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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같은 정신의 문명과 도구의 사용처

소통과 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발달이 토양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자유민주주의적이지 못하면, 자연 자연스러울 일과 마찰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슈가 된 몇 가지 일들을 바라보면, 바로 이점 때문에 쓸데없는 소모적 마찰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마찰이 일어나기 쉬운 정신상태를 계속 유지하도록 책동하고, 그러한 왜곡된 정신에서, 자연스러운 일과도 마구 마찰이 일어나 부정적 정서가 쌓여 이러한 편협한 정서 속에 빠져있도록 획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사람을 인식하고 가려내는 것은 진정 자유민주주의가 진흥되고 그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는데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곧 망치가 아이에 손에 쥐어지면 정서적인 것에 휘둘려 아무 곳이나 마구 치고 부수고 하여 시끄러움이 많을 것이다. 아이에게 이러한 정서를 불어넣고 사역하는 권력, 그리고 아이의 수준으로 정신이 머무르고 사악한 어른의 말을 잘 듣게 되는 수준으로 소조하는 권력을 인식해야 함은 필수이다.

1. 먼저 요새 일어나는 시끌벅적한 일들을 보면, 큰 틀에서 모두 이것이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무료급식 예산 문제로써, 치사스럽게 애들 밥 가지고 싸우고 까탈부린다는 식의 인식이 있다. 필자는 정확히 예산이 전부 통과되지 않은 것이 어떠한 문제 때문이었는지 깊숙한 배경까지는 모른다. 그러나 해당방면에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예산이 투입되는 거에는, 해당 조직의 청렴도나 효율성, 현실 정황을 생각했을 때 심히 우려가 생긴다.

국가의 재정이든 어떤 종류의 자본이든, 투입 받을 대상에 일어나는 효과를 예측해봐야 하는 일은 필수이다. 만약 자본을 투여 받았지만, 그 대상이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다면 자본투자 보다 구조개혁이 보다 우선순위에 올라야 한다. 20세기 선진국들이 보편적 가치의 증진과 겨에발전을 위해 이미 개도국들에 자금 원조를 대량으로 해 왔지만 목표했던 목적은 달성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지역의 권력들 배만 불리고 더 부패하게 되어왔다. 이에 이러한 오류는 20세기로 끝내야 한다는 교훈을 이미 진즉에 얻었다. 그리고 어떤 가치를 진전시키기 위해, 목표를 얻기 위해 자본의 유무로만 보는 단순한 시각은 진즉에 벗었다.

실지 한국도 이승만 정권 당시 대외 원조를 부패한 권력들이 독점하여 가져가고 국민들을 수탈하는 자본으로 오히려 이용했기에, 결국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란 것을 통한 로드맵과 시스템 개혁을 도모해야 미국으로 부터 자본을 투자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을 한국인으로써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자본이 목적했던 효과가 일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더 큰 의미에서의) 시스템 변화까지 일어나야 자본을 투자 받을 마땅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현 기업들이 투자를 받는데 있어, 비단 경쟁력 있는 상품만 있다고 투자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님을 상기하자. 그 기업 내부의 구조적 경쟁력 자체를 보는 것이며(청렴성, 투명성, 도덕성 등 포함), 장기간 이익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현 초중등교육기관에 무료 급식 문제는, 단지 돈만 투자해서 황급히 해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 교사 공무원이라는 미명과 절대 권력을 배경으로, 권한을 남용하여, 학생들이 먹는 밥에까지 손가락을 찔러 넣어 챙겨 쳐 먹는 공무원 권력과 그에 결탁한 납품·제공 업체가 있는 것이다. 말마따나 돈 2천원에서 2천7백원에 나오는 한국 학교의 급식 수준을 보자. 집에서 소량으로 구매해다가 만들어도 그 정도 식단수준은 나오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더 푸짐한 식단을 차릴 자신이 있다. 전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은 흔적도 없고 대량구매라는 장점도 사라지고 없어 보이고, 오히려 부실한 식단이 나오는 것이다. 이는 급식대상인 학생들의 불만은 너무 흔한 것이어 왔기에,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대폭 개혁의 칼을 들이대야 할 대상이었지만, 교육 공무원 촌지문제 같이 황당할 정도의 느슨한 잣대는, 결국 일본의 학교 급식과 비교되어 나온 질박한 한국학생의 급식 수준으로, 또 유튜브 등에서 각 나라들의 그 것과 비교되어 국제적 망신을 사오곤 하는 대상으로 되었다.
분명 한 끼에 2천원에서 2천7백원을 수백명에서 천명이 넘는 아이들의 한 달치의 큰 돈을 한번에 받는 것을 고려하며, 동시에 대량구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사기업의 이윤의 포션을 낮추어 잡고 정부지원까지 있다고 추측한다면 중간에 더럽게 해먹는다는 의심을 안 하는 것이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일 것이다.

