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기타


배너

한국사회 진보라는 화두와 정치현실

집단주의의 극복이야말로 첫 과제

최근 무엇이 진정 진보인가라는 화두를 보고, 진보라는 개념이 정치적 성향과 이념을 뛰어넘어 그 지평을 확대하게 되는 충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현 이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그의 지지자와 비지지자를 넘어서 희망을 보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지난 정권 당시, 비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로도 하여금 깊은 혐오와 실망을 낳았던 노 정권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점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오히려 자칭 개혁` 진보라는 사람들이 개혁 진보적인 정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낳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노정하고 있음이 보여져, 비로소 진보라는 것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의 회의적 사고를 부추기는 현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1. 먼저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말 쯤 되면 면접만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이 발언은 매우 파격적인 것이라 하겠다. 너무 파격적인 것이라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며 그래서 대중 속엔 오히려 부정적으로 여기는 정서가 감지된다. 특히 여권에서 일하는 사람, 행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마저 이를 보다 온건한 것으로 상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여 전달하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교육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 대통령의 그와 같은 소망은 사실 민주국가로써 너무 자연스러울 그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교육을 원하는 모든 이에게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의무이기에 그렇다. 특히 기회의 균등을 통한 평등사회 추구라는의무를 고려했을 때, 국민 개개인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필수적이라 하겠다.

그렇게 보았을 때, 기존의 한국의 학생의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수능제도는 사실 학생개인의 잠재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못할 뿐 만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대학입시제도와 맞물려 교육 수요자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원하는 공부를 선택해서 하는 문호를 대폭 좁혀놓는 모습을 노정해 왔다. 곧 수능 제도는 국가의 교육 서비스 제공능력 부재의 무능을 가리기 위한 제도로써, 추한 얼굴을 과학이니, 전문성이니 하는 권위를 빌려와 본래의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한 도구로써 이용되어 온 것이다. 현재의 한국 고등교육 제공 상황과 그 입시제도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모순이 일어나는 제도임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사실 잘못된 환경 속에서 제도를 포함 하여 그 환경 탓만 하는, 제도를 업은 관료제 하의 노예적 체념정신을 체화하며 살면서 현실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악렬한 태도를 가장 근본적 문제로 인식하고 살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하므로 진정 진보개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기존의 모순충만의 죄가 많은 제도를 아예 초월하여 근본적 중요한 가치가 가장 잘 존중받는 혁신적 사고를 하는 것은 사실 필수인 것이다. 사실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의 수준 또한 글자와 상식만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습득할 수 있는 입문 수준이다. 이런 수준의 학문을 매우 까다로운 제도를 통해 비합리적인 잣대로 평가하여 선택의 폭을 대폭 좁혀 놓는 것은, 그 제도를 통해 국민들에게 고등교육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들의 도덕적 해이감과 사기 모두 심히 악렬한 상황인 것임은 누구나 인식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자유민주주의를 진흥시키고 행복 추구를 보장하고, 천부적 권리를 보장하는데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러나 한국은 오히려 국가의 마땅한 책임은 게으르게 방만하게 하여 그 서비스 제공은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질도 떨어는 상황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이러한 무책임함과 죄악스러움을 분식하고 책임을 면피 받기 위해 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사용해 온 것이다. 과학과 전문가, 그리고 단어의 권위를 이용하여 만든 수능과 대학입시제도를 이용하여,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매우 훼손하여 온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다면, 아직도 수능이니 대학입시니 하는 것에 조금씩 손만 대는 방식을 통해서는 전혀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실 국민으로부터의 불신으로 그 제도를 따를 수 밖에 없는 수요자들로부터의 사기 또한 매우 저하되어 있어, 오히려 모든 좋은 쪽으로의 변화에 손대려는 선의지의 발로조차 부정적인 것으로 감정적 인식을 자동적, 자연적으로 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근거없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 아닌, 자신들의 십수년에 걸친, 간접적인 경험까지 합치면 수십년의 시간을 통해 축적해온 경험을 통해 나온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죄악스런 교육 입시제도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의 이익논리에 눈치를 보며, 눈가리고 아웅 식의 개혁을 하는,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같은 정신 수준으로 개혁을 하겠다는 낡은 정치인으로는, 진보개혁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지난 정권 10년이 진보개혁을 주창했지만, 많은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도대체 어떤 진보개혁이 있었는지, 오히려 어떤 부분에선 퇴보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낳는 현실의 원인일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정부의 목표를 대통령이 나서서 파격적인 언사로 해줌으로써 (진실로 될지, 그렇게 움직여져 나갈지는 모르겠으나) 진정 문제를 인식하여 애처롭고 쓰린 국민의 가슴을 공감해주고 보다듬어 주는 언사를 용감히 했다는 점에서 또한 가치는 있는 것이다.

