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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북 20대에게도 희망은 있다

‘20대 두들기기’ 진보좌파 진영, 세대 바로 볼 생각은 있나

20대는 동네북이다. 특히 진보좌파 세력으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고 있다. 진보좌파 386세대와 포스트386세대에게 ‘88만원세대’로 명명되더니, 지난해에는 광우병 촛불집회에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숱한 비난을 받아왔다. 이후로는 아예 대놓고 막말의 연속이다. CBS ‘시사자키’의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라는 칼럼을 지난 6월 충대신문에 실으면서 몰매질이 시작됐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지난 8월 ‘기획-‘우향우’ 20대?‘를 통해 김용민씨의 ‘분노 못 느끼는 20대, ‘보수화’보다 무섭다’, 서울대 최용찬 교수의 ‘부패에 관대한 학생들...대학은 죽었다’ 등 4편의 20대 비난을 차례로 연재했다.

88만원세대론에서 진화한 ‘가망없는 20대’론

먼저 김용민씨의 두 기고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1. 대학생들은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이유는 바쁘다.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2. 20대는 10대일 때 IMF를 겪었다. 그 경험 때문에 ‘처세’와 ‘생존’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가치’보다는 ‘자신의 유불리’에 방점을 두고 사리판별을 해서 17대 총선에서 부도덕한 MB에게 표를 헌납했다. 3. 20대의 문제점은 ‘분노의 상실’이다. 자신들에게 근접한 이슈에도 직면하는 자세가 매우 소극적인 것은 ‘연대의 힘’을 맛보지 못한 탓이다. 4. 그 결과 20대는 복잡다단한 목표물 쟁취 과정보다는 굴욕적이라도 강자의 아량을 좀 더 기다리는 현실적 접근 방식에 더 익숙하다. 5. 20대는 뭘 해도 늦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상에 대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갖고 ‘연대의 힘’을 통해 벗어나야 한다.

한마디로 “희망 없는 20대의 해결법은 ‘연대’”라는 것. 김 씨는 ‘노무현 부산대 추모 콘서트’ ‘21세기전국대학생연합’의 활동 등을 예로 들며 희망을 찾고 있다.

한편 최용찬 교수는 20대가 “부정부패 분노하지 않는 젊음이 보편화되고 기를 쓰고 승자가 되려는 풍토”를 비판했다. 그 근거로 교육감 선거에서 부패한 것을 알면서도 평준화가 싫다며 공정택 후보를 지지한 학생, 서울대 총학이 두 번이나 연이어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큰 문제라 생각 안하는 현실 등을 꼽았다. 최 교수는 “촛불집회 때 중고생들은 분노하고 나오는데 20대는 드물었다. 10대들은 교과서에서 본 대로 순수한 판단에 따라 행동했지만 20대들은 사회가 힘과 돈으로 움직인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체념하고 동조했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는 20대의 ‘투표 불참현상’을 지적하며 투표 참여라는 기본적인 실천부터 시작하는 것이 급선무라 주장한다.

물론 이런 윗세대들의 질타에 진보좌파 20대들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마이뉴스 ‘기획-‘우향우’ 20대?’에서 유일한 20대 참여자인 한윤형씨는 20대에 대한 맹목적 비난을 매우 부당하고 허황된 담론이라 주장한다. 한 씨는 “386세대는 펀드와 부동산에 눈이 멀어 이명박을 찍은 자기 자신을 비판할 수 없기에 구체적인 다른 희생양을 찾는다. 20대가 바로 그들”이라며, 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이 증대된 이유를 “소위 진보․개혁 세력들은 나에게 뭘 해주겠다는 것이지 감이 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대 보수화, MB지지에 대해서 그는 “2007년 대선에서 20대 표심의 진정한 경향성은 ‘열린우리당’의 몰락‘”이라고 설명한다. 한 씨는 20대의 무관심을 질책하면서도 20대 관련 정책에는 소극적인 정당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오마이뉴스 송주민 기자는 20대를 연대의식이 부족한 이기적인 동물이라 주장하는데 발끈한다. 20대는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없는, 지나칠 정도로 ‘사회 친화적’ 인재라 항변한다. 송 기자는 “이율배반적인 기성세대의 요구에 맞서 어차피 이기적이라고 욕먹는 거, 제대로 이기적이 돼보자. 만날 눈치 보며 살 순 없다. 자신이 58년생 개띠인 것마저 맘에 든다며 ‘자뻑’하는 ‘주책바가지 한비야’처럼, 허무맹랑한 꿈이라도 꾸며 살아보자.”고 주장한다.

