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서도 굼뜨고, 굼뜨면서도 빠른 정치인이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다. 한데 최근의 박근혜에게선 민첩한 기동력을 느낄 수 없다. 5·31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이후 박근혜는 한 박자 뒤쳐진 모습만을 내내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전서울시장의 경부운하 구상에 맞불을 놓는답시고 부랴부랴 꺼내든 동아시아 열차페리 카드는 뒷북치기의 백미였다. 박근혜 캠프의 상상력 부재와 창의성 빈곤을 극명하게 노출시킨 희대의 아류작이었다.
박근혜 전대표에게 묻는 바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전시장의 은근한 연정관계를 이제야 눈치챘다는 말인가? 청와대가 결재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면 청계천 복원공사는 착공조차 어려운 사업이었다. 청계천 프로젝트는 이명박을 띄우고자 노무현이 승인한 회심의 퍼주기이리라. 대통령의 심복 중의 심복으로 통하는 안희정씨가 노골적으로 밝히지 않았던가? 한강전선이 아니라 낙동강 전선에서 용이 나온다고. 경부운하 기대여론을 타고 낙동강으로 침투하려는 이명박 진영의 돌파전술을 노련하게 뒷받침하는 절묘한 공간패스다.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세력은 영남 6두품 계급의 영구집권을 꿈꾼다. 경상도 진골혈통의 박근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장애물인 셈이다. 이명박과 노무현의 협공에 직면한 박근혜의 처지가 몹시 위태롭고 불안하다. 박사모 회원들이 4·19를 거론하며 이른바 ‘노명박 연대’에 분노와 배신감을 표출하는 게 당연한 노릇이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박사모마저 5·16 쿠데타가 아닌 4·19 방식으로 불의와 싸우겠다고 기염을 토하니. 박사모의 느닷없는 4·19 시민혁명 주장에 기함한 국민들이 수두룩했으리라.
힘으로 이명박과 부닥쳐서는 박근혜에게 승산이 없다. 게다가 저쪽은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응원을 등에 업고 있다. 노무현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현재 이명박을 지원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명빠를 자처하며 한나라당 홈페이지 토론마당에서 박사모 회원과 격론을 벌이는 상황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도 머리가 있다. 이명박 지지선언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지는 않을 게다. 노무현이 이명박을 민다는 소식이 세간에 파다해진 순간 이명박씨의 인기가 곧장 곤두박질할 터이므로.
대신 청와대는 이명박씨의 잠재적 라이벌들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끈질기게 괴롭힘으로써 이명박측에게 알토란같은 반사이익을 챙겨줄 전망이다. 이명박 대세론을 키운 것은 8할이 노무현 바람이다. 소멸된 줄로 알았던 노풍(盧風)이 역풍의 형태로 되살아난 형국이다. Incredible 노무현!
영남 비주류끼리의 평화적 정부이양
열린우리당 무력화는 식은 죽 먹기다. 영남친노 기간당원들을 총출동시켜 반신불수 상태에 빠뜨리면 된다. 집권여당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시각과 인식은 자식들과의 동반자살을 결심한 무능하고 잔인한 가장의 태도 및 심리와 유사하다. 내 새끼 내가 죽이는데 너희들이 웬 참견이냐는 타박이다. 고건, 김근태, 천정배 등의 범여권 대권주자들은 친노성향 당원들과 투쟁하느라 진이 전부 빠질 테고, 따라서 이명박과의 정면대결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손학규 전경기도지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스카우트 명단에 포함되었다는 풍설이 한동안 꾸준히 나돈 적이 있었다. 안씨의 발언은 손전지사는 애당초 고려대상이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노대통령의 독특한 정신세계에서는 비영남권 출신은 인물 축에도 끼지 못한다. 경상도 태생이라면 모든 게 용서가 되는데. 노무현 정권의 기준으로는 개혁과 수구는 추풍령고개를 경계로 갈라진다. 이념, 정책, 노선. 그런 거 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북한의 김일성 유일사상에 필적할 영남 유일주의라 하겠다. 단순한 지역주의의 변종이 아니다. 종교 그 자체다.
