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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쇠고기 연령제한은 노무현이 풀었다

봉하마을, 잔치는 끝났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이미지 하나를 갈무리해 소개해봤다. 누가 내 글을 퍼가면서 마치 피자 토핑(Topping) 같이 본문 위에다가 얹어놨더라. 이번에는 노사모에서 사이버공간을 괴담의 근원이라고 지목할지도 모르겠다. 자기한테 유리한 게 존재하면 정보의 보고고, 불리한 것이 발견되면 근거 없는 괴담의 유포지가 되는 곳이 대한민국 인터넷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인 최영미의 선언처럼 봉하마을의 잔치는 끝났다. 경향신문이 광우병 공포의 원인을 마침내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검역주권 상실의 근원이 노무현 정권이 졸속으로 체결한 한미FTA에 있음을 사설로 지적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한 달 가까이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음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 오마이뉴스와는 확연히 대조되는 논조다.

그러고 보니 오마이뉴스의 메인 기사에는 ‘노명박’이란 단어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은 듯싶다. 오연호 사장도 영업할 밑천이 바닥난 눈치다. 서역국에서 발생한 ‘믿을 건 조회수뿐’이라는 그릇된 생각에 전염된 걸 보면. 이거야말로 매체 운영자한테는 변형단백질 프리온보다도 100배는 조심해야 마땅할 병원균이거늘.

봉하마을의 잔치가 끝난 것을 기념해 대표적 친노논객 두 명이 한미FTA에 적극 찬성했던 내용의 글들을 인용하는 바이다. 그들 모두가 지금쯤 누구보다도 열심히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 전부 나와는 친분이 두터웠던 이들이라 필자들의 이름 또는 필명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기로 하겠다. 두 명의 지인에게 망신을 줄 수도 있어서다. 그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는 바이다. 진영 전체는 뭉뚱그려 욕할지언정 거기에 소속된 개인들은 특정해 비판하지 않는 국민원로의 행동원칙을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무너뜨린 셈이니까. 이런 짓 정말로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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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뚝심”

‘더 많은 수출, 더 많은 세금, 더 많은 복지’

박찬호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때 언론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하는가? 2005년 최홍만의 격투기 데뷔 때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은 격려하고 있는데 전문가라는 자들은 모두 비웃었다.

‘박찬호는 과연 성공했는가?’ 이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박찬호의 성과가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박찬호 이후 한국인들이 메이저리그를 우습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성과다.

박세리와 최경주는 PGA라는 우상을 깨뜨렸다. 한일월드컵은 세계수준의 축구라는 우상을 깨뜨렸다. 서태지는 팝송이라는 우상을 깨뜨렸고.. 조훈현은 일본바둑이라는 우상을 깨뜨렸다. 이게 기억해야 할 진짜다.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유난히 김기덕 감독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들의 마지막 자존심인 칸영화제라는 우상이 깨질까 두려워서이다. 홍상수가 칸에서 수상한다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홍상수는 괜찮은데 김기덕은 왜 안 되나? 우상을 팔아 일용할 양식을 조달하는 그들에게는 낡은 우상을 대체할 새로운 우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기덕을 새로운 우상으로 섬기기에는 먹물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거.

그들에게는 언제라도 우상이 필요하다. 우상이 그들의 밥그릇이기 때문이다. 우상을 깨는 사람은 대신 새로운 우상이 되어주어야 한다. 김기덕이 그들의 새로운 우상으로 등극하기에는 출신성분이라는 하자가 있다.

성직자들은 신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지식인들은 우상을 팔아 일용할 양식을 조달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상이라는 우상을 깨뜨렸고 노무현 대통령은 지식인이라는 우상과. 지식인 집단의 묵시적 카르텔이라는 성역을 깨뜨렸다.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노무현 리트머스 시험지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종교적 도그마에 의존하고 있었다. 매트릭스의 복제 스미스 요원이라는 정체가 들통나버린 것이다.

깨뜨려지는 우상과 성역

21세기의 위기는 부시 원숭이의 이라크 침략과 공사판 십장 이명박의 득세에서 보듯이 반지성주의의 대두에 있다. 이는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흐름이다. 문명의 본질로부터 비롯된다.

