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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일하는 자와 불평하는 자

스노보드 슬로프를 그대로 두자

1. 필자는 광화문 광장을 만들려는 생각이 나오기 전부터 최소한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는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온 사람이다. 어쨌건 오세훈 시장은 광화문 광장을 만들었고, 초기에 이곳에 가보았을 때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서울사람 미의식을 600년간 지배해온 인왕산 북악산 둘러싸고 있는 산맥이 하나로 쏟아져 내려오고 있는 압도적 스펙타클한 장관을 볼 수 있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압도적 미감을 창출하는 기운이 그동안 콘크리트 벽에 갇혀 숨어있다가 한번에 터져 쏟아내려오는, 마치 청계천 물길이 터져 흐르듯, 그동안 갇혀 있던 미감의 댐이 터져 흐르듯 스펙터클한 아름다움이 압도하며 내려오는 기운을 느낀 것이다. 이 거대한 기운이 영혼이 삭막한 권력자들에 의해 옭아메어진 삭막한 영혼의 한국인의 정신을 크게 물들이고, 삶의 기운을 불어넣어주길 바랬었다.

이러한 자연과 문화 유산이, 곧 이러한 서울이라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미감이라는 자원이,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존속하다가, 개발독재시대에 서울인의 심령 속에서 삶속에서 유리되고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이라는 것을 통해 서울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인, 그리고 조상의 유지인 이 전통적 재산을 다시금 회복시켜 돌려준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독재권력에 정신이 옭아메어져 영혼이 고결하게 발전하지 못한 왜소한 정신은 재보를 찾아주어도 그 가치를 모르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대인의 자연에 대한 외경심에서 나오기도 했고, 여기에 나름 문명적인 정신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선택되고 해석되며 키워진 유산을, 이를 통해 나오는 미감은 정신이 왜소하게 억압되고 영혼이 혼미한 사람들은 그 압도적 미감을 받아들일 감성도 되지 못하고, 그만큼 감각은 닫히고 어둡고 둔감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자유가 억압된 왜소한 정신은 진보를 논해봐야 한계가 명확한 것이다. 이들이 획책하는 진보는 자칫 홍위병적인 파괴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쉽다.

2. 그러다 필자가 광화문 광장에 실망하게 된 것은 생뚱맞은 인물상을 세운 것에 기인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의 수백년 동안의 권리인 산의 아름다움과 그 아래에 자리잡은 조선궁궐은 다시 세종상 등으로 막혀버린 것이었다. 진실로 인간의 천부적 권리와 아름다움을 심령에 가능케 하는 행복한 삶을 생각하는 문명적 삶, 웰빙을 아는 사람이라면 잘 만든 광장에 답답하게 커다란 인물상을 세워 놓느냐는 것이다. 이로써 덕수궁에서부터 광화문에 이르는 길의 대자연의 스펙타클과 아름다운 쏟아져 내려옴과 거기에 요소요소에 자리잡은 고상한 천상인간들의 판타지 세계인 궁궐, 그리고 그러한 꿈을 가지고 그 질서아래 한 곳에 모인 사람들이 평안하게 기처하며 어울려 사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고래로부터 내려온 재보는 또다시 훼손을 입은 것이다. 이는 조선성리학의 이성적인 면, 이념적인 면을 떠나, 인류누구나 통할 수 있는 감성적인 면이고 유산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감성세계와 정신의 주체적 자유로운 성정대로의 소요함을 통한 성장에 두려움을 느낀 독재권력의 낡은 프로그램에 의해서 불안감을 느껴서였는지, 서울시는 거대한 인물상을 세워놓음으로써, 자유로운 감성을 부리지 말고,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적인 것이나 생각하라고 압박을 주듯 던져놓은 것이다.

