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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황금들녘, 새판으로 다시 짜야.

한반도는 쌀농사가 적합한 지역이 아니다

올해 쌀농사가 대풍이라 한다. 교외의 들녘을 바라보면 노랗게 익은 예쁜 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벼를 갈아 엎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인들은 북조선에 지원하지 않아서, 어서 지원하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도 될 수 없고 효율적인 방법도 아니다. 1년 농사를 그대로 갈아엎는 황당한 행위를 하는 것을 방조 혹 조장하는 정책이나, 동시에 지원을 하는 방법도 지원을 하는 측과 지원을 받는 측 모두에 최고의 효과가 나야하나,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은 잉여생산물을 북조선에 지원을 하는 방법을 통해 풀어야 한다고 한다. 필자는 재차 말하지만, 이러한 한반도의 낡은 폐쇄적 제3세계 공산주의 전체주의 마인드부터 깨는 것에서, 진정 해결책이 보인다는 말을 하겠다.

1. 쌀농사의 비효율성
많은 한국인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쌀농사가 친환경적이고 쌀농사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경제성장율로 표현되는 것 이상의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마땅히 고수해야 할 산업으로 여기는 점이다. 그러나 상황을 넓게 본다면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오히려 한국사회는 쌀농사를 잘못된 믿음을 고집함으로 수반되는 비용이 매우 크고 이것이야 말로 경제적 수치로 계산되기가 힘들 정도로 큰 비용을 발생시켜 왔으며 동시에 미래의 잠재적 성장을 좀먹고 오고 있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러면 쌀농사를 무리하게 고집함으로 발생되는 비용 중 가까운 것부터 다루어 보자.

첫째, 일반인의 생각과 다르게 환경이 파괴된다. 아직도 쌀 자급자족을 해야한다는 이상한 신념으로 무리하게 넓은 토지를 농지로 묶어놓고 개발하지 못하니 결국 산을 깎아 주택과 상업, 공업 지구를 만드는 실정이다. 바로 쌀농사로 인해 우리의 삶의 환경이 얼마나 추해지고 환경에 부담이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차라리 산지를 확실히 자연보존지구로 묶어놓고 밭경작 뿐만 아니라 논농사까지 막고 당연히 가건물 포함 집을 지어서도 안 되게끔 계곡과 산지, 그린벨트는 강력하고 확실히 보호하는 방식으로 가야했다.

그리고 애초에 집단 거주 지역은 평야지대에 마련함으로써 국가 교통의 중심 축을 따라 평야지대를 따라 놓이게 했었다면, 쌀농사를 평야지대에 짓느라 집들이 산으로 올라가고 계곡 타고 올라가고 그리고 계곡물 내려온다고 계곡 따라 농사짓고 밭갈고 함으로써 계곡물이 유실되며 산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계곡을 따라 집들이 듬성듬성 들어서게 되니, 소수의 농사경제 중심 촌락을 잇는 도로를 놓아야 하고, 이 도로가 노무현 정권 들어 더 심해져 이제 산중턱 사찰까지 이어진 환경 파괴의 현장, 낭비의 현장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가 계곡을 따라 형성된 농지와 그 촌락들로부터 나오는 생활하수를 처리할 하수시설을 만드는 것도 산에 계곡 계곡 마다 땅파서 하수관을 묻어야 할 판이니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었고, 또 촌락이 형성되었다고 바로 하수처리시설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계곡 모두가 환경 부담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다 갑작스런 강우량 증가나 산사태 등이 일어나면 재해를 더 심하게 입게 되고 환경 부담도 더 커진다. 그리고 농사짓느라 농약에 화학 비료 쓰는 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산지지형이 70%의 한반도라지만 남한의 계곡들은 남아나기가 힘든 것이다.