지식인이 사회로부터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 결과가 지식의 위기를 낳았다. 이는 지식인이 줄곧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해왔기 때문이며 현실에서 지식인의 예측이 무수히 빗나갔기 때문이다.

예전에 지식인은 통찰력에 의존했지만 지금 지식인은 이념이라는 편리한 도구에 의존하고 있다.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고 진영논리에 충실할 뿐이다. 그들은 십계명을 암송하는 종교인처럼 행동한다.

기상대의 예보가 빗나가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도입한 첨단 컴퓨터를 운용할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컴퓨터가 도입된 이후 지식인은 미래를 통찰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지식인 집단이 냉전의 해체와 구소련의 붕괴를 예견하지 못한 것이다. 동서독의 통합, 중국의 자본주의화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 결과로 지식인 집단은 대중일반의 신뢰를 잃었다.

첫째는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고..둘째는 지식이 고도로 세분화된 결과 자기분야에만 정통한 전문가 집단으로 추락했기 때문이고. 셋째는 이념에 집착한 결과 철학적 통찰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플랭카드를 들고 거리를 서성이는 의사들의 무리. 그들은 지식인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의사는 중인계급이었다. 의사집단이 자기네의 이익을 주장하기 위해 거리를 서성이는 한 그들은 더 이상 지식인일 수 없다.

지금 시민단체는 이익집단처럼 행동하고 있다. 거리에서 데모하는 의사나 대추리에서 농성하는 지식인이나 국민의 눈에는 똑같아 보인다. 그들은 진정성을 잃었다. 그들은 지식인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지식인이여! 진정으로 고뇌하고 있는가? 조금이라도 생각해서 말하는가? 민중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닌가? 대중에 대한 지배욕구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성찰이 필요하다.

인쇄술의 구텐베르크가 독일어로 인쇄된 성경을 보급하자 가톨릭 성직자들의 권위가 추락했다. 성서해석에 대한 사제계급의 독점권이 사라진 것이다. 박찬호 이후 자칭 메이저리그 전문가는 없어졌다.

서태지 이후 팝송으로 먹고살던 음악인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음악다방은 거리에서 사라졌고 DJ라는 직업은 없어졌다. 그들은 서태지를 증오한다. 우상이 파괴되자 우상을 팔아 양식을 조달하던 자칭 전문가들의 입지가 사라진 것이다.

바야흐로 지식의 위기다. 그러나 위기는 우상화된 지식의 위기. 복제된 지식의 위기, 지식인집단의 위기일 뿐이다. 낡은 지식의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지식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한 번은 겪어야 할 산고일 뿐이다.

지식인의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PC통신 초창기에는 악플러들이 없었다. 무개념 초딩도 없었다. 그때 그 시절이 좋았다. 그때는 피시툴스의 김현국 씨를 비롯하여 이른바 통신원로라 불리던 일군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네티즌들로부터 존경받았다.

어느 동호회를 가입해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모라도 벌어지면 단번에 친구가 되어버렸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고향친구 만난 듯이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그런 좋은 시절은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냉랭해졌다. 무덤덤해졌다. 절대인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희소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면 교통이 문란해지고 소통은 어려워진다. 전반적으로 물이 나빠지는 것이다.

1세기 전만 해도 지식은 대단한 것이었다. 비싼 수업료를 내야만 지식인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매너와 에티켓을 지키면서 그들만의 고상한 문화를 만들었다. 지금은 다르다. 아무나 지식인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일반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어떤 분야든 기득권을 폐지하고 문호를 개방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면 점차 무질서해진다. 화물자동차의 지입제도를 개선하고 문호를 개방한 결과 화물노동자가 더 어려워졌다.

독점과 특혜가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로스쿨을 도입하고 의료부문의 특혜와 특권을 철폐하면 더 좋아질까?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안고 가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어떤 동호회든 그렇다. 초기 단계에는 극소수의 골수 마니아들이 모였다. 그들은 서로를 존경한다. 그들만의 폐쇄적이고 고상한 문화를 만든다. 그러나 회원이 증가하면 변종과 이단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진정한 마니아는 없어지고 겉멋만 따르는 아류가 증가한다. 그들은 비싼 용품으로 치장하여 대략 흉내만 낼 뿐이다. 등산을 하든 여행을 하든 그렇다. 등산을 하러 와도 결국은 술을 먹고 여행을 하러 가도 결국은 술을 먹는다.

