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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인식의 틀을 넘어서 수준을 높이자

인식의 기술과 태도를 높이자

진교수는 스스로의 인식에 한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보인다고 필자는 지난 19일의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진교수가 솔직하게 오마이 뉴스에서 자신의 사고를 나열해 보여주니, 인식 상에 어떠한 한계가 있는지 지적하기 쉬워서 진교수의 피할 수 있는(preventable)정신적 짐을 해소해 주고자 한다.

진교수는 이 대통령의 범주오류를 지적한다. 진교수가 지적한 범주오류는 사물을 잘못된 범주에 집어넣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범주에 갇혀서, 사물의 범주의 한계를 넘어서 존재하고 있는 부분을 인식 못하는 것도 범주에 의한 오류에 해당할 것이다. 진교수가 바로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놓고 있지 않나 한다.

진교수는 필자와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기에 반가왔었는데, 곧 현대 미학은 현대 자본주의 상품시장 속에도 녹아들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진교수의 블로그 6월 15일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미학, 인문학적인 것, 보다 강력한 정신과 고결한 영혼의 소산이 비단 과거 인문학 혹 철학이라는 영역 안에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하고 있기에 반가왔다. 조금만 더 넓게 관찰하면, 사실 이러한 미학이나 철학 등은 비즈니스계에서, 시장을 바탕에 두고 매우 적극적으로 재해석, 시도되고 있고, 사실은 이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고 다양한 영역에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현실을 통한 혁신과, 강렬한 감성과 의지를 바탕으로 발전해온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바로 이러한 철학적 사고의 현실적 시도, 현실공간에서의 회의적, 실험적 사용을 통해 인류 어느 시기보다도 다양한 영역에서 빠른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시장이 다분화 된 것 같이, 그 철학의 영역도 현실 세계 속에서의 지평을 더 넓혔으며, 또 학문적으로도 뼈대와 혈액을 공급받을 토양을 직접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세분화되고, 고급화 된 시장, 고급화된 감성과 영혼, 여기에 어필하기 위해 시도·반영되는 고도로 발달된 정신의 비즈니스적 시도는, 학문을 현실영역에서 빠르게 발달하고 혁신하게끔 만들어 주고 있기도 하다.

거기다 기존의 대중시장, 규모의 경제조차 자본과 시장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경쟁자가 많아짐으로 해서, 다시금 인간 내면으로 더욱 들어가고 이해하려하는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은 쉽고 가벼운 책 위주로 보지만, 지금의 고위 경영자들은 왜 어느 때보다도 고전을 파고들겠는가?

단지 캠퍼스에 안주하고, 기존의 고답적 방식에 안주하려는 영역의 학문은, 그 발전 속도가, 외부의 빠르게 발달하는 다른 방식의 학문의 시도의 발전 속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근 몇 세기를 두고 보았을 때도 그 기존의 영역조차 이전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지체되고 느린 것이냐에도 좀 회의적이지만 말이다.)

곧 훌륭한 비즈니스 인이면 경영, 시스템, 조직 방면의 탁월한 지식과 기술을 정치와 행정부에서도 사용하여 혁신,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가 현대 비즈니스는 바로 인간의 감성과 이성, 정신, 영혼을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정치든 행정이든 경영학적 원리를 도모하여 혁신, 발전하려한 시도는 수십년에 이른 흔한 것이었기에,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봐주기 바란다.

진교수는 이 대통령이 정치를 혐오하던 사람이라고 지적한다. 이 혐오라는 것은 그만큼 문제를 통절히 느끼고 있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정치가 싫고 염증이 나므로,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혁신이론으로 개혁·발전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로써 진교수가 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최고 지위에 올라있는 것이 우려스러운 한가지 이유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곧 반드시 부정적 결론을 내리고 거기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두 번째, 그렇다고 MB는 성공한 CEO도 아니었고 성공한 정치인도 아니었다는 진교수의 인식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성공한 CEO만이, 성공한 정치인만이 대통령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성공한 CEO가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성공한 정치인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자살한 전 대통령을 보라.) 많은 오류를 경험한 사람이 또한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해 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세상에 영웅이 나타나서 최고 지도자직을 수행해주길 바라는 민주사회에 맞지 않는 환영과 같은 기대는, 정신 속에서 이제 그만 발근(拔根)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또한 진교수도 하고 있는 인식으로 믿는다.)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나온 결과가 ‘최대한 영웅에 가까운 자’의 적손, 박근혜의 군림 아닌가?) 왜냐하면 대통령도 많은 지혜로운 자의 말을 들어야 하는 의무와 또 이를 위한 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이 민주사회이기 때문에 대통령도 집단지성을 이용할 것이기에 그렇다.

