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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과 문명의 전환

정치에 정신이 낚였다간 ‘오늘 밥도 못 챙겨먹는다’.

지난 주말 오마이 뉴스에 메인 최상단 헤드라인 기사에 “수입쌀이 어머니 아버지 보다 더 좋더냐” 라는 기사가 올라와 있던 것을 보고, 그 동안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4대강 사업을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문명사적 전환을 통한 희망에 대해 적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게 되었다.

모든 문명의 시작은 강의 치수사업을 통하여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곧 강 유역에서 농경을 시작하다가 자연의 거대한 힘에 인간이 종속되어 버려 사라져 버리는 것을 끝을 내고, 이 자연의 거대한 파괴적 힘에 정복되지 않고 이를 막음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델을 세우게 됨으로써, 곧 자연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됨으로써 문명이 생기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강을 이용한 인류가, 모든 문명이 지속되어 온 것은 아니고 중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등 명멸을 거듭해 온 것이 또한 인류문명사의 또 다른 특징이다. 곧 강을 이용하고 각종 자연 요소를 이용하며 문명을 이루었지만, 그것이 한계에 다다라 또 다시 자연의 거대한 힘에 정복당해버려, 곧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못한 개발 모델로 인해 사라져 버린 문명 또한 수없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현 한국의 자연 요소를 사용하여 개발하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특히 강을 생각할 때, 이 강이라는 것이 문명을 낳아 왔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생활용수를 공급받는 것뿐만 아닌 먹고사는 문제인 농업문제, 그리고 그 물길을 타고 오고감으로 해서 유통과 상업이 생기게 되어 결국 그 지역에 맞는 생산과 교환, 이를 지속가능하게 해주기 위해 법과 제도가 생겨나는, 곧 종국에 문명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문명은 자연과 인간의 지속가능성과 서로 교류하는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끼리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모델이 있어야 비로소 문명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문명의 발전을 홍관할 때 현 한국의 인간과 자연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미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매우 반환경적인 경제모델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이 자주 착각하는 것이 농업이 무슨 친환경적인 산업이라는 생각인데, 인류문명사적으로 볼 때 농사짓다가 사라져버린 문명이 많음을 알아야 한다. 곧 강 유역에 자꾸 적당하지 못하고 부담이 되는 농사를 짓다가 강의 자연적 홍수조절 능력을 자꾸 상실시키고, 물은 오염시킨다. 그러다 그만 대홍수를 초래해 한꺼번에 치명적 재앙을 일으켜 그 문명은 죽어버린 껍데기와 지역 유물로만 남은 것이다. 많은 선사유적들이 강 주변에서 발견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생활방식들이 그곳에서 지속되지 못하고 유적으로만 남아있다.