모든 것이 점차 나빠질 뿐이다. 그 때문에 지식인들은 우상화라는 방법을 쓴다. “그때가 좋았지. 니들이 게맛을 알아?”, “밥샙의 소나기펀치 모르나? 씨름꾼 최홍만이 감히 위대한 격투기의 세계를 건드리다니!”

그들은 성역을 만들고 경쟁을 제한한다. 신비감으로 포장하고 세련된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을 만들고 대중에게 허상을 심어준다. 그것의 장점도 있다. 그러나 개혁은 그래도 전진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원리상 하나를 바꾸면 전부 바꿀 수밖에 없다. 개방과 대중화에 따른 단점도 있지만 그 또한 안고 가야 한다. 거함이 항구를 빠져나와 대양에 이르러 한 번 방향을 정한 이상 앞만 보고 전진할 수밖에 없다.

지식인의 불편한 진실. 지식이 대중화될수록 권위가 추락하고 허상이 폭로되고 만다는 것. 알고 보니 도그마와 강령과 매뉴얼이라는 편리한 도구에 의존하는 스미스요원이었다는 진실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FTA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FTA의 의미는 대한민국호가 선진통상국가로 거함의 방향을 잡아간다는 데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의 경우에서 보듯이 반도나 혹은 대륙과 대륙의 길목에 있는 섬나라들은 모두 이렇게 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길목에서 이집트와 페르시아, 아랍과 유럽의 길목에서 지중해의 섬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초대형 소비시장 러시아와의 길목에서 네덜란드와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들.

서구와 동양 사이의 길목에서 일본,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으로 가는 관문에서 한국. 문명의 핵이 이동하는 길목에 있었던 나라들은 모두 이렇게 했다. 미국과의 FTA는 세계와의 FTA로 가기 위한 연습게임에 불과하다.

장차 영국이 몰락한다면. 그들의 섬나라 근성이 되살아나 미국에 밀착하고 EU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후진국이었던 아일랜드가 최근 되살아난 이유는 섬나라 특유의 고립주의를 버렸기 때문이다.

섬나라들은 개방과 고립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쇄국과 개방을 반복해 왔다. 지금 배가 부른 일본은 다시 섬나라 특유의 고립주의로 안주하려 한다. 외교를 포기하고 있다.

섬나라가 문명권 사이의 중개지나 거점이 아니라 자급자족 하는 고립된 섬이 되는 즉 망한다. 일본이 갑자기 고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21세기라는 이 문명의 성격이 이제 더 이상 일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FTA의 진짜 의미는 더 많은 수출, 더 많은 세금, 더 많은 복지로 대한민국호의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미 거함이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결사반대해도 결국은 더 많은 세금, 더 많은 복지로 갈 수밖에 없다.

FTA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기에 누가 집권해도 이제는 복지의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방향을 잡아가지 않으면 국가가 깨진다.

FTA는 대선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FTA는 우파가 진보에게 큰 빚을 진 셈으로 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균형감각 속에 기억되어 있다. 2002년 한나라당의 지자체 대승이 대선에 불리하게 작용했듯이.

국민은 이번에 진보가 대승적으로 통 크게 한번 양보했으니 대선은 보수가 통 크게 양보할 차례라고 판단하게 된다. 진보의 양보를 지렛대 삼아 보수의 양보를 끌어내기는 이제부터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자. 분명히 말하면 2002년의 승리는 진보의 단독집권이 아니다. 1997년은 김종필과 연합했고 2002년은 몽을 고리로 중도파가 가세했다. 중도파들이 노무현을 지지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회창이 대통령이라면? 이라크 파병은 당연히 불가, 천성산 사패산 해결불가, 새만금은 결정불가, 방폐장도 결정불가. 이 모든 일이 노무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진보와 창구가 있는 노무현만이 진보를 설득할 수 있으니까.