산지는 개간해선 안 되고 평야지역을 중심으로 주거지역과 골프장 등도 만들었어야 한다.
그렇게 되었으면 지금과 같이 잘못된 메시지를 받고 바꿀 생각을 안하여 1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여 만든 벼를 갈아엎어버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계곡을 타고 논을 가꾸고 밭을 일구는 행위자체도 결국 정부에서 잘못된 정책과 잘못된 메시지를 자꾸 주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파괴가 일어나고 또 자연 재해에 취약한 행위를 자꾸하는 것이다. 그리고선 거기에 또 사람의 거주지가 생기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하수 처리의 문제가 발생하고 그렇게 적은 인구가 계곡 여기저기에 듬성듬성 있으니 자연 쓸데없이 차도를 더 만들어야 하고 기름이 더 들어가며 자연재해에 취약할 뿐 만 아니라 생활하수가 계곡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이제 한반도는 산지에 토지 이용에 있어, 엄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렇게 자연 그대로 놔두고 숲을 가꾸고 농사를 짓지 말며 기존의 이미 깎여져 논밭으로 사용되던 것은 자연의 회복력에 기대를 하고 계곡을 가꾸고 또 농가들은 산 밑에 집단 마을로 내려오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생활편의 시설, 문화 시설 등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진다. 동시에 문화, 서비스 산업이 더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되는 것이다. 곧 계곡가와 산자드락의 땅을 경작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영혼을 경작하는 방향으로 되어야 한다.

바로 이 모든 것이 남한에서 적합하지 못했던 쌀농사를 고집함으로써 주택, 공업지구가 부족해 짐으로써 언덕을 깎게 되고(지난 정권 때 그 독특하게 평화로운 산천의 용인의 언덕들이 하천따라 파여진 것을 보고 충격을 먹은 바있다. 이제 더 이상 살아서는 진천땅에 살고 죽어서는 용인 땅에 묻힌다는 평화로운 산천은 더 이상 되돌리기 기대난망해진 것이다.) 계곡을 타고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제 이러한 마인드와 경제관에 의해 더 심화되어 이제 국립공원 조차 도로에 의해 종으로나 횡으로나 횡단하는 차도는 당연한 것이 된 것이다. 국립공원조차 이럴 지경이니 생태계 보호, 국제적으로 경쟁력있는 관광지로써가치가 떨어지게 된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에코투어리즘과 웰빙 여행이 커다란 이익을 낳는 것임을 상기했을 때 농업이야 말로 또한 매혈자본주의로써 내일의 돌을 오늘 뽑아다 받쳐 쓴 경우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유교중심의 농업중심의 조선이라는 고대사회의 경재 방식이 친환경적이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사실 수많은 전근대적 문명이 바로 자연환경에 부담되는 방식으로 나가다 사라져버린 케이스 또한 많기 때문이다. 조선시기만 해도 그렇다. 조선반도의 산들이 황폐하게 된 것은 19세기 연이은 기근에 의해 그렇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또 자연 그대로 존재하고 있던 간도지역에 가서 논농사를 집단으로 지음으로써 환경에 부담을 준 것 또한 조선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조선이 진즉에 백성들의 자유로운 상거래와 통상을 허하고 독려했더라면 한반도 자연이 황폐화되는 재앙은 면할 수 있었으리라.

이러한 폐쇄적 마인드는 과거로부터 자연을 파괴하며 과도한 농사를 짓게끔 했고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편승하여 더한 과잉 인구를 낳았으며, 그것에 의해 발생하는 비용에 둔감하고 오직 단기간에 떨어지는 경제적 이익에 눈이 어둡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각국에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떨어뜨리고 있을 뿐 아니라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오는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 다른 물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마땅히 부여받아야 할 기회를 저당잡히는 기회비용도 낳고 있다.