곧 이번 경기교육청의 감사에서 급식지원금을 줄인 것을 욕할 것이 아닌, 투자를 저어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교사 공무원 등의 더러운 커넥션이 없는지 우선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2천5백원을 받으며 그 정도 식단을 만든다면 급식비를 못낸 학생 것까지 공짜로 줄 수도 있지 않을까하며 의심스럽다.(어차피 대량구매이므로 남아서 버리게 되는 양도 많아 소수의 어려운 학생에게 무료배식하는 것도 돈이 많이 든다고 볼 수없다.) 그러면 따로 굳이 추가 재원을 지원받을 일까지 없어지는 것이다. MB정부의 예산 절감과 지원을 줄이는 정책이, 어떠한 가치를 무시해서가 아닌, 그 가치를 진흥시키기 위해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우선시하려는 것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줄어든 예산으로 더 좋은 효과를 달성할 수 있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애들 밥까지 뜯어먹어 이렇게 밥을 못 먹는 아이가 나오는, 도덕적 해이감이 상당한 구조 상태라면,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투자를 보류하고 다른 조치를 우선 취하는 것이 마땅해지는 것이다.
만약 감사 결과 더러운 결탁이 발각되지 않고 사기업이 폭리를 혹은, 보통 식당처럼 생산원가의 서너배의 이윤을 학교급식에서 산정하여 가져갔다면, 이는 그런 업체와 계약한 공무원의 멍청함을 탓해야 한다. 이러한 나태함과 해이감 또한 또 다른 차원의 권력 남용이다.

우연찮게 이러한 교직 공무원들의 부패와 타락은 촌지라는 공무원 수뢰에 해당하는 범죄적 행위까지 옹호하는 집단 이익논리 정신과 태도를 낳았다는 것을 상기하자.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생명을 이루는 필수적인 근골격은 바로 법과 제도이다. 그러나 공무원 수뢰에 해당하기에, 수뢰 중에서도 죄질이 더 나쁜 것일 촌지조차, 일각의 비판에 의하면 반민주적이라는 MB정부에서 비로소 손을 대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이를 방관했던 지난 정권 정치세력들은, 공무원 중에서도 최고의 지위로써 누구보다도 법과 제도 수호의 책임감이 따르던 사람의 무책임한 태도를, 국민들이 일부러 못 보게 하고, 유교적 인치와 정서에 의한 지지를 체화발전하는 태도를 고무시키고 있는 것이다.

민주정부 10년간 반자유민주주의적인 수치스런 유교문명적인 것을 묵시한 것이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민주정부인지, 진실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발전은 누가 정권을 잡았느냐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지난 글에도 뉘앙스를 남겼지만 유교문명으로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가짜 민주주의pseudo-democracy인 유교적 민주주의만 가능하다. 하기사 대다수 민중이 사실은 이러한 것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나, 그러하기에 진정 자유민주주의를 가치롭게 여기고 진흥시키려 하는 사람은, 이러한 대중의 정략적 행위에 기름을 부을, 소통이니 하는 것은 특히 더 주의해야 되는 것이다. 첫째로 필요한 것은 그들의 수준이 되는 것이다. 곧 그들이 동일한 보편적, 헌법적 가치를 옹호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동시에 홍위병 같은 태도를 버리고 비윤리적 권력자(지식인 포함)의 정략적 선동에 감정적으로 휙 휩쓸리지 않겠다는 명확한 인식, 역사에 대한 반성, 기본 자질이 필요하다. 홍위병이 중국대륙에서 발생했다고 비단 중국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닌 남한에서도 아직도 같은 종류의 파괴적 행태는, 역시 같은 유교문명권으로써 면면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2. 우연찮게 또 이 대통령이 재산기부를 한다는 뉴스가 있었다. 장학재단 설립하는 것을 통한 기부형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그저 사회복지 단체 같은 곳에 기부하지 왜 이런 방식으로 하냐고 또 딴지를 거는 사람이 많고, 이런 방식은 기부도 아니라는 등 편협한 인식으로 폄훼하는 정서도 널리 퍼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자체가 또다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게 되며, 역시 교육공무원의 수준과 그 세상이 어떠한 수준인지 다시금 회의적 생각을 짙게 가지게 한다. 이렇게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일천한 사람을 집단으로 양성하는 시스템이 한국사회에서 소통이 어려운 것의 가장 근본원인일 것이다.

역시나 모든 사회복지 재단, 좋은 미명을 가지고 있는 단체들은 모든 자원을 선량하고 가장 합목적적으로 쓸 것이라는 어린아이의 왜곡된 인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진정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은 책임감이다. 자신이 기부한 돈이 어떻게 잘 쓰이고 있는지, 혹 부여받은 권한과 돈을 비윤리와 부패와 방만에 이용하고 있지 않은지 책임감을 가지고 관찰하고 또 상대로 하여금 그렇게 나오도록 하는 것이 진정 자유민주주의를 통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태도이다. 책임의식이 부족한 아이와 같은 미약한 정신은 아무리 좋은 도구와 제도를 가지고 와도 약발이 못 받고, 악용되기 쉬운 것이다.

