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기타


배너

광우병 쇠고기와 자살한 전 대통령

6.10항쟁, 죽음숭배의 문명과 생명숭배의 문명

작년 이 맘때의 광우병 촛불 시위 때 필자는 민비의 예를 들며 당시의 군중심리를 묘사한 바 있다. 바로 조선민중의 삶의 공간에 있어서 가장 파괴적인 역할을 한 민비가, 죽으니까 갑자기 자신들의 사회 공동체를 대변하고 지켜줄 국모님께서 돌아가셨다며,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고 위협하는 자들을 되려 외부로부터 찾고, 직접적 관계가 없는 상대로부터 찾고, 혹사건의 발생의 원인과 관계가 명확치 않은 상대로부터 찾는 모습을 보이는, 곧 모호한 정신상태에 안주함으로 공포로부터 벗어나려하는 것이었다. 이는 기본적 사회윤리체계를 갉아먹은 암적인 역할을 했던 민씨 세력의 주축 인물인 민영환이 을사조약 후 자결하자 갑자기 나라의 기둥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나, 조선이 망하자 자결을 통해, 사실 소용없는 자살이라는 행위가, 그 사람을 숭상받아야 하는 그 무엇이 되게 하고, 그 중 많은 이들이 정작 조선을 무너지게 한 크고작은 원인이 된 사람들이지만 그것이 다 없어지고 갑자기 나라를 위하는 위인과 같이 된 것에서도 같은 현상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원래 조선문명은 제사문명으로 제사지내느라 사람을 착취하고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고, 집단을 매우 비효율적으로, 귀중한 자원을 매우 소모적으로 태워 없에버리는 일시적 소모적 자원으로 사용할 뿐인 제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문명, 죽음이 삶의 씨앗을 지배하는 문명이었다. 이러한 문명적 특성은 해방된 후 박정희의 죽음에서도 갑자기, 그 스스로도 생전 남사스럽다고 거부했던 국부와 같이 여겨짐을 받게 되었고, 그 후계자는 현재 황손과 같은 명예를 누리고 있다. 박정권 말기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나던 반대시위 또한 갑자기 무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이러한 일련의 같은 맥락의 사건에서 누가 이득을 보았고 누가 획책하는 바이며, 누가 지금 이득을 보고 있고 또 보려하는가를 이제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통해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범 진보개혁을 자처하는, 그 이름이 아까운 껍데기적 수구적 한국적 집단들은, 6.10 항쟁을 맞아, 작년 소고기 난리와 같이 범 단결투쟁을 획책하려는 듯하다. 문명적 밝은 정신인 합리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이성적 정신에 의한 것이 아닌 죽음에 대한 원시적 공포와 같은 아이와 같은 정서를 촉발시켜 대규모 광우병 시위가 일어나게 했으며 이를 볼 때도 결국올해도 아이템만 소고기에서 자살한 전 대통령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절묘한 시기의 그의 자살은 다시금 죽음에 대한 원시적 공포와, 여기서 비롯된 죽음 숭배 습태의 광풍을 획책할 좋은 재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필자가 줄곧 지적해 왔지만 한국사회에서 진보니 보수니 좌니 우니 수구니 개혁이니 기타 등등이 크게 다르지 않고 결국 같은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같은 가치를 숭배하고 그 기제에 의해 이익을 취하는 같은 문명권의 사람이라는데서 진정한 진화발전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이 생명과 삶을 위한 온갖 가치를 침몰시키고 무력하게 만드는, 죽음이 통치하는 자연적 지배의, 아이와 같은 민약하고 두려운 정신에 의한 가치체계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자연의 파괴적 힘이 문명을 대체하는 것이다. 필자는 단순한 정치적 마찰이 걱정스러운 것이 아니다.

소위 진보개혁이라는 미션을 담당한다는 사람들이 이러한 자연적 감정의 강렬함의 폭풍에 편승하여 그 위력을 이용하여 뭔가를 이루어보려는 그 수구적 행동원리에 안타까운 마음인 것이다.

그러한 자연적 태풍과 같은 감정은 파괴적인 힘으로 문명의 상징인 농사기반을 날려버리지만 결국 대륙의 거대한 암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 그를 이루던 각각의 단자들은 물방울로 흩어져 대자연의 질서에 작은 원자로써 환원됨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이것이 현 문명의 계절이기에)
이러한 자연적 감정의 폭풍우는 오직 문명이 없는 자연적 무인도에나 파괴를 통한 재생을 나을 것이다. 마치 동양문명과 역사가 반복했던 그 순환의 역사와 같이.

이러한 세상에서는, 그래서 같은 원리로, 지금 노 전대통령이라는 수직적 위계사회의 상위인이 행한 행위에 의해, 그 여파로 인해 자살이 여기저기서 선택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수준의 정신의 경작수준은(문명은) 이와 같이 죽음으로의 대자연의 어머니의 품으로의 퇴보적 환원이라는 귀결을 낳게 된다. 아직 이러한 내면적 원동력을 제대로 가공하여 좋은 쪽으로 이용하는 문명적 삶과 생명과 창조의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이다. 이와 같은 거대한 감정적 폭풍과 같은 것은 그러한 대자연의 질서계에의 퇴보적 환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개인차원에서 열심히 이러한 폭풍을 농작물에 좋은 생산적 미풍으로, 결실의 미풍으로 승화 가공하여 표출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나, 사실 이러한 개인의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그러한 생명의 씨앗을 권력자들의 생산기계에 연료로 태워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곧 대자연으로의 환원을 통한 아직 자라서 활짝 피지 못한 씨앗과 새싹은 죽음으로, 대자연계로의 환원으로 한낮 이익 메커니즘 기계의 연료 불꽃으로 산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자유민주주의는 여전히 자연에 취약한 수준인 농경문화적인 것이 아닌 훨씬 강건하고 스스로 창조한 내재적 원리를 따르는 고도의 문명이기에 자연적 강렬한 감정의 폭풍우에 훨씬 의연하게 대응해내고 그 과학이 창조한 안정적 자연의 질서에 의해 태풍조차도 창조적으로 콘트롤 될 것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정교한 기술이 그 모든 것을 쉬지않고 노력하여 대자연으로의 환원의 사라짐을 최대한 막고, 생산적으로 승화해 내어질 수 있길, 책임있는 권력자와 지식인들에 기원한다. 마치 태풍을 전력 생산의 원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는 등의 방향으로....

그리고 현 정부가 나서서 탑승하려는 GRID경제가 바로 그 글로벌적 본격적 시발점이고 그 변화의 기색과 바람을 보는 것이다.

우리 이제 삶과 생명의 공간에서 좋은 인격에 포커스를 맞추고 흔상하고 칭찬하고 배우며, 우리 감성으로부터 시시각각 일어나는 동력을 생산적인 것으로 정교하게 가공하여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여 움직이는 방향으로 모두 정신을 맞추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원시적 공포에 쓰러지는 것이 아닌, 이 공포를 이처럼 삶의 밝기를 더하는 곳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났던, 보다 삶을 고양하는 자유민주주의에 가까운 헌법을 만들어 구시대의 것을 대체했던 6.10의 의미를 살리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