4대강의 하류가 농업용수로도 쓰지 못할 정도의 수준을 낳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곧 한국의 기존의 강을 이용하고 농업을 하는 방식이 친환경적이라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사실 강 유역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강에 부담을 주는 것으로 홍수 조절 능력과 강의 자정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며, 특히 비료, 농약 등 더러운 것이 흘러드는 것이다. 이 비료와 농약은 특히 인류 전체의 농업생산과 교류, 상업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 지구 자체에 부담이 되는 방식으로 억지로 농업을 짓는 땅을 넓힘으로써 그 지역의 자연을 파괴해 온 유산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줄곧 중국 뿐 만이 아닌 같은 농경 중심 국가였던 조선도 항시 자연에 부담이 되는 농업 때문에 홍수와 각종 재난에 의해 애를 겪고 이와 싸워오는 것이 각 왕과 조대의 큰 일이 되어 왔음을 보아야 한다. 곧, 동아시아의 경제 방식이 결코 친환경적이지 못했다라는 사실이고, 이로 인해 자연의 분노를 사 왔다는 것이다. 이 전통적 자연에 부담을 주는 방식은 지금, 지구적으로 보았을 때 경쟁력과 경제성이 없어 할 필요가 없는 농사를 동아시아에서 자꾸 해옴으로 인해 지구에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곧, 지구상의 재앙적 결과인 중국의 과잉인구, 그 밖의 농업 중심인 인디아, 월남, 인도네시아 모두 인구가 과잉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특징적인 것은 인디아와 인도네시아, 월남은 쌀농사를 짓는 것이 그다지 자연파괴적인 산업이 아님에 반하여, 중국의 경우, 특히 중, 북부로 오게되면 자연에 부담이 큰 산업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후 등의 문제 때문에, 일모작 밖에 하지 못하며 그러다 보니, 보다 넓은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해서 강과 산을 개간하고 화학비료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화중 지방 이북으로는 밀이나, 보리, 기타 온대에 맞는 농사를 짓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농업위주로 나간 유교문명에 의해 많은 인력이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가 지금과 같은 재앙적 인구과잉을 낳은 것이다. 중국 정도의 위도가 되는 나라에 중국처럼 과잉 인구의 나라는 드물며, 멕시코도 아열대, 열대에 속하나 역시 전통적으로 농업 중심국가임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이렇게 자연을 학대하고 이를 통해 경제를 꾸려온 동아시아 유교문명의 전통이 지금의 중국과 같은 보통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자연파괴적 마인드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모든 공업화를 이루어 온 나라들이 중국정도의 환경 파괴를 경험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선반도는 어떠한가? 일단 상업과 교류를 천시한 조선반도 또한 그동안 반환경적인 방식을 산업으로 채택하여 살아왔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인구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보다 원시적인 경제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자연이 파괴되진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울은 전통적으로 그 타운의 크기가 중국의 산골 읍성 정도의 크기나 될까 싶을 정도로 작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교류와 상업의 전통이 적다 보니, 근대화가 시작되는 시기 마찬가지로 식량생산문제를 자체 국토에서 생각을 하다보니, 그만 매우 자연파괴적인 방식을 전국적으로 채택하게 된 것이다. 사실 쌀농사를 짓는 북방한계선은 조선반도 이남일 수 있는데, 산이 많고 농사지을 땅이 적은 조선반도의 특성상, 적은 양으로도 보다 많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는 쌀을 생산하다 보니, 그리고 중국의 방식을 수입해서 오다보니 이 쌀 생산은, 근대문물과 문명이 들어오는 시기, 북방한계선을 훨씬 초과한 만주지역 까지 한민족에 의해 쌀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온대지방에 속하는 독특한 한반도 지형과 만주지방은 그 독특한 자연의 에코시스템을 잃고 재앙에 더 취약하게 된 것이다. 북한이 왜 민둥산이 많아지고 자연재해에 취약한가, 하는 것은 다 이러한 근본이유 또한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근대화 시기, 이러한 자연을 깎아먹음으로써 경제적 산출을 낳으려는 농사군적 마인드가, 산업화 공업화시기에 그토록 자연 파괴적 결과를 낳는 바탕이되는 심성을 낳았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집단 농장 같은 아파트 선호와 어글리한 마을과 도시를 낳았고,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 특히 자연을 손톱으로 생채기 내어 경제적 부를 쥐는 결과도 이러한 마인드의 소산이었다고 본다. 더 안타까운 것은 노 정권은 이러한 마인드에 기대어 포풀리즘적 정책을 여기저기서 폈다는 것이고, 오히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마인드 자체를 바꾸려는 근본적 해결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면에서의 증진은 현 한반도 문명에선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님은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도 명확히 들어나는 것 같다. 한미 FTA가 전반적 큰 틀에선 필수적임은 대다수의 국민조차 동감하지만, 쌀 개방은 절대 안된다는 포퓰리즘적 노무현 정부의 그것이, 세계인의 마인드로는 도대체 이해하기도 힘든 그 것이었고, 특히 책임감 있는 상대 파트너인 미국의 불만을 샀을 것이라는 점이며, 동시에 그런 억지를 관철하기 위해 한국 측이 오히려 양보를 많이 한 부분이 더 생기진 않았는지, 이는 한국의 다른 산업의 종사자들의 잠재적 이익을 소실케 한 것은 아닌지, 진정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자유주의정신을 아는 사람이라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3. 애초에 농업생산기술이 근대의 도구의 발전에 힘입어 대폭 늘고, 약이 개발됨으로 유아 사망률이 대폭 떨어진 상황에서, 기존의 농업 중심 경제 발전의 마인드를 가졌던 동아시아는 인구폭발이라는 재앙적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온, 한대 지방이 많은 중국이 농업 중심이 아닌 대외 상업과 교류 중심의 나라이고, 각 기후 조건에 맞는 농사에만 특화하고, 그러나 여전히 경제의 중심은 대외 교류에 있었다면, 과거 실크로드와 같은 인구가 많지 않지만 문물은 화려하고 인간은 부유하며, 영양 상태와 체격도 좋으면서 사람들은 장수하는, 동시에 보다 친환경적인 대륙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볼 때 이제 무리해서 농업중심경제를 할 필요가 없어진 현 지구문명의 경제 시스템임을 고려할 때 온대지방에 속하는 한반도 또한 더 이상 농업에 커다란 토지를 이용하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이 진정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한반도에서 더 이상 쌀농사를 지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며 특히나 강 주변에서는 더욱 농사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보다 지속가능하면서도 경제적인 방식으로 치수를 하고 동시에 주위에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의 지대를 만듦으로 보다 신경제적인 방식으로, 땅을 경작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영혼을 경작(cultivate)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렇게 공원을 만들고 자전거 길을 만들고 동시에 전 지구적 기후변화로 인해 주요강에서 치명적 파괴를 낳을 것을 미리 대비하는 치수 시스템을, IT기술을 이용하여 더불어 발전시켜야, 앞으로 많은 개도국이 강 주변에서의 농업은 그만두고 치수산업에 나설 터인데, 그 경험을 IT기술과 시스템과 더불어 전수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GRID 산업의 일환으로써의 4대강 사업은 글로벌 문명적으로 한반도가 마땅히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사업인 것이다. 이는 곧 한반도의 농사꾼 정신을 버리고 글로벌적으로 보다 책임감있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밝은 마인드로 세계와 교류 협력하는, 강과 해안문명의 정신과 태도로 갈아끼우겠다는 보다 책임감 있는 태도요, 문명사적 전환이요 문명 진화의 시발점이 되는 물꼬가 트이는 사업인 것이다. (이와 관련된 보다 많은 서술은 필자의 신간 <희망을 위한 경제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렇게 보았을 때 전 지구적 기후변화로 인해 주요강에서 한번만 재앙이 일어나면 그 경제 손실은 어마어마하고 수 조 단위일터인데, 이를 미리 대비하는데 2십조원을 미리 들이는 것은 오히려 합리적 지출일 수 있다.

