다 구체적이고 남성적인 맥락을 지닌다.
소설가 이외수로부터 기초적 한글맞춤법조차 모른다고 된통 면박을 당한 청계 이명박 선생이다. 국민원로는 청계 선생이 염두에 둔 로망은 당연히 단순한 문학 장르의 지칭 차원에 머물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범인은 도저히 상상하기 벅찬 자기만의 웅대하고 숭고한 삶의 지향점이 그의 가슴속에 분명 똬리를 틀고 있으리라.
이명박은 철저히 계산에 입각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이다. 손해나는 장사는 무조건 사절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청계 이명박 선생이 충분한 사전검증을 거친 이해타산에 근거해 운하공사를 밀어붙인다는 분석과 진단을 내놓는다. 난 정반대 의견이다. 꼼꼼한 셈법에 기초해 내린 결정이었다면 운하공약은 대선승리와 동시에 흐지부지, 유야무야됐다. 대통령 선거서 청계 선생을 막가파식으로 두둔한 조중동 등의 강남신문들은 이명박에게 한반도 대운하에서 발을 뺄 계기와 명분을 이미 풍부히 제공한 터다. 건설회사가 모기업인 SBS만이 총력체제로 경부운하를 빨아주는 상황이다.
인간의 로망, 특히 사나이의 로망은 이해득실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로망을 추구하는 당사자마저도 로망이 자신이 이제껏 공들여 일군 모든 성과와 업적들을 모조리 말아먹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허나 로망을 버릴 수가 없다. 왜냐? 정답은 허망하다. 로망이니까. 황당무계한 로망으로 이익을 얻는 개인과 집단은 물론 존재한다. 로망을 좇는 데 중독된 사람이 강대한 권력을 쥐고 있다면, 로망을 부추기는 족속들이 권부에 두루 포진하고 있기 마련이다.
경부운하로 말미암아 이명박은 수양제와 비교되기 일쑤다. 그렇지만 양제의 로망은 운하가 아니었다. 수양제 양광의 로망은 고구려였다. 양광의 로망은 수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왕조가 붕괴e되는 과정에서 그는 부하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로망으로 패망한 인물들은 수양제 이외에도 부지기수다. 김일성의 로망은 적화통일이었다. 그는 로망을 구현하고자 한국전쟁을 도발했다. 전쟁의 비극적 결과에도 아랑곳없이 김일성은 허황된 로망에 병적으로 집착했다. 그의 사후에 수백 만 명의 아사자를 발생시킨 북한의 식량기근 사태도 결국은 적화통일의 망상에 종속된 비효율적 경제체제의 산물이다.
노무현의 로망은 영남이다. 노무현은 경상도서 자파의 표가 느는 것을 개혁의 알파요 오메가로 여겼다. 대북특검도, 이라크 파병도, 민주당 분당도, 대연정 제안도,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영남지역에서 후한 평가를 받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책들이다. 노무현은 영남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일을 마침내 성공적으로 완수해낸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모임과 행사마다 경상도 사투리만이 시끌벅적하게 울려 퍼지는 잔존 친노세력의 현주소는 노무현이 동경해온 로망의 정체를 가감 없이 폭로한다.
삼성그룹의 강점은 합리적 사고와 깔끔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삼성의 자랑인 깔끔한 이미지와 합리적 사고는 최근 몇 년 동안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이건희의 로망이 이재용인 까닭에서다. 총수의 로망이 기업이 아니라 가족이 될 때 무슨 소동이 빚어지는지를 시장과 국민들은 삼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적나라하게 관찰하는 중이다. 아들은 아비의 로망. 솔직히 좀 인간적이긴 하다.
사람의 로망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형성된다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청계 이명박 선생의 로망은 그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잉태된 인상이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 전형적 사례다. 토목공사가 로망이 되어버렸으니. 한반도 대운하는 우리나라 건설업자가 그릴 수 있는 최고의 로망이다. 국민원로가 만약 공사판에서 로망을 키웠다면 나 역시도 경부운하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기획했을 게다. 즉 사업의 타당성과 경제성을 둘러싼 과학기술적 논의는 운하건설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인간의 로망은 대화와 설득으로 단념되지 아니한다. 오직 힘으로만 막을 수 있다. 로망을 거꾸러뜨리는 힘은 로망의 주인공이 몸담거나 주도하는 조직 내부에는 있지 않다. 내부에는 권력자의 그릇된 로망을 터무니없이 미화시킨 대가로 엄청난 반대급부를 챙기는 아첨꾼들만 가득할 뿐이다.
수양제의 로망은 고구려 기마병의 창끝에 박살났다. 김일성의 로망은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의 로망과 이건희의 로망과 이명박의 로망은 현재진행형이다. 노무현의 로망은 이해찬의 탈당에서 입증되듯 아직도 살아있다. 이건희의 로망은 삼성의 어마어마한 금력에 기대어 성취 단계에 도달했다. 이명박의 로망은 그가 현직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기간만큼은 현실화를 목표로 부지런히 달음질칠 전망이다.
힘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인간의 로망을 저지할 길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새로운 로망을 불어넣는 것이다. 청계 이명박 선생이 하나님께 대한민국을 봉헌하겠다는 로망을 심중에 간직한 로망의 1순위로 승격시켰으면 좋겠다. 파다 만 운하보다는, 개종되다 만 사회의 원상복구가 단연 쉬울 테니까.
이해찬에 관한 촌평을 덧붙이는 걸로 로망에 대한 고찰을 마치도록 하겠다.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 신임 당대표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탈당계를 반려해야 옳다. 이해찬에게 어울리는 대우는 탈당이 아닌 출당이다. 여당을 야당으로 전락시킨 이상의 해당행위는 없다. 본드 마시고 학교건물에 방화한 불량학생이 자퇴가 아니라 퇴학 형식으로 학교를 관두는 것처럼, 온갖 꼴값을 떨며 한나라당에 정권을 헌납한 이해찬 따위의 운동권 귀족들은 탈당이 아닌 출당으로 민심의 무서움을 깨달아야 마땅하다. 이해찬에게 은퇴는 사치다. 퇴출이 적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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