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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보수신문사는 항상 비윤리적이다?

낡아빠진 마르크스의 유물은 집어치워라

1. 세상을 보면 거대 자본이 작은 자본보다 항시 더 낮은 윤리를 보였다는 것은 전혀 근거없고,(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도 많다) 국가, 공공의 힘이 사적 자본보다 항시 더 윤리적이라는 것 또한 전혀 근거 없으며(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다.) 오히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 경우 또한 매우 많은 것이 분명한 현실임이고,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일단 도망가선 안된다.

곧 항시 거대 자본이 비윤리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고, 그들의 윤리는 이러한 외부 변수에 의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의 많은 정신들은 일반적으로, 방송법 찬반을 막론하고, 거대 권력과 거대 자본이 항시 비윤리적일 수 있다는 공포에서 모두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이는 이 세상이 남성에 대한 이해가 너무 일천한 것과 같이, 권력자들에 대한 이해 또한 집안에서 남성의 공포스러울 수 있음을 주입받은 어린 소녀의 본능적 공포를 보는 것 같아, 언제 사회 속에서 발전적 관계를 통해 인생 최대의 복을 창출할 수 있는 스킬이 생기고, 이것이 모터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해내는 수준에 오를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2. 자본권력이 비윤리적인 태도로 변모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투자할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할 때이다. 이러한 토양은 그 권력들로 하여금 식민지 싸움이나 강권으로 부수어 가며 진입하거나(coercive penetration=rape), 다른 모든 관계 맺는 사람을 고사시키고 혼자 독점하고 그 상황에서 남용해버리거나(abandon),지적으로 미약함을 이용해 마구 다루거나(manipulation) 등등 파괴적인 방향으로 표출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남성이 어떻게 여성과 관계 맺을지를 모를 경우, 본성적 욕구가 너무 차올라 결국 꽉 차오른 충동대로 사역되고 그에 의해 움직여지고 마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는 마치 남녀관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여성과의 자유로운 교제, 곧 추구할 타겟이 항시 자유로이 존재하는 경우, 남성은 각 여성들에게 항시 잘 대한다.

그러나 결혼이나 다른 문화적 속박에 의해서 한 사람만을 독점해야 하고, 또 다른 관계 발전의 가능성이 차단된다면, 필연적으로 한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과도한 것을 요구하는 심리가 생길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더욱 상대를 더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고 콘트롤하고(필연적으로 독립된 인격체 임에도..) 쥐어짜내기 위해 노력하고,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둘의 관계는 원수가 되고 파괴적이 되는 것이다.

이는 남녀관계 뿐이 아닌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으로부터 뭔가 가지고 갈 만한 것이 있다는 기대를 주어야지
실질적으로 많은 것을 주지 않았더라도(사실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양을 주었는지는 부차적인 것이다. 목표추구 할 기대를 갖게 만드는 점 이것이 핵심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윤리적이고 부드럽고 섬기려는 태도로 나오게 되는 것과 같다.

많은 여성들이 관계에 있어서 착각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바로 자신은 상대 남성에게 몸을 허용하였으니 이제 관계가 자연스레 더 나아지고 발전하고 자기 자신에게 하늘보여 주었으니 별 따다 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서 계속 진입(penetration) 유희를 제공하지만 자신의 매력 발전에는 둔감해지고 바라는 것은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에게는 진입의 단계는 하나의 목표였고, 다른 목표 추구를 상대가 제공하지 않는다면, 언제고 다른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관찰 안테나가 작동되는 것이다.