이러한 것이야 말로 인류의 유산의 가치도 모르는 것이며 또 진정 문화와 사상과 국적을 떠나 그저 서울에서 있는 사람을 섬기는 시정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정치성향을 떠나 기실은 비슷한 사람들이고, 또 정통의 강자인 한나라당에 대항하는 세력이 안되는 이유이다. 왜냐면 결국 박정희 하면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낡은 민족주의와 박정희식 현대화에 사실은 모두 낚인 한정된 왜소한 정신 탓인지, 이것에 대해 소위 좌파로 불리는 사람조차 아무런 비판을 하는 것도 못봤다. 좌파라면 현대와 맞지 않는 중세시대의 인물을 기리는 것조차 생뚱맞고, 이러한 민족주의의 획책은 좌파도 혐오하는 파시즘, 나치즘 등 전체주의로 가는 것인데, 사실은 이런 것이나 획책하는 수준의 제3세계 낡은 좌파 수준이하의 정신이라서 그런지 아무 말도 하는 것을 못봤다. 참고로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아프가니스탄의 불교유적이 파괴되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서울엔 또다시 상처받은 조선반도 영혼의 미적감각을 보여주는 상징, 고대인물상이 있다.

3. 최근 스노보드 슬로프와 스케이트장을 광화문 광장에 세운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사실 필자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스노우 잼 대회 이후에도 이 시설물을 없엘 것이 아니라 계속 운영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본다. 어차피 광화문이 전부 복원될 때까지 이왕 해놓은 김에 계속 운영하자는 말이다. 미감 어쩌고 할지 모르나, 달리 보면 사실 슬로프 위에서 보는 서울의 강점인 산세를 보며 스키나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야 말로 나름 서울의 자연자원을 잘 이용한 것도 되겠다. 사실 서울의 궁궐들도 현대서울에서는 공원의 개념도 빠져선 안되는데 무슨 성스러운 유적지이기만 한 듯 해놓은 데서도 탈피하고 말이다. 아마 광화문 위에서 각기 특징을 가지고 만들어진 각 궁궐들의 정원을 바라보며 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산세를 둘러보며 앞으로는 빌딩숲을 바라보며 남산 등의 낮은 구릉을 바라보면 시원하게 내려오는 것은 다시금 서울인의 전통적으로 물려받은 자원과 거기서 물려받은 미감을 쳐열어 깨울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어차피 광화문 복원이 완성되면 이도 못할 것이고 한 3월되어 날 풀리면 이도 못할 터이니 말이다.

곧 어차피 공원도 아니고, 날 추운데 광장에 갈일도 없고 세종상으로 산의 기세가 내려오다 턱 막혀버리고 광화문도 이상하게 덮어 씌워 놨으면 한시적으로 이러한 재기발랄한 적극적 시도도 해 볼만 하고 또 서울의 전통적 유산으로 내려오는 미적 감각을 다시 재조명하는 기회도 된다는 것이다. 바로 광화문 꼭대기에서 서울 오대궁궐을 다 바라본다고 생각해보자. 이러한 전통적 유산이라는 자원에 대한 인식 없이 이루어지는 서울개발은 한계가 명확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보질 못했다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 가봤으면 알겠지만 크게 봐서 꽃밭 중심이고 그리고 흉물스레 인물상을 크게 세워 놓은 것이 다음이다. 여기서 꽃밭중심이란 말은, 겨울이 긴 서울의 경우(1년의 3분의 1이 꽃밭 조성이 불가능한 계절이다.) 그러면 덩그러니 흙을 들어내놓고 일년의 3분의 1을 지내고 있으란 말인가? 하는 것이다. 어차피 스케이트 장을 조성한다해도 돈도 12억이 채 안든다. 어차피 서울시는 봄부터 가을 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무료 공연을 서울광장 등등의 장소에서 하는 곳이다. 그러나 11월부터 4월 초까지는 거의 이것도 하지 못한다고 봐야한다. 그렇게 보았을 때 야외에서 무료공연을 하는 대신 겨울철 3달 정도로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해 못 할 일인가 싶다. 어차피 현대인은 실내 생활 위주고 추운 겨울이 오면 더욱 야외활동을 꺼리게 되어있다. 특히 사무실, 차, 집을 오고가는 사람에겐 더욱 운동부족과 야외의, 실내보다 나은 야외 겨울철의 상쾌한 공기를 호흡할 기회조차 별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날도 춥고 황량하게 변한 공원을 거닐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서울시는 사람들이 거닐만한 공원 인프라도 매우 부족하지만)