2. 국토, 자원 이용과 정치

이렇게 낡고 적합지 못한 국토와 자연환경 이용 마인드 때문에 현재 넓은 평야를 가졌고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전라북도의 인구가 산지가 대부분에 동북쪽 한켠에 위치한 강원도 보다 적은 상황에도 이르렀다. 과연 전라북도의 평야를 농사짓는 터전으로 묶어놓고 강원도 산간지역의 계곡 계곡과 산지 곳곳을 마구 헤집어 놓은 방식이 경제적이고 합리적 개발방식일까? 그래서 인지 강원도 산간 계곡과 강가에 마저 쌀농사를 지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인구가 늘었으니 산간지역에서 물 끼고 농사를 안 지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산간지역에서 더 비적합한 작물인 쌀이 재배되다 보니 2모작은 애초에 할 이유가 없고(물론 쌀이외 타작물은 수입량이 상당해서 타산이 맞지 않기에 그렇지만) 쌀농사만 짓는데, 이 쌀농사가 10월이면 서리내리기 전에 수확하고 또 다음해 5월 모 심을때까지 기다리면 장장 6개월은 보기 삭막한 토양을 들어내며 황량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계곡 옆으로 곳곳에 강옆으로 곳곳에 1년에 반이상 황량하게 존재하는 산천이 아름답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것에 둔감한 한국인의 미의식-자연에 대한, 환경에 대한-이 지금의 삭막한 주거지구와 아름답지 못한 주거지구, 별 인상적이지 못한 공원 등을 보편적으로 낳았는지 모른다.) 그리고서 전원의 아름다운 환경과 산천이 아직도 국제경쟁력이 있다는 호도는 듣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살기좋은 금수강산 산하 말 믿고 이민가지 않고 열심히 버텨준 국민에게 고마워하고 이제 그만 많이 먹었는 줄 알자.


많은 한국인들은 한반도의 지형이 아름답다고 금수강산이라 칭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었다. (이것이 과연 건전한 믿음인지 의심스럽지만..본디 아름다웠다는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제 남한의 대부분의 산과 계곡은 온전히 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많은 경우 도로로 횡단을 해 놓았고, 또 계곡 깊숙이 도로가 놓여있으며, 더한 경우는 산 중턱에 있는 절에 까지 도로로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길을 발라놓은 모습은 흔한 것이 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산의 계곡 중간까지 아파트를 지어놓아 생태계는 말할 필요도 없고 웰빙은 커녕 경관 자체를 망쳐놓은 경우는 너무 흔한 것이다. 그 건물들이라도 혹시 유럽의 성과 같이 자연환경과 어울리면 혹시 모르겠으나 국제적으로 볼 때도 둔탁하고 뒤떨어지는 외관의 건물로 자연과의 조화는 더 기대하기 힘들다.

참으로 궁금한 것이 도대체 산에다 못생긴 아파트를 지을 생각을 세상 누가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 한국에는 상당히 흔한 것이 되었다.

지금과 같이 세계의 오지를 비롯하여 잘 보존된 지역이 에코투어리즘화 된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 남한은 금수강산이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모택동을 존경한다던 노무현은, 모택동이 그 독특한 산지 지형과 자연환경을 가져 가치가 높은 귀주성 지역을 중화학 공업과 군사지역으로 만들어, 자연 파괴에 익숙한 일반 한국인의 상상으로도 상상을 초월하게 파괴하고 오염시킨 오류마저 비슷하게 불러와버리고 말았다. 지난 정권 때 얼마나 많은 산지가 사업의 목적으로 생채기가 내어지고 도로가 놓이며 발려졌는지, 그 황당함은 기존에 상상도 못하던 거였고, 현재 그 도처의 추한 모습은 상상으로 떠올리기도 싫은 정도이다. 말마따나 경기지역의 교외를 보면 도대체 생채기가 안난 산지는 찾아보기가 힘드니, 정말 자연과 무슨 크나큰 웬수가 져 원한이 가슴에 사무친 사람들이 제 철을 맞아 한풀이라도 하는 것 같이 상처를 내놓은 것이다.

