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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이후의 중국, 그리고 한국

놀라웠던 그리고 식상했던 개막식

북경 올림픽은 하나의 국가로써 사고한 중국이라는 존재의 거대함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데 상당히 포커스가 맞추어져있음을 목도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개막식 때부터 중국 대륙에서 존재했던 문물들과 문화 유산을 선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중국이 과거에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 규모가 세계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했었다라는 내용의 강조 등, 거대한 국가로써의 위신, 체면적인 것을 널리 보이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필자가 굳이 이 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중국 공산주의의 사고는 공산주의라는 사회 시스템이 인류역사상 가장 진화 발달된 시스템(문명, 器, 도구)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공산주의를 한다는 사고구조이고, 그래서 중국을 잘 모르는 한국사람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중국은 공산주의를 포기한 것이 아닌, 항시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는 차별되는 공산주의를 하였으며, 지금과 같이 기존의 공산주의와는 매우 다른 경향을 보이는 제도를 택하는 점 또한, 그 제도 자체가(일종의 도구로써) 앞서있기에 채용하는 유물적인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배후 사고를 이해한다면, 개막식에서 보이는 고대적, 수구적인 것을, 개막식 쇼의 진행에 가장 중심에 두는 방식 자체가 사실 “현대 중국”을 구성하는 중심사상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며, 이러한 괴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데 자못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중국의 기존의 역사 이해 방식은 손문의 신해혁명으로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세웠지만, 당시 중국이 살아 숨쉬고 있는 문명이라는 환경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실적으로 서구에서 도입한 그런 제도는 중국에 걸맞지 않는 우스꽝스런 옷인 것이라는 사고 또한 팽배해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쿠데타를 하고 스스로 황제로 칭하며, 정부 내각 대신들 복식 모두 기존의 중국의 한족의 복식을 근거하여 입히는 방식으로 나갔다. 아마 당시 원세개의 이러한 사고 방식은 사실 현대의 평균적 한국인의 그러한 정서와 이상과 사실은 가장 잘 융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도 한다. 그러나 기존의 중국의 정통 역사 인식 방법은 원세개야 말로 혁명을 물거품 만들고 인민의 삶을 노예의 그것으로 다시 돌리는 혁명의 반동분자였다. 동시에 그러한 중국의 전근대적 전통적 문화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 역사 벌전을 위해 폐기되어야 하는 대상이었단 말이다.

그렇다면 북경 올림픽 개막식 때 보인 중국 대륙에 있었던 고대 문화유산들을 그토록 강조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특히나 21세기 들어서 보다 선명한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전근대적 중국적인 것에 대한 긍정적 시각은 무엇을 의미하나?

필자는 바로 여기서 다시금 동양역사의 퇴폐적 조류였던 역사의 퇴행, 반복하려는 경향을 21세기 초 중국에서 다시금 보게 된다. 100년만에 염원만을 보는 것이 아닌 백년전의 역사의 퇴행을 21세기 초, 국가로써의 성대함의 정점에 이른 현재의 중국에서 다시금 보게되는 것 같다라는 것이다.

역사는 도구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이 기존 유물론적 사관의 논지이다. 이는 서구사회의 발전 도상을 관찰해 보면 잘 들어맞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어떠할까? 이와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의 어느 한 시기에 발명되었던 유물이 역사 발전을 추동하지 못하고 일시적 이벤트성으로 과거의 유물로써 묻혀버리거나, 더 발전된 도구를 만듦으로써 사회 전반적 발전을 추동하는 역할을 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사의 시간이 진행되면서 한때 발전했던 유물이 역사 속으로 묻혀버리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유물론적 사관이 계속 설 땅을 찾기 위해선 이 도구라는 개념의 해석을 단순히 물질적 도구 뿐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역의 도구로까지 넓혀야 한다. 이는 제도, 시스템 등 까지 포함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제도, 시스템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더욱 보이지 않는 존재인 정신적인 영역까지 포함되는 부분을 중요한 요소로써 취급되어야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달나라에 유인 우주선가지 쏘아 올려 물질 발달의 궁극을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세계 3위의 경제규모를 이룩한 중국이, 과거에 답습했던 역사의 퇴행 반복을 다시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직관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의 경제 생산량이, 과거에 세계 경제 생산의 40%를 차지했던 30%를 차지했던 이러한 역사는 만에 하나 반복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수치상의 문제가 아님은, 역사를 홍관하는, 현대적 지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 미래에 이와 같은 수치를 보이는 일은 현실적 가능한 변수를 고려하면 일단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중국에 활자술이 발명되었다고 해서 중국 대륙에 살던 범 인민들이 그 혜택을 제대로 입었던 것 또한 아니며 오히려 그 활자술에 의해 발생된 약자에 대한 거대한 범죄 또한 무시못할 정도로 거대하고 유구했음을 인식해야한다. 결국 유물의 발전이 관건이 아닌 그 물건을 부리는 정신이 진정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임을 현대적 지성이라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부터 언급해온, 제도와 시스템 마저 도구라고 했을 때, 이 도구를 운용하는 중국의 정신은 어떠한 상황인가? 그 정신을 진단할 때 그 개막식 이벤트에서 보여준, 쇼의 진행 내용의 배치를 보면, 어디까지나 그 장대한 영토에 유구한 역사에서 일회성으로 이벤트 식으로 나타났던 유물들(정신 문화 포함)을 쇼 진행의 키워드로 삼는 것은 어떤 정신의 상황을 보여준다고 해야하나? 동시에 세계 대부분의 평균적 지성은 이해하지도 못하는 과거 시대의 유물 정도로 분류할 수도 있을 고대 시가나 유교 경전의 글귀를 떠들어 대는 것, 이것이 가능하게 하는 그 배후의 정신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나? 이와같이 자기 중심적인, 현대의 윤리에 빗대어 보면 필연적으로 전형적 저급한 윤리로 분류되는 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분명 세계적 화합과 소통의 이벤트인 올림픽 개막식의 내용으로는 부적합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동시에 그토록 절규하던 “현대적 국가로써의 중국 건설”의 중심사고에 비추어보아도 분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나 개막식 내용의 전 계획은 장이모 감독 개인에게 거의 전권을 위임하다 싶이 한 것에서도 중국의 일종의 콤플렉스를 느끼는 듯하다. 그토록 우상적 개인에 의한 주도의 폐해성을 경험하고, 그 교훈을 역사정신에 뿌리깊게 심어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세계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 첼린징하는 장소에서는, 이처럼 정신적으로 흔들리는 위기 앞에선, 건강하고 발달한 자신의 모습이 아닌, 이러한 첼린징 받지 못한 좁은 일원적 사고(곧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믿음을 부여한 개인 한 사람정도의)의 주도에 의한 콤플렉스를 펼쳐보이고야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전근대적 정서와 잘 부합하여 인기가 많은 듯한 장이모 감독 개인의 시각에 의해 저와 같은 “원세개” 적 마인드에 의해 빚어진 한바탕 분열적 쇼를 보게 된것이다.

자 그러면 그리고 지금까지 전개해온 사고를 한국사회의 정신에 들이대 보면 어떠한 진단이 나올 것인가? 이에 대해선 우선 현대 중국의 정신에 대한 분석과 진단을 내리면서, 미래를 예측해 보기도 할 것이며, 동시에 한국 역사의 현실은 어디에 서있는지 같이 다루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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