낙동강 전선이라고? 사실은 이명박 전시장의 근거지인 형산강 전선, 즉 포항이잖아? 한국정치의 발전을 도모하려면,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소속당원들의 견해와 평균적 지지층의 선호도를 충실히 반영하는 인사가 한나라당의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로 선출되어야 한다. 현직 대통령에 충성하는 장외집단이 야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 조직적으로 간여한다면 이는 심각한 민심왜곡이며, 한국민주주의에 조종을 울리는 파국적 사태다.
대통령은 현실정치에서 손을 떼야 마땅하다. 특히 한나라당에 3자개입하려는 욕심을 어서 접어야 옳다. 여당을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야당까지 들어먹어야 직성이 풀리시겠는가? 안희정씨 또한 차기 대선정국에서 모종의 중책을 수행하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유학을 떠나든, 이민을 가든 대권레이스가 종료하는 시점까지 한국에 없는 것이 바람직하다. 왕년의 386 학생운동권 스타로서의 명예와 순수성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다.
바랄 걸 바라야지. 노무현 대통령과 수하들더러 정치권으로부터 철수하라는 요구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명령과 똑같은 뜻이다. 정치는 그들의 본능이다. 본능은 버릇과 달리 고칠 수가 없다. 우리가 담당해야 할 과제는 박전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이 일으킬 외풍을 극복하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합에 정상컨디션으로 임할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건 박근혜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따위와는 별개의 차원이다.
소문난 근혜공주
정치가 노무현의 타고난 본능이듯이 공주는 박근혜의 천성적 체질이다. 영원히 평민이 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모범적 공주역할이나마 해주기 바란다. 박전대표가 침체에 빠진 이유는 자명하다. 모든 인간적 비극은 착각에서 비롯된다. 일일연속극 ‘열아홉 순정’을 인용해 이미 지적했었다. 노무현은 자기가 양국화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윤명혜 여사라고.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주말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를 예로 들겠다. 박근혜는 남들이 보기에는 미칠이인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설칠이다. 여기서의 미칠이는 물론 유일한과 이혼하기 전의 안하무인 왕싸가지 나미칠이다.
미칠이가 설칠이 행세를 하면 여간 큰일이 아니다. 미칠이는 다행히 극중에서 짝퉁 미칠이와 함께 부대끼면서 스스로의 부족함과 문제점을 깨달을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박근혜 전대표는 변화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좀체 감지되지 않는다. 짝퉁 박근혜 전여옥 의원을 3년 가까이 곁에 붙여놨어도 본인의 한계와 급소가 뭔지를 각성하지 못하고 있으니 탈인 것이다. 거울이미지는 귀중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는 자화상이기 마련이건만.
박근혜 전대표기 이명박 전시장에게 고전하는 원인을 파악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박근혜의 목표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왜 유일한이 미칠이와의 결혼을 망설였으며, 혼인한 다음에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신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하였겠는가? 미칠이의 본심이 헷갈렸기 때문이다. 저 여자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건지, 앙숙이었던 설칠이한테 빼앗기는 게 아까워 그냥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마음으로 나 유일한을 찜한 건지 미칠이의 속내를 알기가 힘들었던 까닭에서였다.
국민들은 박대표가 진짜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있는지 궁금해한다. 전세 불리하면 당권에 만족하고 대권을 언제든지 포기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다. 설령 정권창출에 성공하더라도 어떻게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함은 기본이고. 아버지의 영광을 재현하고 어머니의 한을 풀겠다는 포부는 지역구 국회의원 수준에서나 어울릴 법한 논리다. 박근혜 역시 DJ와 YS, JP와 노무현 못지 않은 분(탈)당 기술자이자 신당창당 전문가다. 당이 불의의 변고로 인해 중대한 위기에 봉착하면 미래연합2 만들어 혼자 내뺄 궁리를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전임 서울시장의 그릇과 깜냥을 국민들은 얼추 가늠할 수 있었다. 반면 박근혜는 두고두고 미스터리다. 왕년의 추억을 밑천으로 삼아 적당히 경쟁하는 시늉하다가 판돈 두둑이 챙겨 하우스를 뜨겠다는 계획을 박전대표가 계속 고집한다면 소문난 유신공주나 수첩공주의 굴레와 오명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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