진보 쪽의 양보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 당시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뚝심의 노무현 밖에 없기 때문에 중도파들이 노무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까놓고 말하자. 불편한 진실을 말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 아니면 IMF와 같은 비상시국에 진보세력을 통제할 수 없고 민초들을 설득할 수 없다. 그들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 오직 김대중 전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치는 역설에 지배된다. 진보의 승리가 진보의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되지만 단기적 손실을 수반한다. 자부심을 얻고 대신 실리를 내주게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유권자들이 민노당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는 그들의 주장이 옳아서가 아니라 민노당만이 성난 농민과 노동자들을 진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민노당이 없고 김근태 등이 단식하지 않으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그런 점에서 김근태, 천정배들의 논리가 옳지는 않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그들의 단식으로 해서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농민들이 무질서하게 시위하는 것보다 민노당 깃발 아래 뭉쳐있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왜? 그래야지만 그들의 불만을 집약하여 재벌과 한나라당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과 한나라당을 압박하여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 민중에게 더 많은 복지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으로만 상황을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김근태, 천정배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민노당도 시민단체도 비난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FTA가 아니라 이를 고리로 한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 민중에게 더 많은 복지니까.

불편한 진실을 말하자. 농민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어떨까? 농민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있다. 농민들은 자부심을 얻은 대신 실리를 내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보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진보가 손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진보는 ‘노무현은 진보가 아니다’ 하고 강변하는 것이다. 왜? 손해 보기 싫으니까. 진보가 손해를 보아도 대한민국이 이득을 본다면 우리는 용기 있게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무엇인가? 만약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려면 노무현이 이번에 진보를 제압(?)해 보였듯이 조중동과 수구세력을 제압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의 행보는 어떤가? 조중동을 하느님처럼 섬긴다.

진보를 제어하지 못하는 진보 출신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보수를 제압하지 못하고 조중동에 끌려다니는 보수출신은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카리스마가 없고 위엄이 없고 영이 서지 않아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룰라만이 가난한 브라질 민중들에게 ‘딱 10년만 참고 기다려보자’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룰라 아니고 누가 감히 그런 엄청난 약속을 하겠는가?

룰라의 당선은 브라질 민중들에게 나쁜 소식일 수 있다. 당장 떡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10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답답한 소식이다. 만델라의 당선이 백인의 착취한 부를 빼앗아 흑인에게 나눠준다는 좋은 소식이 아니었듯이.

지금 진보가 한 번 더 권력을 내려면. 성난 민중들을 향해 ‘10년 더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 김근태 어린이가 그 말을 할 수 있나? 정동영 어린이가 그 말을 할 수 있나? 정운찬 어린이라서 다른가?

마찬가지로 이명박이 집권하려면.. 조중동과 수구세력을 향해 ‘당신들 이제 소원 풀었으니 앞으로 10년간은 입 닥치고 있어라’ 하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빌빌이 이명박에게 그런 뚝심이 없다는 사실.

큰 정치 해야 한다. 자기 지지자들에게 ‘10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큰 정치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의 선출은 결국 -현재의 희생을 수반하는- 미래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대한민국호의 전략은 입안되었다. 그것은 수출을 늘리고 그 이익을 빈곤층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기업의 더 많은 수출, 부자의 더 많은 세금, 민중에게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해야 한다.

‘기업의 더 많은 수출’은 FTA로 이미 확보되었다. 남은 것은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 ‘민중에게 더 많은 복지’다. 누가 이를 보증하는가? 누구를 믿고 약속하는가? 노무현이 세팅한 2007년 대선 어젠다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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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왜 하필 미국일까?

그동안 글쓰기 위한 자료 모으고 공부했다. 실탄은 충분히 준비됐다. 진지하게 논의해보자. 어제 글은 예고편이었다. 거기에 김성훈 상지대총장과 정태인 전비서관이 걸려들었을 뿐. 하여간 차근차근 나가보자.

진보진영의 패배주의와 민족주의

나는 진보진영의 패배주의와 민족주의, 미국 혐오증을 먼저 짚어보고 싶다. 한미FTA 논의에서 진보진영이 내놓고 있는 논리의 바닥에는 이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해결책이 없다. 각자의 신념 문제니까.