그렇기에 사무실이 밀집한 광화문광장에 스키 슬로프든지 스케이트장이든지 있으면 점심먹고 운동하고, 혹은 두뇌를 깨우고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 언제든지, 실내에만 쳐박혀있는 것이 아닌 이렇게 발상전환적이고 창조적인 곳에서 몸의 근육과 뇌의 근육을 사용하여 움직이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서울은 겨울이 춥고 길어 1년의 3분의 1은 실외활동하기 녹녹치 않은 곳이라는 것이다. 무슨 스키장이니 썰매장이니 아이스링크니 할 수 있는데, 이런 이벤트성의 것이 아닌, 인간 삶에서 일상에 허용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치 제주의 식물원을 날잡아 여행갈때나 한번 보는 정도가 아닌, 현대적 정부의 마인드는 그러한 것을 팔 뻗으면 닿을 곳에, 일상으로 만들어 준다는데 있다.

무슨 한겨레가 주장하듯 텅빈 광장이 필요하단 식의 공산주의 유행하던 시절의 정서같은 소리나, 중앙이 말하는 정체성을 세우지 못했으니, 그전까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있자는 식, 하나만 제대로 하란 식은 모두 중간 밖에 못가는 공무원식 복지부동의 마인드 다름 아닌가 싶다. 어차피 국민 마인드가 낡아 첫술 밥에 배부르겠냐 라는 말이 나올 정도밖에 못해놓는다면, 오히려 180도 발상전환을 통해 이러한 재기발랄한 시도도 한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에 의한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같은 사실을 기반한 것에서 전혀 다른 선택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과 시도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말 그대로 광화문 광장의 정체성이 너무 명확했으면 오히려 이러한 좋은 결과도 산출하는 시도가 불가능했을 수 있다. 이러한 사업의 시도는 행여 장차 건물을 지을 때도 빌딩 옥상과 옥상을 연결한 슬로프를 만드는 건축도 하여 새로운 시장 창출을 해낼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어떤 이념에 기반한 명분이 아닌, 또 그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현실적으로 인간의 다양한 감성을 기반으로 하여, 얼마나 이득이 창출되었는가로 평가하는 것이 보다 진보적이다. 그리고 정부의 행정도 이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래서 알게되고 마음이 동하여 적극적으로 동기부여가 되고, 그래서 일도 만들고, 찾아서 하는 기풍이 진작되어야 한단 말이다.

현대행정과 정치는 국민을 찾아가 그들 스스로에게 미쳐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던 감성까지 끄집어내어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아무것도 하지 말잔 식이나 가만있어도 중간은 가는데 식의 낡은 공무원적 복지부동식 마인드도 아닌 말이다. 그러하기에 욕먹더라도 일하려는 마인드가 보이는 오세훈 시장이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시대에 비추어 그들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인정하고, 반대세력들은 그 부분을 더 잘하면 되는 것이다. 무조건 무시하고 일부의 모자란 점을 끄집어내 그것으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줄곧 서울과 국토개발을 어떠한 마인드로 접근해야 하는지 <희망을 위한 경제관>을 보고 낡은 제3세계 수준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유물적 가치에 기반한 개발적 마인드를, 이제는 갈아엎길 기원하는 바이다. 이는 위에 보았듯 어느 정치성향을 가졌느냐를 초월하여 대개 공통으로 보이는 문제이다.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이 이 선상에서 그나마 탈피한 면을 보여주는 바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고구조에서 보이는 것이 바로 박정희를 뛰어넘지 못하는 원인을 보이는 것이며 그러므로 더욱 필자의 저서를 보고 모두 새로 갈아엎고 새 정신으로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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