동시에 최고 지도자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인민대중일 터인데, 최고 지지자가 아무리 좋은 개혁적,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기존의 공고한 관료 그룹의 고루함과 이러한 틀로부터 이익을 잘 취해먹던 사람들의 이익에 해가되는 것이겠기에 역시 최고지도자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국민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도, 자신의 개혁적 사고를 실현할 실무자들과, 관료들에게도 자극제를 주는 것이다. 이것이 MB가 말한 국민 속으로 들어가서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 정책을 펴나가는 동시에, 이러한 혁신적인 사고를 일하는 사람들이 항시 잊지말고 그러한 목표를 향해 도전하도록, 국민의 동의를 보고 도전하도록 사기를 북돋우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이번 휴가철에 이 대통령이 관료들에게 Nudge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는데서도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최고 지도자의 이러한 태도는, 말로써 지지자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배신감을 들게 하던 전직 대통령의 행동면에서의 차이만 두드러지는 것이 아닌, 범 선량한 국민의 가슴을 보다듬어주는 용기있는 발언의 차이에서도 더 좋은 태도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번 정부의 대학학자금 대출 상환 기간 유예 정책이 뒤이어 발표되었다. 이는 교육 기회의 평등이라는 근본 가치의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뿐만이 아니라, 어려움에 놓인 국민을 스스로 찾아가 구체적으로 정책적으로 서포트 해주는 진보한 현대 정치 서비스를 보여준 케이스로 여겨진다.
전 정권은 서민을 위한다면서, 대학 등록금은 유례없이 적립식으로 불어났었고, 이를 막을 의지가 진정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아무리 현실적 토양의 어려움 등의 논리로 변명할지 모르나 결과적으론 수수방관하게 되던 거에 비하면, 진정 진보개혁은 누가 정권을 잡았느냐의 문제는 진정 아닌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2. 진보개혁을 주창한다면서 과거 정권의 대실수였던 새만금 사업을 우유부단하게 어쩌지 못하다가, 결국 공산주의적인 포퓰리즘적인 이용대책이나 내놓아(새만금에서 쌀농사를 짓겠다는 부분에서는 압권이었다), 스스로 이를 수행할 의지조차 없게 만드는 것이 소위 진보개혁 정권 10년동안의 새만금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새만금 명품도시 계획은 진정 세계의 문명사적 전환을 한반도에도 이끌고 오는 행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낳게 되며, 이러한 적절한 사업을 선정하여 준 것은, 공무원인 전북지사를(아무리 정당 소속으로는 반대당이지만) 의욕에 차올라 춤추게 만드는 것으로, 경영자로써의 MB정부의 장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지 않나한다. 이는 확실히 자신의 작은 정파적 이익에 얽메이는 것이 아닌, 국가의 목적과 국민의 이익이라는 보다 높은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게 되는, 대통령의 사재의 기부라는 좋은 사례에 이은 좋은 전통같은 것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 현실의 장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일하는 자’ 들과 정치라는 협소한 장에서 자신들의 협량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만 이전투구하는 자들과의 대립은 항시 있어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진보와 수구의 대립이, 국민이 진정 정치세력들에 혐오감을 느끼고, 하도 괴로워 그냥 박정희식 독재나 다시 그리워하게 되는, 국민들이 청소년의 가출과 일탈행동적인 것을 꿈꾸게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새만금 명품도시는 필자가 말하는 문명사적 전환이라는 부분에서도 인면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데, 이러한 세계적으로 경쟁력있게 어필될 수 있는 마인드의 도시는 한국의 어느도시로써도 나타났던 적이 없었던 것이기에 그렇다.

아래 블로그에서 다룬 싱가폴 같은 경우와 또 솔직한 사람이라는 닉네임으로 단 필자의 답글을 통해 대략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http://blog.ohmynews.com/solneum/160012

광화문 광장이나, 아름답게 창조된 자연이 일상의 일부인 도시, 자유무역의, 신자유주의적 코스모 폴리스cosmopolis, 이러한 진보된 문명은 자칭진보개혁정권이 아닌 오히려 이명박 정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이기에 그렇다. 특히 이러한 방면의 발전은 필자의 신저서 <희망을 위한경제관>을 참조하면 자세히 나온다. 놀랍게도 현재의 광화문 광장과 같은 것에 대한 보다 나은 제안이, 1년여 전에 글작업에서 이미 지적되었음을 접할 수 있다.

3. 이번 정부 들어, 이제 내년 초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사람도, 현역병이 누릴 수 있는 부분인, 조기 소집해제제도를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한다.

필자의 지인 중에는, 지난 정권에 더 강화된 병역처분 기준에 의해, 좀 더 까다로와진 제도의 김대중 때만 해도, 면제 받을 수 있는 증상이 면제 받지 못하고 공익근무 요원 처분을 받은 경우를 보았다. 그러나 복무 중 병상이 더 악화되어, 조금만 더 악화되면 실명에 이르고 목숨을 잃는 경우까지 올 수 있는 상황임에도 아직 그러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다고 공익근무를 계속적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받는 경우를 보았다. 당시의 부모의 눈물 나는 절규는 필자 가슴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아무리 격렬한 전쟁통에 있다해도 이런 사람을 계속 일하도록 시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대중적 규제주의에 의해 한 사람의 건강을 영원히 상실하고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적 규제주의에 의해 개인의 천부적 권리와 존엄마져 훼손당한 경우를 노 전대통령 임기 시절, 각계의 말없는 소수의 목소리를 필자는 다수 들은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이제 공익근무도 현역과 같이 조기소집이 될 수 있게 된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아무리 민주개혁이라지만 어떻게 이러한 제도조차 못 바꾸고 있었는지, 그리고 오히려 규제를 더 강화하여, 오히려 자유민주와 진보개혁의 근본가치는 파괴하고 퇴보까지 낳았는지를 볼 때, 한국사회의 진정한 개혁과 진보는 어느 정권이 정권을 잡는 차원이 아님을 다시 선명히 느끼게 되는 요즈음이다.