이러한 주로 자유시장경제를 토양으로 발전한 경영학적 마인드와 지식이 자유민주주의와 그 것이 진흥하고자 하는 보편적 가치를 더욱 발전시켜오는 것이다.

오히려 돈을 우상신 숭배하듯 기부하는 행동자체가 개혁대상인 것이다. 이로써 이대통령의 그 행위하나는, 소통을 하지 않고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는 리더로써 귀감이 되어 대다수 걸리블(gullible; 어린아이 같이 순진하고 무지한 발전되지 못한 나약한 수준의 정신, 그래서 속기 쉬운 정신의)한 국민들이 민주주의 시민이라면 참으로 보고 배워야할 태도이다.

한국사회에 사이비 종교와 비윤리적 종교, 전근대적 사기꾼적 종교가 많다고 욕할 것이 아닌 우리 국민과 문명 수준이 전반적으로 그것에 취약한 수준에 있는 것이다. 재단을 통한 기부라고 김밥할머니나, 연예인 등과 비교하며 순수성을 의심하며 폄훼하는 태도에서 선명히 들어나는 듯하다.

자유민주주의를 할 만한 문명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나라들이 대개 공산주의민주주의라는 것을 자유민주주의에 대항하여 채택했다. 그 결과가 바로 국가 재정의 방만함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온갖 권력을 가진 자들의 빼돌리기, 부정, 수뢰, 한탕 해먹기 등 그 추악상은 말도 못하는 것이어서, 종국에 재앙적 결과를 낳고, 세기적 도퇴를 낳은 것이다. 그리하여 대개 공산주의민주주의를 채택했던 적지 않은 나라들이 퇴폐와 멸종의 유교문명의 늪에 깊이 빠져있던 조선보다 앞선 경제와 문화, 문명적 상황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러나 남한의 경우 비록 억지스럽게 맞지 않는 옷이었지만, 대다수 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유민주주의 노선을 비스무레하게라도 걸어온 가장 뒤떨어진 퇴락한 문명이었던 유교문명에 속하던 남한보다 뒤처지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바로 이렇게 위험스런 수준의 홍위병적 태도나 보이는 수준의 국민을 원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각종 권력자들이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진보·개혁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이러한 것을 이용하는 욕구를 참지 못해 온 듯하다. 또 이러한 수준의 국민들을 양성하는데 복무한 것이 바로 교육 공무원의 역할이어 온 것으로 여겨진다.

3. 그러니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할수록 개인의 가치는 점점 더 증폭 확대되고, 그러한 부분이 사람들의 인식에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곧 각 개인들에 있어서 가치있는 유무형의 자산이 더 많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의 가치와 존엄을 고양시키는 것이 된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언론계에 종사한다면, 그 사람의 언론인으로써의 가치있는 자질과 덕목을 폄훼하는 발언은, 곧 그 사람의 가치있는 자산을 무뢰하게 훼손하는게 된다. 그러하기에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에 대한 무고와 악의적 명예훼손은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보다 더 엄중히 처벌 받을 수 있다.

하기사 한국의 교육기관에서는 법 없이 살 수있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하는 교육이어왔다 보니, 홍위병적 행위를 하는 집단의 이익에 복무하는 논리를 생산해왔음을 다시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유민주주의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의식이 자연히 고양된 지식인이라면, 특히나 사람을 비판할 때, 그 사람의 존엄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자산이 훼손되지 않는지 더욱 주의하게 된다. 그러나 집단 싸움의 승리를 위해 개인은 소모되는 정도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진 홍위병이나 낳는 수준의 마인드의 지식인이라면, 개인의 가치있는 자산과 존엄은, 공산주의 혁명, 홍위병 재판과 같이 자신 집단의 목적을 위해 한낮 소모되어야 할 그것으로 추락한다. 그래서 개인은 추악한 공격대상으로 색칠하여, 자신 패거리의 왜곡된 인식을 부추겨 한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자신 집단의 승리를 위한 한낮 연료로 태워버려 소진할 것이다.

오히려 약자와 가치있는 자산에 대한 의식과 모든 이의 존엄을 일깨우는 법적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는 부채의식을 가져야 할 노릇이지만, 자영업자와 상인은 혁명의 망치를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식의 편협한 정신 밭으로 일구어진 다수의 국민들은, 그러한 부채의식 혹 가치를 인식하고 긍정하는 인식보다, 욕먹고 폄훼 받아야 하는 그것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이 본 신문에 올라온 기사 중 무책임한 군중심리로 변대표를 명예훼손하여 고발당한 이의 인터뷰에서 들어난 당시의 심리 상태를 보니 딱 홍위병과 같이 군중심리에 선동되어 왜곡된 정서적 인식으로 파괴하던 상태였음을 볼 수 있다.

진실로 자유민주의 가치와 인류보편적 가치를 증진시키고 보다 조화와 평화 발전 속에 살고 싶으면, 스스로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혹 그러한 가치와 사실은 위배되는 인간으로 잘 육성되어 온 세속적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함은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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