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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의 한국현대사 강의를 환영한다

학생들에게 자유와 비판의 시간이 주어진 격

한국의 사실은 별로 진보적이지도 못하고 개혁적이지도 못한 근성을 가지고 있는, 개혁세력들은 뉴라이트가 한국의 중등교육기관에서 강연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그러한 갑작스런 우려는 객관적 인식을 결한 신경질적인 우려로써 마땅히 없어짐이 그들의 발전과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도 보다 생산적이다.

우선 한국의 역사교육 수준, 역사학 수준은 어떠한지 일고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제도권 역사교육은 온갖 정신의 마약을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주입함으로써 심신의 온전한 성장을 막고 심신의 황폐함을 가져옮으로써 미약하고, 권력 획책자들이 늘어뜰여논 정신의 줄(string)에 낚여 파괴적 집단 좀비가 되기 딱 좋게 만드는 수준 다름 아니었다. 가장 혐오스런 낚시질과 로봇 좀비로 셋팅된 삶을 살고 마약에 의해 그동안 성장이 가로막혔던 과거를 회고하며 울부짖는 좌절을 낳는 하나의 예로 민족주의도 있다하겠다.

그러면 한국의 중등교육 수준은 어떠한가? 한국의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지상의 가치인 민주주의적 가치,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해 기본의 기본도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고,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의 원동력, 영혼이라 할 개인주의도 뭔지 모르고 변태적 로컬적 왜곡된 개념으로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니, 사실상 일부 역사적 해석 몇 개를 건드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재앙적 결과와 목불인견 반인간성은 일상 다반사이며 한국사회가 왜 선진문명권 사람보다 일반적으로 더 편협하고 잔인한 사람들이 많은지는 그 교육 수준의 반영이라 해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장 근본적 오류조차도 시정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래서 문제가 극악 범죄적임에 불구하고, 역사의 일부해석 문제를 두고 대립하는 것은, 도학자들이 상례에 있어서 3번 점프하고 곡을 해야 하니, 한번 점프하고 곡을 해야 하니를 두고 따지며 투쟁하는 현상에 비유할 수 있겠다. 결국 진정 문제의 근본 해결을 위한 의지의 건강한 발로라기보다 권력 투쟁의 편협한 마인드에서 자동적으로 나온, 권력투쟁 로봇 좀비로 프로그램화된 유전자의 발로 정도로 진단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해 놀랄 것도 없는 것이, 바로 그들도, 아니 대부분의 일반적 한국인의 태도의 발현이 그 수준인 것은 곧 그러한 로봇 좀비를 만들어내는 교육의 탓이라고도 할 것이기에, 놀라면서 또다시 로봇 좀비의 특징인 편협한 마음으로 적으로 인식해 버리고 분쇄하려는, 그 기제의 발작의 시작점부터 끊어야 한다.

그러한 역사에서의 일부 해석문제를 두고 마치 세상 근본이 뒤짚어질 커다란 차이라고 인식하며 필자의 시각을 매우 문제시 되는 것으로 보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러나 문제의 뿌리를 더 깊이 보며 더 높은 곳에서 문제를 홍관하고 있는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그러한 시각과 여기서 나오는 태도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이는 마치 라오스 사람과 캄보디아 사람이 서로 자신의 나라가 경제적으로 더 잘사느니를 두고 언쟁하는 것을, 한국 사람이 바라보는 심정, 그 차이를 인식하는 바와 비슷하다 하겠다.

이러한 극악히 악렬한 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들이 교사집단인데, 이들의 정규직을 허물어 사회적으로 앞선 지식과 교습법에 접하게 될 수 있는 기회를 낳는, 동시에 극악히 악렬한 교윳 서비스 질에 도전하여 그들의 실질적 발전을 낳을, 교사직의 비정규직화, 개방화 제도를 반대하는 자가 개혁세력인 사회가 한국사회다.

이는 현재 한국 젊은이들의 공무원 열풍이라는 병태적 현상은 애써 외면하고 그 기저에 깔린 근본 문제는 관심이 없고, 그러한 로봇 좀비적 모드로 살아가는 결과물, 희생자들을 감쌀 생각만 하는 ‘진보 지식인’도 자신의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세계적 앞선 바이러스 악성코드 치료 프로그램이 한국 시장에도 론칭되면, 스스로 악성코드로 진단되게 되어 날라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교육 개방을 우려하고 막는 행위가 나오는 기저의 프로그램 아닌가...?)

그리고 뉴라이트 방면의 강사가 강연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고무된 바는, 어떤 진보지식인의 ‘아동학대’ 라는 진단과는 반대되게, 그들이 일종의 일정부분 해방감을 느끼게 되어 자유의 생기, 그 공기를 호흡하고 더 환영할 것이라는 것이다.

어차피 고교 2학년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반 정도는 잠을 자는 환경이고 고3 수업에는 50명의 학생 중 40명이 자는 것이 일상인 것이 한국의 교실이라고 할 때, ‘아동 학대’는 이미 일상사인 것이었고, 사진상으로 보았을 때 훨씬 많은 학생들이 자지 않고 있는 모습으로 보았을 때 드디어 저들이 자지 않고 일어나 귀 열고 듣고 주체적으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적극적,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될 기회를 시작하게 되는구나라는 측면에서 사고했을 때(객관적 입장에선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라도, 상대적 현실 속에서는 긍정적 변화의 시작이기에), 덜 심한 ‘아동학대’ 하에 있게 되니, 그나마 반가운 입장이었다. 동시에 외부 강사이다 보니 절대권력의 저질 교사로부터 언어적 육체적 권력 남용을 통한 능욕의 공포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이 또한 다행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진리를 주입하고 강제 삽입 (coercive penetration=rape) 강간이 진리로 이끌려는 사랑의 마음이 표현되는 기본 형태라고 인식하는 수준의, ‘진보적’이라지만 여전히 한국적인 마인드에서는, 현재의 상황이 악마의 성기가 강제로 넣어져, 영혼이 악마에 지배되는 것으로 여겨져, 큰 일이 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이 내놓는 대안이란 것도 민족주의 등의, 마약을 이용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대사 전문학자(한홍구 등)의 강연도 해야한다는 식에 그치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개혁·진보의 근본적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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