4. 이렇게 평소에 진보와 개혁을 부르짖던 대통령이나, 정당보다 이 대통령이 더 진보개혁적인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곧 경영자로써 뼈가 굵은 이명박 대통령과 변호사로써 뼈가 굵은 노무현 대통령 사이의, 서로 다른 직업이 나은 서로 다른 퍼스낼리티가 낳은 차이인지도 모른다. (혹시 이를 두고 변호사는 그럼 고위직에 올라선 안되냐?라는 식의 오해는 하지 않길 바란다. 한 개인의 퍼스낼리티를 빚는 것은 비단 직업만이 있는 것도 아니며, 모든 영역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르면 하나로 통하는 면이 있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변호사는 철저히 자신이 맡은 고객의, 자신의 편의 이익을 지키고 얻기 위해 싸워주는 직업이다. 그의 자살은 그러한 가치를 수행하는 역할로써 나타났다는 점에서 조차, 끝가지 일관되는 퍼스낼러티로 나타난 것이다.

최고 경영자는 항시 가장 진보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를 조직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포장하여 어필하고 또 설득하고 동기부여를 해야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진보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데 있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 미션을 전 정권보다 훨씬 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한나라당 내에서도 필자는 줄곧 인식하기를 현 이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 했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최고의 리더로써 선택받을 수 있었던 면도, 다년간의 경영인으로써, 자신을 상품화 하여 어필하는 능력과 마케팅 능력의 뛰어남 뿐만이 아닌, 굳건한 현실의 토양에서 쌓아올린 현실 감각에서 나온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확실한 목표를 남들에게 전염시키는 퍼스낼리티 등을 갖기 위해 싸워왔을 것이다.(이 점이 얼마나 뛰어날지는 필자도 많은 자료는 가지고 있지 못하나, 일단 이러한 것이 보이고 그 가치에 공감할 수 있다면 이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돕고 고무시키는 것이, 책임감 있는 태도라고 본다.) 그리하여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서울시장과 대선 주자로 선택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권한을 가진 자리에 오르게 되자, 기존의 한나라당의 이미지와 다르게 개인의 진보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사실 진보적인 법안이자, 제도와 전체 시장 환경을 진보적으로 바꾸는 최근의 미디어법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진보적 언론이라는 한겨레`경향 두 신문 시장점유율 합해서 10%도 안되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컨소시움 등으로 하나의 지상파 방송국으로써 지상파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방송 언론 보도에서는 자신들의 시장점유율을 높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틈새시장 플레이어, 대안주자로써 각광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허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법의 또 다른, 진보적 일면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에서도, 기존 낡은 생각의, 낡은 이미지의,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받는 유력한 대선주자가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방식으로 딴지를 놓았던 점, 당에서 조차 이러한 행위에 부응할 뿐만이 아닌, 제대로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해 지금과 같이 절차상의 위법성문제를 낳는 상황을 일으켜, 소모적 저열한 정쟁, 추한 충돌에 질린 국민들의 마음을 평안케 해주는 책무를 잘 해주지 못한 점에서도 최고지도자의 진보개혁성의 실현이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같은 정당에 속해있더라도, 정신이 개인에게 주어지고, 그래서 집단과 다른 말을 할 수 있으며, 또 이로써 발달한 정신은, 권한을 부여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라고 강조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평등 지향의사회는, 이러한 각종 권한이 일상생활영역에까지 수시로 모두에게 마구 주어지는 환경임을 생각하자. 그래서 개인에게 정신이 주어지는 것이 필수인 것이다. 개인에게 정신이 주어져야 필수적으로 책임감과 윤리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이러한 면과 경제는 땔레애 땔 수없는 것으로, 이거 관련한 보다 현실친화적인 생산·발전적 진보적 경제관이 낡은 좌익적 사고를 기반한 장하준 우석훈 식 경제관을 타파하는 모습을 필자의 최근 저서 <희망을 위한 경제관>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이점이 미디어 법, 쌍용차 노조 사태 등에서도 보듯이 서로간의 극렬한 제로섬식 추한 투쟁을 보이는 근본원인이다.

이렇게 정신이 발생하지 못하고 주체에 주어지지 못한 개인에게, 바로 자유경제와 경영인, 개신교의 영향으로 정신이 생겨나고 주어지기 시작했듯이, 아마 한국사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도 이러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진정 한국의 진보개혁을 원하는 사람은 주체적 정신을 가져야 하고, 정략적으로 편들기 식, 집단에 귀의하는 정신이야 말로 1차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