20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먼저 아닌가?

그러나 진보좌파 중장년층 세대와 젊은 세대가 서로 치고받으며 논쟁을 벌이는 과정은 같은 20대로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일단 중장년층 주장에 대한 방어에 급급한 인상이며, 심지어 아이들 같은 ‘반사 논리’까지 적용된 모양새다. 무엇보다 386세대로부터 전수받은 진보좌파적 세계관 내에서 MB도 욕하면서 386도 욕하려다 보니 아예 막장 주장으로 치달은 경향도 엿보인다.

여기서 진보좌파 386세대의 주장을 다시 되짚어보자. 대학생들은 ‘스펙쌓기’에 여념 없어 집회에 참석 안 한다. 그러나 그 ‘스펙’이란 사실상 ‘전문성’ 부분이다. 전문적 영역 몰두를 우습게 여기는 진보좌파 386세대는 결국 명확히 알고 있는 단 한 분야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진중권 류의 지식인을 낳았다. 20대는 ‘처세’와 ‘생존’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가치’에 방점을 두지 않게 됐다. 그런데 그 가치라는 것이 반드시 진보좌파적 가치여야 한다는 건가? 20대는 ‘연대의 힘’을 맛보지 못했다. 그래서 집단적 가치에 함몰된 좀비가 아니라 각자 개성을 지닌 세대로 거듭날 수 있었다. 20대는 현실적 접근 방식에 더 익숙하다. 그걸 ‘20대답지 않다’고 말하는 건, 추억 회고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20대는 뭘 해도 늦었다. 그런데 그 ‘무엇’은 대체 무엇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진보좌파적 이념 완성인가?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비단 20대만의 특별한 문제도 아니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저하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종식된 이후 꾸준히 모든 세대에서 이뤄져 왔다. 20대의 투표율 저하 현상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20대의 투표율은 가장 낮았다. 그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시위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면, 과연 현 시점 사회 이슈에 대해 20대가 끼어들 자리가 있는지부터 묻고 싶다. 1980년대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이후부터는 전문적 영역의 사회문제들이 닥쳐왔다. 예컨대 지난해 광우병 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단히 특화된 전문적 사안이어서, 인터넷에 떠도는 ‘광우병 괴담’ 외 전문적 정보를 습득하기란 어려웠다. 미디어법도 마찬가지였고, 비정규직법문제도 지극히 전문적인 사안이었다. 감성적인 반대를 할 수 있었지만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20대들은 나서지 않았다. 언제나 총알받이는 대학생이 돼야 한다는 진보좌파 386세대 논리는 이제 먹힐 단계가 아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가 위기에서 배운 자유․긍정․상상력이 새로운 가치를 기대해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20대들은 두 차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이들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좋은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며 정치적으로 중도와 진보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탈이념·탈정치의 성향을 뚜렷이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특히 20대위기론 등 20대가 직면한 문제점에 대해 “무엇보다 이 세대가 직면한 불확실성과 이들에게 내면화된 유동성을 다른 세대의 눈이 아니라 이 세대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과연 진보좌파 386세대, 포스트386세대는 20대의 눈으로 20대 평가를 할 생각은 있는가. 자신들 입맛에 맞춰 일방적으로 20대를 매도하고 있지 않은가. 세대를 바라볼 때에는, 그 세대의 이익을 토대로 바라봐야 하는 게 선세대의 의무다. 그 세대의 장점부터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자기 입맛대로 안 움직인다고 ‘20대 무희망론’ 같은 기획을 만들어내는 ‘짜증’을 보여주느니, 그저 입 다물고 있는 게 세대이익을 위해선 오히려 낫다. / 대학교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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