산을 깎아 골프장을 많이 만들어 지탄을 받았고, 또 그 대통령은 정작 퇴임 후, 한반도 자연환경과 토지이용에 걸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쌀 유기농 농사나 지으려는 것에서도 왜 지난 정권 때 한국이 자유주의적이지 못해 세계 경제 불황 때 국민들은 더 폭등한 소비자 물가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었는지를 알듯 하다. 바로 그 마인드 때문이다. 그만큼 온갖 자원(토지, 자본)을 비효율적인 곳에 써 왔으니 그 비용은 국민이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 대통령은 치수의 중요성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문명의 힘으로 창조하여 제공하려는 진보적이고 개명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다행으로 여긴다. 지난 정권의 자연에 대한 허튼 이용마인드로 강원도 인구가 전북인구를 능가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 이때, 치수를 아는 대통령은 전북의 농지에 여기저기 산재한 농사를 위한 저수지와 호수를 택지지구와 이를 낀 아름다운 대형 공원을 만들 좋은 기회다. 국제적으로 경쟁력있게 아름다운 말이다. 새만금지구와 더불어 말이다. 거기에는 아파트가 없는 국제 교양인들이 살만한 수준의 택지지구들로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남한에 아파트가 많은 것이 인구밀도라는 것은 순 거짓말로, 전북은 군산,전주 익산의 좁은 지역에 백만 이상의 인구 빼고 나머지 넓은 평야와 동쪽 일부 산지에 70여만명의 인구밖에 살지 않는 지역이다.) 이는 한반도에 전무후무한 문명사적 전환이 될 것이다.

한국이 이러한 인프라조차도 가지지 않고 중국과 일본과 외자유치 경쟁하며 세계화의 거대한 성장동력에 물꼬를 댄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러한 인프라를 갖추는데는 평야와 새만금 특별지구를 가진 전북의 평야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국제적 기준으로 남한은 자연환경적으로 생태적으로 큰 가치가 없는 지역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그나마 남은 생태계도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니 오해없길 바란다.) 반세기 동안 때타지 않은 비무장 지대를 이야기 하지만, 동서로만 긴 횡축을 가지는 좁은 지역으로는 국제적으로 볼 때 생태환경적으로 큰 가치가 있지 못하다. 이미 호랑이든 표범이든 늑대든 한 마리도 살지 못하는 지역이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이것이 바로 산지를 묶어놓고 보존하고 자연의 에코시스템을 지키려는 마인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늘어난 인구를 지지하기 위해 자국에서 자급자족하고 외부는 의심의 눈초리와 제로섬식 낡은 마인드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북의 산들은 그나마 도로로 덜 발렸다. 산을 종단 횡단 하는 도로도 별로 없다. 그리고 해안가 가까이는 상처나지 않은 숲과 못생긴 건물로 여기저기 망쳐진 곳 없는 너른 대지를 볼 수 있다. 이를 그냥 놀리며 쌀농사나 짓는 마인드는 (필자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정권에서 바뀌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3, 지난 글에서도 지적한바 있지만 한반도는 쌀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지역이 되지 못한다.
국제적으로 보았을 때 경쟁력이 없다라는 것이다. 과거 국제 무역이 활성화되어있지 못하고 폐쇄적인 시절에야 자급자족이라도 해야 하지만 지금과 같은 지구촌 시대에는 쌀농사를 짓는데 경쟁력이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미 과학기술의 발달로 늘어난 인구의 먹거리와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부득불 바다를 메꾸어 왔고 또 산을 깎아 왔다. 이로 인한 환경파괴와 경제적 기회비용은 상당한 것이다. 쌀농사는 이렇게 자연 파괴적이고 환경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다. 국토 이용의 마인드 자체에 혁명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한 때 그래서 특히 쌀농사나 짓는다던 새만금을 포기하고 백지화 하자는 주의였으나 오히려 새만금 지역을 이왕 개발하게 되었다면 전화위복의 대 반전으로 친환경적인, 문명의 질서에 의한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웰빙 택지지구, 업무지구로의 개발을 최초로 시도하여 한반도인의 개발마인드를 혁명적으로 전환하자는 계기로 삼자는 꿈에도 못꾸었던 발상의 전환을 하며 희망적이 된다. 비록 새만금을 매립함으로 환경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기회비용을 발생시켰지만, 이를 극복하고 가장 커다란 생산을 올리는 것으로 이 비용을 메꾸는 방법은 이것이 최선인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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