MB가 사업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반드시 그의 선택이 옳지 못해서라고 단정지어선 안 된다. 사업의 성패는 최고결정자의 선택은 옳았으나 그 하부의 혹은 인식하지 못한 다른 변수에 의해 결정나는 수도 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MB가 최대한 집단지성을 이용할 수 있게 돕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지성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모든 이가 자기 집단의 밥그릇 논리에 빠져 고집스럽고 우매하게 되면 세상은 그만큼 더 소모적이 되고, 수많은 욕심과 옹졸함에 갇힌, 곡조만 바뀐 매 한냥인 레파토리만 나오게 되, 진실로 통찰력 있고 인사이트 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그만큼 최고 결정자의 능력과 요구에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만일 자신에게 MB가 진실로 미덥지 못하다면 그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주장이 얼마나 MB 정부가 듣고 채택할 만한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MB가 들을만한 언어로써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이를 위해선 MB의 내면구조를 실질적으로 잘 이해해야 한다. 그냥 ‘삽 한 자루’는 진실로 아니다.) 정치적 반대자 중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야 말로, 그들의 그에 대한 불안에서 나온 부정적 심령을 더 촉발시켜 점점 그러한 어두운 운명적 세상의 객체가 되어 지배당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진정 경고하고 싶은 점은, 사실 현실은 그 부정적으로 반영된 자신의 심령 그대로는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곧 스스로 어두운 유령을 창조해 점점 그에 종속·지배되는 연약한 영혼으로 퇴보, 퇴폐하는 것이다.

셋째, 규제를 줄임으로써 성장을 노린다는 MB의 사고가 순진하다고 비판하며, 해보니 안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것이 일면 사실처럼 보이기도 하나 그렇다고 그 방향이 틀렸다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 이유는 필자가 미디어법 관련 칼럼에서 지적했던 부분과 같이, 투자할 매력적인 시장이 발견되지 않기에 그렇다는 점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해외, 특히 개도국에는 보다 쉽게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지역이 보이기에, 상당부분 포화된 시장인 한국시장에선 많은 기업이 앞다투어 대규모 투자를 공격적으로 집행하기를 기대하긴 어려울 듯하다. 동시에 신산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하고 발전시켜 한국시장에서 시작한다는 것도 매우 고비용이고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규제를 줄이는 것은 단지 규제만 줄인다고 투자가 많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먼저 GDP성장에 주축을 담당하는 외국자본이 들어오는 면에 있어서 어떠한지 생각해보자.
곧 해외의 거대자본이 신사업을 한국에서 할 수 있도록 들어오게 하는 것, 그중에서도 효과가 클 주요 핵심적 전략기지로써 종자돈과 장기적 투자를 받을 수 있을 환경에서 어떨지 생각해 보자. 그러기 위해선 특히 왜 한국이어야 하는지를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다시 한국의 기본적 인프라적 문제,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뿐만 아닌 무형의 인프라 문제, 제도 문제로도 돌아간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한국의 제도는 기본적으로 외국 비즈니스인들과 잘 융화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국내기업과 공정하고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잇도록 환경을 조성받지도 못한다. 특히 이러한 제도는 국민적 정서, 낡은 마인드 때문에 따라가기 어렵다. 그러면 이러한 거대 자본 말고 중소자본이라도 많이 받는 면은 어떠할 지 생각해보자. 한국이 외국인들이 살만한 곳이 되어야 사업도 하고 장기적으로 돈도 쓰고 투자도 하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교육하나만 개방하자고 해도 한국민 대다수 부터가 거품물고 반대한다. 한국인이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토록 가치를 중히 두는 교육이라는 면에서부터 이미 경쟁력이 매우 떨어지기에 한국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지 못하다. 동시에 주거문화 또한 열악한데, 국민 정서 자체가 고급 주택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고급주거 지역 또한 그렇다. 집이야 그렇다 치자. 그러면 특히 관세에 있어서도 외국 물건, 조금이라도 질이 좋은 산품은 가격이 높아지고 높은 관세를 부여하기에 더욱 경쟁력이 없어진다. 그로인해 삶은 불편해지고 비용은 높아진다. 일본도 그러지 않냐고 할지 모르나 투자 매력도에서 도대체 비교대상이 아닌 나라와 비교하는 것은 자신의 수준을 망각하는 것이다. 일본은 더 매력적임에도, 고급주택과 그런 주거단지 면에선 한국보다 경쟁력이 있고 외국으로부터의 산품도 더 다양하다. 이처럼 규제축소, 혁파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에 조금 해봐서 약발이 듣지 않았다고 그 효용성과 필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또한 극단적인 것이다. 특히 규제, 법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 생길 수 밖에 없는 부분인데, 이러한 부분도 국민의 반외국 정서 때문에 혁신적으로 좋은 것으로 만들기 힘들다. 좋다, 아무리 외국인들의 생활 방면에 경쟁력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곳 보다 매력적인 사업기회와 시장을 제공하면 이러한 것들 다 눈감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반외국기업정서가 강한 소수의 나라 중 하나인 국가가 한국이다 보니, 외자기업들에겐 사업의 리스크가 커지고 시장개척도 쉽지 않아, 이 방면에 있어 세계의 모범적 국가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지역경제친화적으로 경제 활동을 많이 하고 혁신도 일구어내는 등으로 발전하는 순기능을 낳는 환경까지 되기까지, 가능성이 높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경제성장률 높이는데는 신산업이 생기는 것이 가장 약발을 받는다. 그러면 신산업에로의 자유로운 진출을 허용하는 면에선 어떤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 미디어 관련법조차 독재시대의 그것을 고수하려고 고집을 부리기 때문에 아직도 공격적 투자와 진출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의 규제축소와 시장자유도 증진은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본 것이다. 그러므로 규제축소를 해도 안된다는 식의 인식은 과도한 것이다. 아직 시작도 제대로 못한 걸음마를 한발 뗐을 뿐이다.