하지만 냉정하게 물어보자. 미국과 단교라도 할까? 민족주의 경제를 외치면서 북한식으로 해볼까? 나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살기 위해서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뒤처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마하티르가 버티고 있는 말레이지아 조차 내년 7월까지 타결을 목표로 미국과 FTA 추진중이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에서 가장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 아닌가? IMF 외환위기 당시 마하티르가 도발한 ‘아시아적 가치’ 논쟁을 상기하시기 바란다. 그런 말레이시아는 머리 총맞았다고 미국하고 FTA 추진하는가 말이다.

다시 한국이 서있는 자리, 그리고 세계경제

세계 지도를 머릿속에서 그려보라. 그리고 지역별로 구분해보라. 북아메리카가 있고, 남미가 있다. 유럽이 있고, 우리가 속해있는 동북아가 있고, 인도와 동남아가 있고, 아랍이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그리고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내 글을 읽으시라. 북미에는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의 NAFTA에 의해 형성된 미주 자유무역지대(FTAA)가 있고, 중미에는 중미공동시장(CACM), 카리브공동체(CARICOM), 남미에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이 있다.

유럽으로 가자. 유럽에는 유럽경제공동체(EC)를 뛰어넘어 1국가를 꿈꾸는 유럽연합(EU)가 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이 있고, 아랍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틀려서 추진하다가 실패했다. 아프리카 경제규모가 워낙 미미하니 논의에서 제외하자.

잘 보라. 세계경제는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외피를 쓰고 지역블럭화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지역간 블록을 형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타 지역 국가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다. 어느 국가들만 제외됐나? 인도와 러시아, 그리고 한국, 중국, 일본이다. 그래서 얼마 전 일본이 뜬금없이 동북아경제공동체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말 뜬금없이 말이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뜬금없는 건 아니다. 한미FTA 추진 때문에 불쑥 던진 제안이다)

지역블럭에서 제외돼 있는 나라들을 보라. 인도, 러시아, 중국은 브릭스 당사국이다. 일본은 이미 세계 최고의 경제선진국이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가 서있는 자리를 제대로 보시기 바란다. 세계 각국이 왜 WTO를 제끼고 지역블록 형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지역경제는 무역장벽이라고 일컫는 각종 관세의 점진적 철폐와 단일 경제공동체를 지향한다. 우리나라에게는 그 자체로 대단한 도전이 필요한 장벽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두루두루.

그리고 블록에서 빠져나와 있는 인도와 러시아, 중국은 맹렬히 치고 올라오고 있고, 일본은 이미 정상에 올라있다.

도대체 우리가 서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그렇다고 동북아공동시장 같은 경제공동체가 단숨에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고, 남미? 유럽? 그래서 그쪽하고도 FTA 추진하는 거다. 전 세계에 형성된 지역블록을 돌파하는 전략이 바로 각개격파다. FTA는 국가 대 국가의 협정이니까.

그렇다면 왜 하필 미국인가?

먼저 진보진영에 유감부터 말하고 싶다. 왜 반미감정 끌어내는가? 미국이라는 지점에서 논의가 엉뚱하게 흐르기 일쑤다. 그놈의 반미감정 때문이다.

세계경제에서 한국이 서있는 자리를 봤다면 동북아로 좁혀서 보자. 왜 하필이면 미국인지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중국, 일본이 과연 동북아공동시장을 순순히 만들까? 일본은 이미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선수를 쳤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미FTA는 단순히 물건너 미국과의 FTA가 아니라 바로 동북아 경제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대한민국의 승부수다. 지금 현상태로 굶어 죽지야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말라죽기 쉽상인 상황이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다. 정상의 일본, 치받는 중국, 지역블럭 형성할 인근국가 하나 없는 외톨이 대한민국, 그림 안 그려지나?

그래서 미국이다. 미국을 때려죽이고 싶든, 패죽이고 싶든, 미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다. 더구나 수출중심국가인 우리나라의 가장 큰 수입국이다. 2004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수입시장 규모는 1조 5244억 달러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ASEAN까지 합한 수입시장 규모는? 미국보다 작은 1조 5123억 달러다. 지 아무리 기를 쓰고 다른 시장 먹어봐도 미국 시장 하나 공략하는 것보다 못하다.