여기에 여성들의 딜레마가 있다. 평소에 육체적(physical) 매력 가꾸는 데야 본능적으로 관습화되어 가지고 오던 것이었으나(physical적인, 곧 제조업), 진정한 상대에 대한 이해를 통한 상대 맞춤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특화시장)는 무지한 것이다. 그리고 심령적인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낳는 서비스 산업 말이다. 이 후자 두 개가 진짜 돈 벌어다 주는 것임은, 지금 인간 세상에서 증거로써 생생히 들어나지고 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의 포텐셜한 능력을 어디에 가지고 있는지를 항시 잘 관찰해 감지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끌어 내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자신이 발전해 나가야 한다. 남성을 꼭 앞서서 이끌 수준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오묘하게도 이러한 수준을 욕구하는 것은 남성적 본능이다.) 그와 놀 수 있는 수준이 되라, 그로 하여금 목표의식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이 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의 머리가 된다는 성경구절이 여기서 성립되는 것이다.

4. 만약 대기업 SK가 와이브로라는 독특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시장이 이 포텐셜한 능력을 자사와의 관계에서 발휘하고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한국시장이 SK한테 바라는 것만 많다면, 필시 이 기업은 자신의 이 포텐셜한 기술을 성공적으로 시장화 함을 제공할, 외부의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이런저런 요구조건도 적은 말이다.

선진 경제의 중요한 문제는, 국내에 있는, 이미 생성된 거대 자본이 자국 내에서 마땅한 매력있는 투자처를 찾지 잘 찾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경제 성장률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개도국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일단 그리고 익숙하고 쉬운 피지컬적인 면에서 자신이 과거로부터 쌓아온 기술만 잘 사용해도, 기대되는 기대치가 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이리저리 본처가 해주는 거(offerings)보다 잘 해준다며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과거의 것에서 안주하는 기술로 만족할 수 있는 특히 제조업, 피지컬 방면적인 방면에서 기대하는 수익은, 끝없이 보다 더 발전하여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기업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다른 보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곳을 바라보게 만든다. 바로 특화된, 고급화된 소피스티케이트 한, 특화된 시장이다. 그 시장이 궁극적으로 이러한 사업을 허용하는가가, 본처가 되느냐, 한 때 정주다 위기가 닥치며 이거저거 다 회수하고 철수하는 대상이 되느냐를 가르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아내로써 중요한 것은 바로 항상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을 통해 추구할 수 있는 그것을 제공하는 점이 관건이라는 점이다. 일단 모기업과 안정된 기반은 본처, 오리진이 된 국가에 있다하겠다.
그렇게 보았을 때 신산업을 허용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고, IPTV를 널리, 빨리 허하는 것의 중요성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가는 우리의 태도, 이 태도를 결정짓는 원리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지상파 방송 개방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아이에게 땡깡 부려 이익을 챙기는 낮은 윤리에서 더 나아가 보다 큰 책임감을 가지고 더 높은 윤리로 나아오는 성장을 도모시킬, 가업의 일정부분을 연습시키고 분담받게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사실 남편들도 자신의 아내가 모임에서 다른 남성들에게서 팬시하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그래서 환영받는 것을 볼 때, 집에 가서 더 추구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것이, 인지상정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외부의 기업에도 개방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참에 지상파까지 외국의 수준 높은 뉴스 채널과 다큐멘터리 채널까지 개방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그 남성적 기업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소비자를 보고 국내의 방송업자들도 국내의 방송전파 소비자들이 더 매력적으로 보여(외부에서 바람피우는 것이 성공하기에도 어려운 처지다, 누가 뭐래도 본처가 제일일 남자들이, 곧 같은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장사하는 방송업자들이다.) 그 만큼 더 좋은 태도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본을 가진 기업가들에게 무언가 추구할 만한 대상을 제공하는가가 투자처를 제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거대 언론 권력이 비윤리적이라 불만이면 그들에게 또 다른 목표를 허하는 것이 그들이 자연적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윤리를 갖도록 만드는데 동기부여가 된다. 이는 마치 민영 방송 SBS가 공영 MBC보다 더 방송윤리를 지키고 나오는 점에서도 그렇다. 왜냐하면 이러나 저러나 공영으로써 먹고 살 수 있는 MBC보다, 추구해야 할 목표가 더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남아 관계 속에서 달콤한 과일을 따먹을 수 있는 사기업 SBS가 더 윤리적으로 보이는 점은 이상할게 없다. 그동안 오랫동안 지역적, 정치적으로 오히려 현 정부와 친밀할 것 같으면서도 KBS보다 덜 친 정권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바로 현재 그리고 시시각각 추구하는 목표라는 부분에서 미묘하게 다르게 나타나지기 때문이다. 아마 지상파 방송에서도 서로 이렇게 시시각각 다른 추구할 목표에 의해서 그들의 태도가 결정되지 시종일관 친재벌, 친정부 적으로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고, 이는 현재와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 여성에 대한 더 많은 경쟁자가 생김으로 더 정교하고(sophisticated) 나이스한 태도와 서비스를 가지고 추구하러 올 것이다. 5,6공 때 언론이 그토록 친정권적이었지만, 이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도 아니러니컬 하게 일정 부분 언론의 기능 때문 아니었는가?