진교수도 인정했지만 현 한국사회에서 개도국에서 보이는 만큼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포화경제가 7~8%의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때로는 이러한 예기치 못한 변수에 의한 긍정적 블랙 스완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구나 다 갖는 저성장 선진국의 패러다임으론 역시 저성장을 벗지 못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패러다임을 깨고 혁신을 통해 새 길로 나아오면 그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현실 속 한국 국민은 위에 지적했듯 완고함이 강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경제와 사회가 한 단계 상승하는 발전한 순간순간을 보면 대중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반하는 방면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기에 비로소 놀랄 만 한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국민이 망하겠다고 난리를 치더라도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는 확률 또한 상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쉬 마음이 흔들려 부정적이 되고 거기에 빠지면 안 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외부와 말로는 강한 듯하지만, 심적으론 약했던 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보다, 지지자 눈치 보며 이리저리 바꾸고 또 정책적으로 지지자의 뒷통수도 잘 치는 정치인 보다. 지금과 같이 자잘한 순간적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들을 말 안 들을 말 구별하며, 곧 정보의 바다의 세상 속에 가치 있는 정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추측되는, 최소한 일단 기본적 정보 선별 기술은 있다고 보이는 이 대통령이, 더 불도저처럼 묵묵히 한길로 추진하여 이루어 낼 수 있는 무언가가 기대는 된다는 것이다.

저렇게 외부의 잔바람에 동요치 않는 깊은 물속과 같은 내면으로 불도저처럼 한 길로 정진하여, 아무나 하기 힘든 패러다임시프트 같은 큰일을, 현실 제도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불도저가 긍정적 방향으로 나오도록, 응원하는 것이, 선거 때 지지했건 아니건을 떠나 나의 대통령인 MB와 내가 관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 본인자신과 사회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그가 기운내고 신바람내서 그런 긍정적 잠재적 능력을 끄집어 내 이루어 줄 수 있도록, 본인은 이렇게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밖에 진교수의 우려가(곧 동시에 많은 대중들의 피할 수 있는 우려) 뒤에 계속 되는데, 이번에도 지면 등의 관계 상 여기서 줄이고, 그 뒤에 보이는 4대강 사업, 방만한 재정, 미래를 대비하는 마인드 등의 우려를 낳은 인식에 대해선 다시 더 자세한 접근을 요하기에, 근일에 다시 논하기로 하자. (일단 4대강 사업에서 볼 수 있는 희망은 목요일부터 주요 서점에서 유통될 필자의 책<희망을 위한 경제관>에서 만날 수 있다.)

자료가 나오면 자료에 대한 비판적 평가, 고찰 없이 바라보다간 쉽게 그 자료를 절대적인 것으로 믿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그 어느 시기에도 희망을 보는 것을 놓치 말아야 하는 미션이 있는 우리 인간이기에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인식론적인 기능을 발전시키면 아무리 어둡다고 평소에 쉽게 감각되던 세상에서도, 그 필연적으로 있을 한줄기 가는 빛조차 서서히 크게 감각해지는, 그렇게 더 뛰어난 빛에 대한 감각기능과 기술을 가지게 되어, 아무리 짙은 흑암 속에서도 빛을 보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필연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100% 흑암도 100% 광명도 없는 것이 현상계 아니던가. 지식인으로서 마치 흑암이 다 인냥 퍼뜨리는 행위는, 자신의 과도기적 오류의 인식을 그것이 전부인냥 대중에 퍼뜨리는 것은 더욱 위험한 것이다. 진교수도 더 나은 인식기술과 태도로 스스로 피할 수 있는 암울을 극복할 수 있는 승리가 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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