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파보도 등으로 인해 해임의 위기에 처해있는 MBC 엄기영 사장은 확대간부 회의를 통해 “그동안 안팎의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공정성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개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외부 인사가 MBC 내부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기구로 이미 MBC 시청자위원회가 존재한다. 엄사장이 제안한 공정성위원회와 시청자위원회의 기능이 대체 어떻게 다른지 아직까지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엄기영 사장 체제의 시청자위원회의 역할로 볼 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엄기영 사장은 광우병 논란이 한창이던 2008년도 처음으로 시청자위원을 임명한다.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이경일 한성대 초빙교수, 이재은 전 충주MBC 대표이사, 박인혜 한국 여성의 전화 이사, 이영희 청소년을 위한 내일 여성센터 대표 등 12명을 임명했다.
2008년도 엄사장의 시청자위원 인선의 특색은 특별하게 이념성향이 두드러진 인물과 미디어 전문가들이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언론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임 최문순 사장의 경우 노무현 정권 당시 여성부 장관을 지낸 지은희 여성사회교육원 이사장을 시청자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역시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던 박은수 한국장애인촉진공단 이사장, 노정권 당시 국민참여수석을 지낸 박주현 변호사, 강력한 진보좌파 이념적 성향을 드러내는 이철기 동국대 교수,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등등, 정파나 이념 지향적 인물을 대거 등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노무현 정권 인사들 대거 등용했던 최문순 사장
또한 최문순 사장은 김명준 영상 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소장, 마동훈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최성주 경실련 미디어워치 기획위원, 김택근 미디어칸 대표,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등등 미디어 전문가들도 배치시켰다. 최문순 사장 시절과 비교해보면, 엄기영 사장의 2008년도 시청자위원회에서는 이념 지향적 인물이나 미디어 전문가가 단 한명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엄기영 사장의 시청자위원회 구성방식은 2009년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송자 전 총장과 이경일 한성대 초빙교수가 2008년도에 이어 연임을 했고, 카피라이터 문애란, 홍승수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유연옥 문화평론가, 이철 세브란스 병원장 등등 여전히 이념적 색채가 없는 인물들과, 미디어 비전문가들로 채워넣었다.
2009년 MBC 시청자위원회 구성 당시 우파 시민단체에서는 공모 시기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KBS의 경우 주요 시민단체들에 응모 공문을 일제히 돌리는데 반해, MBC의 공문을 받은 우파시민단체는 찾아볼 수 없다.
이에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측에서는 MBC 홈페이지를 통해 우연히 공모사실을 발견하여, 전경웅 사무국장을 지원토록 했고, 공정언론시민연대와 시민을위한변호사들에도 적극적으로 응모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결국 시간이 촉박하여 우파시민사회에서는 전경웅 사무국장 한 명이 지원하게 되었다.
MBC 측에서는 상당 기간 시청자위원 선정 결과를 알리지 않았다. 이에 인터넷미디어협회 측에서 직접 MBC 측에 연락하여 알아본 결과 탈락이었다. 당시 MBC 시청자위원회 담당자는 “왜 선정 결과를 지원자들에 알려주지 않느냐”는 항의에 “바로 오늘 알려드리려 했다”고 변명했으나, 인터넷미디어협회 측에서는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정결과를 통지 받지 못했다. KBS의 경우 지원자들 전원에 선정 결과를 알리면서 감사 및 위로 공문을 보내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다.
인터넷미디어협회는 그간 ‘100분토론’ 조작 사건, ‘뉴스데스크’의 선동형 멘트, MBC와 미디어다음과의 홍보 유착 등등 수많은 MBC의 잘못된 점을 밝혀왔다. MBC 측에서 인터넷미디어협회 측의 인사를 시청자위원회에 임명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인터넷미디어협회 측에서는 바로 이 때문에 MBC 시청자위원회가 무색무취하고 비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즉 민언련이나, 언개련 등등 강경 진보좌파 미디어 전문가들을 임명하게 되면, 인터넷미디어협회나 공언련 등 역시 우파 지향적 미디어 전문가들을 임명해야하니, 아예 양 측 모두를 배제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마치 좌파 매체들에게만 공간을 제공하는 미디어다음이 여론의 비판을 받게 되자, 우파 인터넷신문과의 계약을 하는 대신 좌파 신문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전략을 구사한 것과도 유사하다. 자신들에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는 좌파 미디어 운동가들을 배제시키면서까지, 우파 미디어 전문가들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청자위원회가 무색무취하고 비전문가들로 구성되다 보니, MBC 시청자위원회는 그 기능이 사실 상 무력화되고 있다. MBC시청자위원회의 회의록을 검토해보면, 광우병 촛불 당시나 ‘100분토론’ 조작 건 등에 대해 MBC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발언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PD수첩’과 ‘뉴스데스크’의 일부분을 강조하며 예찬하는 발언들도 있다.
엄기영 사장이 구성한 MBC 시청자위원회의 면면이나 발언록을 확인하면, 엄사장이 개혁안으로 내놓은 공정성위원회 역시 면피용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법적 기구인 시청자위원회마저 무력화시킨 엄기영 사장이 공정성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의지가 있겠냐는 말이다.
MBC 시청자위원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해온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의 강길모 공동대표는 “이미 시청자위원회가 무력화된 상황이라면, 엄사장의 공정성위원회 제안을 받아들여, 원칙과 신념을 갖춘 우파 미디어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실질적으로 시청자위원회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KBS 시청자위원회 탈락한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 “이념 고려해야” 주장
한편 최근 공모가 끝난 KBS 시청자위원회 관련 진보좌파 진영의 공공미디어 연구소 전규찬 이사장이 자신의 탈락을 항의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전 이사장은 KBS 측에 이념적 요소를 고려하라며 “KBS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우리 사회가 결정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정치․이념적 요소를 시청자위원 위촉과 시청자위원회 구성의 조건으로 삼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과 연령으로 아무리 절묘하게 뒤섞여있더라도, 그 면면이 이념․정치적 일색이라면 어찌 이를 균형 잡힌 결과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일갈했다. 즉 최근 방송사 시청자위원회에서 이념적 요소를 배제시키면서 좌파 언론단체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점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셈이다.
그러나 KBS의 경우 지난해 정연주 사장으로부터 이병순 사장으로 교체되는 미묘한 시기에 당시 이원군 부사장이 우파 인사를 단 한 명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친노좌파 인사로만 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하여 강력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인터넷미디어협회의 전경웅 사무국장을 비롯,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우파 시민사회에서 대거 지원하였으나 모두 탈락하였다. 인터넷미디어협회의 전경웅 사무국장은 “우리의 입장은 우파만 채워넣으라는 것이 아니라, 좌, 우, 중도 등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로 배분하라는 것인데, 지난해 좌파 일색 시청자위원회 구성에 대해 동의했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이념 배분하라 요구하니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전 이사장을 비판했다.
한편 이번 20기 KBS 시청자위원회에는 실크로드CEO포럼의 추천을 받은 본지 이문원 편집장이 예능드라마 분과 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전규찬 이사장은 이 부분도 문제를 삼았다. 이문원 편집장은 방송 엔터테인먼트 및 대중문화 전문가로서 참여한 것이므로 실크로드CEO포럼 측은 “이 편집장의 경우 좌우 배려도 아니고 그냥 해당 분야 전문가이므로 논란의 여지도 없다”며 전 이사장의 지적을 일축했다. / 허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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