하여간 진도 나간다. 미국과의 FTA 체결이 의미하는 것은 동북아경제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진영에서는 ‘미국의 식민지’ 운운하는 모양인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유럽도 미국의 식민지고, 일본도, 중국도, 인도도 미국의 식민지다.

한미FTA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은?

일단 성장론 관점을 빼고 전개한다. 논점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성장론은 양극화 해소하고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별도의 논점으로 따로 글을 올리겠다. 과연 한미FTA로 얻게 되는 이익은 무엇인가?

1. 일단 위에서 전개한 논지를 이어가자면, 동북아경제권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 균형자론’과 맥락이 닿아있다.

어차피 우리나라가 하지 않아도 중국도 머지않아 미국과 FTA 추진한다고 보면 된다. 장사질은 냉정한 거다. 그런데 왜 중국은 지금 당장 하지 않는데, 우리는 왜 지금 당장 추진하냐구? 저 위에 내가 세계 지도 펴놓고 설명한 거 다시 읽어봐라. 서있는 위치가 다르다. (멕시코나 남미하고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

하여간 일본과 중국 입장에서 보면 한미FTA 추진은 충격적인 뉴스다. 우리나라 진보진영한테만 충격이 아니다. 왜 중국과 일본한테 충격적인 뉴스인가? 한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게 되면 동북아 경제의 중심은 한국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이 세계시장의 허브가 된다는 이야기다.

2. 1번에서 맥락이 이어진다. 두 번째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미국과 FTA를 추진하게 되면 후속 타자로 일본, 중국, 인도 순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위에서 말한 세계시장의 허브가 된다는 이야기와 맥락이 닿아있다.

일본이 얼마 전에 ‘동북아공동시장’을 제안하고 나선 이유가 바로 한미FTA 추진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위기감이 표현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FTA는 세계경제의 ‘지역블록화’에 대처하는 고립된 한반도의 작은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생존전략이다. 지역블록을 각개약진으로 돌파하는 전략, 그것이 바로 FTA다.

3. 특히 중요한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확실한 해소에 있다. 우리는 무감각하게 살고 있지만 타 국가에서 볼 때 한반도는 ‘휴전국가’임을 잊지 말자. 전쟁이 종료되지 않고, 잠시 쉬고 있는 게 한반도다. 우리나라가 각종 FDI에서 중국과 일본에 비해 열세인 가장 큰 이유가 ‘전쟁중단국가’라는 점이다.

한미FTA 체결은 미국과 상호 이익을 주고받으면서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을 대폭 줄인다. 지금 6자회담이니, 남북평화정책이니 있지만 미국을 이해당사자로 끌고 들어오는 효과가 생긴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 전쟁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타 국가의 한국 투자 메리트는 높아진다. ‘왜 미국인가?’에 대한 의문이 조금이라도 해소됐으면 한다.

FTA와 관련해서 자료 찾고, 공부 해보니까 논점이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다 쓸 수가 없다. 차근차근 가보자. 다만 아쉬운 점은 반미감정이 불쑥 튀어나오고, 민족주의적 감정을 건드리는 선동이 불쑥 튀어나와서 논의가 대안도 없는 비판일색으로만 흐른다는 점이다.

더욱 유감인 것은 정태인 전비서관에 이어 노혜경 노사모 대표처럼 노빠 진영에서조차 진보진영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되내이며 FTA를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가 공부들을 안한다. 알아볼려고 하질 않는다. 최소한 노빠라고 자처한다면 함부로 대통령한테 훈장질하기에 앞서서 “대통령은 왜 저럴까?”라고 의문을 가지고, 자료 찾아보고, 공부하고,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이해가 안되면 반대해도 될텐데 그냥 반대만 하고 있으니 대통령도 참 지지리 복이 없다.

좌파신자유주의가 뭘까? 내 맘대로 해석이다. 두 발은 현실에 굳게 딛고, 이상은 높게.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메세지가 아닌가 싶다. 좌와 우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아직 이름을 못지어서 만든 임시닉네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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