여자가 자신의 삶이 불만스럽다고 남자 탓만 하고 이렇게 저렇게 못해주고 못났다고 투정만하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콘트롤 하고 소조하려하고 남자를 옭아매고 쥐어짜고 구속하고 하다간 서로 등돌리게 되고, 깊은 불신과 웬수가 되고, 결국 자신의 불행한 처지는 한발짝도 개선으로 나아가지 못 한다.

5. 그러니 거대자본이라고 너네, 태생이 운명적 괴물인 것들이 잘되면 안된다는 식의 맑스 어르신의 관념을 숭상해서 나온(그러나 현실적으로 제일 위에 지적했듯 그렇지 않았던 경우가 너무 많은) 아이같은 비현실적 겁먹은 정신으로 세상을 만들려 해선 안된다. 거대 자본, 언론 권력 모두 그들에게도 추구할 대상을 제공해야지 그들도 윤리적으로 나온다. 물론 과거처럼 몇 개 대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그런 것이 아니고, 현 한국사회는 그런 경제도 아니며, 시장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추구하는 여러 다른 특성의 집단들이 동시에 목표 추구활동을 할 것이므로, 이는 한 매력적인 여성에 여러 구애자가 달겨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모든 구애자가 나이스한 태도로 나올 것이다. 물론 이는 그 여성이 얼마나 영리한가에도 달려있다. 멍청하니 어느 남자의 가장 달콤한 사탕발림 말, 뭐든지 다 해줄것 같다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져버리고 몸을 허하고 그 남자만 믿습니다~~!! 빨갱이 악마 뿔달린 성기는 입닥치세여 하는 수준이라면 약 발을 못 받을 수는 있겠다. 그러나 자신의 딸자식이 아무리 지적으로 미덥게 보이더라도, 마땅히 남성과 교제의 자유를 허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여러 내면적 능력을 길러나가는 것이 가장 마지막까지 놓칠 수 없는 방도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현실을 봐도 빨갱이 악마로 보는 주술에서 벗어난 그룹의 사람도 상당수 아닌가? 이 빨갱이 악마로 모지리로 사회 일각에서 낙인찍힌 미약한 젊은이가 숲속 오두막에 짱박혀 사교계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고, 그러나 자신의 딸이 어울릴 만한 적합한 상대라고 본다면, 제3자와의 협력을 통해, 이 젊은이와 자신의 딸이 관계 맺게 하거나, 아니면 아버지가 직접 딸과 이 남성이 만날 자리를 주선하는 것은 어떨까..? 이 모든 것이 일단 아버지가 자유를 허하는 정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사족

한국 젊은 남여들이 왜 아직도 평균적으로 연애 횟수가 적은지는,, 세상은 인민을 해방시켰지만 그들의 정신이 그토록 낡고 개방된 새로운 정신을 담기에 그릇이 작은 낡은 마인드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도 싶다. (남성의 본성을 죄악시하는 교육과 문명은 자유주의 사상이 기운 없는 한국의 현실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글은 다음에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상 자유민주사회 한국에서 드문 자유주의 정신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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