4. 오마이 뉴스의 그 기사는 현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주는 기사이다. 이미 서민은 왜 정부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듯한 일을 막 하는가? 곧 수입쌀 판매하려고 막 홍보하는 등 말이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또한 그동안 한국 정부가 한국 농민들한테 잘못된 메시지를 주어옴으로써(혹은 이를 권력을 위해 이용함으로써<= 이는 <인간혁명게릴라경서> 참조) 농사를, 특히 쌀농사를 고집하여 온 것, 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못한 경제 시스템을 불도저로 갈아 없을 때인 것이다. 이는 바로 국가적 건설이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각 나라에서 국가적 인프라 사업이 새로운 문명을 열어왔음을 생각해보자.)

진중권 교수 등이 말하는 소통에 자원을 많이 들이는 것이 아닌, 소통이 되려면 이 ‘한반도 농사꾼’ 마인드부터 없에고 해안 문명, 상업 자유주의 정신문명으로 갈아끼워야 소통과 협력과 자유민주주의도 가능할 것이지만, 진교수 등 진보세력은 아직도, 중국문명의 농촌공산주의 혁명 방식 같은. 농사꾼들 수준의 정신을 조작, 세뇌 선동하여, 정치적 이익을 달성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진정한 정신의 발전을 원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며, 그래서 문화 관련 오늘 기사에서도, 박찬희 교수의 한국인의 전반적 마인드 수준을 지적한 것에 대해(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797) 매우 감정적 언사로 괴벨스적 선동이라고 폄훼하는 예민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박찬희 교수의 이와 같은 시각은 사실 각계 많은 사람이 무릎을 치며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필자는 진교수 등이 그 자신의 언사로 인해, 그 증거로써 삼아지며 꼭 같은 비판을 많이 받는 것을 보았는데 이에 대해선 대답이 없는, 매우 책임감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한반도도 국토를 활용하는 것을 다른 차원에서 완전 다시 고려해야 한다. 더 이상 유휴토지에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뒤쳐진 마인드를 가져선 안된다. 한반도는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며 숲을 만들고, 자연 그대로 환경을 살리며, 산지로써의 다이나믹한 모습을 잘 살려 인간 정신과 영혼을 경작하는 사업에 정신을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자연의 파괴적 침습은 숲을 만들고, 강 주변의 습지 등 조성하며 자연을 높은 수준에서 컨트롤 하면서 말이다. (<인간혁명게릴라 경서>참조) 그러면서 곡류 등의 먹거리는 한반도에서 쌀농사 보다 훨씬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농약을 전혀 치지 않는 방식의 남아시아와 중국 일부지역의 그것으로 대체해나가야 한다.

아무리 소통을 외치고 하지만 현재 한반도 인의 이러한 완고한 마인드는 소통과 교육을 통해서 바뀌어 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국가적 사업을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지역의 책임감이라곤 연습해 볼 기회가 적은 지역 농사꾼들의 마인드, ‘너 죽고 나 살기’만이 삶의 유일한 출구인 자연에 취약한, 그래서 무책임 마인드의 낮은 발전단계의 문명으로는(그래서 중간에 사라져버릴 위험에 더 취약한), 소통은 오히려 그들의 공격의 좋은 구실을 제공할 것이기에 이를 잘 이해해야 한다. 전에 말했듯 밥상을 발로 차버리며 땡깡 부리는 무책임한 수준의 미약한 정신은, 그 자연적 폭풍과 같은 감정이 사그라져 든 후 대응을 해도 할 것이지, 차버린 밥상은 그대로 두고 그냥 놔두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이 문명사적 전환이 진정 자유민주주의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진흥시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낡은 한반도 문명의 정신으론 도대체 되질 않는 것이다, 이는 비단 정권을 바꾸고 하는 차원이 좋은 해결책이 아님은 지난 10년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동시에 어떠한 정당이 정권을 잡았든, 이 문명의 진화 발전은 한 시도 쉬고 늦출 수 없는 작업이기에, 정권 따질 문제가 아니다. 마치 인류보편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작업은 정치와 상관없이 한시도 쉴 수없는 미션인 것과 같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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