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까지만 해도 스포츠서울, 일간스포츠, 스포츠조선 등은 50만부 이상을 찍어내며 대중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10년이 지난 2010년 굿데이, 스포츠투데이가 폐간되었고, 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에, 스포츠서울은 한 레저기업으로 인수되었다. 가판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측정 불가 수준으로 떨어졌고, 인터넷에서도 역시 수많은 인터넷연예매체들의 범람으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미디어산업적으로 스포츠신문의 추락을 분석하게 되면, 지하철 무료신문과 포털의 득세를 원인으로 꼽는다. 대중들은 스포츠신문이 없어도 아무런 불편없이 스포츠와 연예뉴스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문화사적으로 분석하게 되면 포털과 지하철무료신문 득세 이전인 2003년도에 이미 급격히 몰락한다. 바로 이효리의 ‘10minutes’ 신드롬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학계에서는 연예저널리즘을 섬세하게 분석하지 않는다. 기존의 분석틀로는 이효리의 ‘10minutes' 이전과 이후의 연예저널리즘의 변화에서 큰 차이를 찾기 어렵다. 어차피 그 이전이든 그 이후이든 선정적 기사의 남발이라는 비판적 시각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도 8월 이효리가 솔로앨범 1집을 발표한 이후의 스포츠신문의 보도태도는 상식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효리는 매일 같이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했다. 특히 당시 이효리 관련 기사는 가슴, 배꼽, 눈, 다리 등 이효리의 몸을 토막냈고 다이어트, 남자친구, 섹스, 노상방뇨 등 가십거리를 토해냈다. 심지어 “이효리, 섹스 싫어하면 거절해야”, “이효리, 고등학교 때 연애해봤다”와 같은 무의미한 발언까지 톱기사가 될 정도였다. 당시 이러한 스포츠신문의 상술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있었지만 스포츠신문의 재정적 적자가 누적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이효리의 사진이 1면에 걸리면 판매가 2배가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스포츠신문의 경영자들은 이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음반판매량은 13만장에 그친 희한한 이효리 신드롬
음악과는 별다른 관계없는 이효리의 몸 하나하나와 무의미한 사생활 기사의 양산은 음악산업의 구조마저 흔들었다. 이효리는 그해. ‘돼지바’ ‘망고주스’ 등 식음료 부문, 화장품 모델을 거쳐 롯데 영플라자, 쌍방울 트라이, SK주식회사, SK텔레콤,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 등 패션, 이동통신, 게임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수익도 대부분 광고에서 얻었다. 반면 모든 국민이 이효리의 ‘10minutes'을 알고 있었지만, 최종 음반판매량은 13만장에 그쳤다. 이효리의 핑클 시절, 핑클 1집과 2집 앨범 모두 60만장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음악 소비시장이 급변한 것이다.
물론 핑클 시절과 이효리의 솔로 앨범 시절에는 인터넷의 불법 저작물 유통이라는 또 다른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존재한다. 이효리의 앨범을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효리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시대가 2003년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댄스음악이어도 핑클 시절과 달리 이효리의 1집에 대한 음악적 분석이 전문했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효리의 1집은 애초에 음악으로 승부를 건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효리의 성공효과 탓에 채연, 아이비 등 섹스어필로 음악시장이 아닌 광고시장을 공략하는 모델이 각광을 받게 된다.
이후 이효리의 비달사순 샴푸 광고 인터넷판이 외설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가슴이 다 드러난 체크난방이나 핫팬츠도 문제지만 대화의 내용이 "만져", "미치겠어" 등 너무 선정적이란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이효리의 광고가 도를 넘어섰다며, 네티즌들의 비난이 빗발치기도 했다. 이 때는 이미 2007년도로 스포츠신문의 제한적 보도가 아니라 포털을 중심으로 무차별적 선정보도가 남발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2003년도에 스포츠신문들이 이효리 열풍에 휘말리며 언론의 길을 벗어났지만, 이런 스포츠신문사들조차도 포털의 연예뉴스와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효리의 샴푸광고가 인터넷판을 따로 만들어 더 선정적으로 꾸민 것도 포털 마케팅을 위한 전략이었다. 순간적으로 비판을 받더라도, 일단 이슈가 되면, 포털의 인기검색어에 올라가고, 이 내용을 인터넷매체가 보도하면서 점점 더 이슈를 키우는 방식이다. 이는 포털이 언론권력을 장악한 이래로, 연예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교과서식 마케팅 방법이 되었다.
연예기획사들이 연예기자들 간택하는 시대
연예언론의 권위가 완전히 추락하고, 그와 반대로 연예기획사들이 코스닥에 등록되는 등 권력화되며 연예계의 지형도 역시 완전히 바뀌었다. 몇몇 스포츠신문사들이 연예기사를 독점하는 시대에서 수많은 연예매체들이 범람하게 되니, 오히려 연예권력들이 연예언론을 좌지우지하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상당수의 인터넷 연예언론들은 연예기획사들이 보내주는 가십성 보도자료를 부지런히 베껴 포털사에 공급하고 있다. 한 스포츠지의 연예기자는 “연예기획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기자에게는 보도자료를 주지 않고, 보도자료를 보내주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하라는 투로 접근한다”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지적했다.
이에 더 나아가 몇몇 거대 기획사는 해외 출장을 갈 때 극소수의 특정 기자들만 대동하여, 전적으로 홍보 기사만을 쓰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한 연예매체 기자는 “연예인이나 연예기획사에 간택받은 기자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들의 홍보업무를 충실히 이행해주고 있는 형편”이라고 언론 세태를 비판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산업 영역이 발달하면 관련 매체도 동반 성장하는 것이 법칙이다. IT산업이 성장하면서, 전자신문, 아이뉴스24 등 IT매체가 급성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포털의 언론권력화를 감안하더라도, 연예산업의 급성장에 비해 연예매체는 급추락하는 사례는 언론계에서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다양한 매체가 창간되는 것은 시대적으로 필연적이기는 하나 2003년도 이후 단 하나의 제대로 된 연예문화 매체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IT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친포털 편집성향이 두드러지긴 하나 전자신문과 아이뉴스24 등의 IT의 매체의 경우 최소한의 산업 감시의 역할은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비대해진 연예산업에 대해 이를 객관적으로 감시하는 연예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2003년도의 이효리 열풍으로 무너진 연예저널리즘이 7년이 지난 이후 오히려 더 황폐화된 것이다.
문제는 2003년도의 스포츠신문의 몰락 때와 달리 2010년도에는 더 이상 연예저널리즘의 비판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7년 간 황폐화되면서 신변잡기성 보도가 아예 연예저널리즘의 표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독자들 그 누구도 연예저널리즘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좌파진영에서 연예저널리즘 개혁을 추진해왔던 문화연대 등의 단체들도 이에 무관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효리는 오히려 자신의 노래를 통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연예언론 자체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연예언론들은 이러한 이효리의 조롱조차 대서특필하고 있으나, 연예언론계에서 이에 대한 반성이나 성찰의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있다.
나훈아와 이효리에 일망타진 당한 연예언론
연예언론이 천덕꾸러기가 되면서 한 명의 연예인에 의해 일망타진되어버린 나훈아 사건도 다시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문제의 핵심은 나훈아 스스로 자신의 행적에 대해 연예언론의 취재에 응하지 않아, 결국 증권가와 국회의 정보보고서에 등장, 부산경찰이 내사에까지 들어간 실종사건이었다. 이때 연예언론들은 추측성 보도를 자제하고 있었고, 부산경찰이 내사에 들어가면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훈아는 “당신들의 펜대로 사람을 죽였다”는 선동으로 연예언론 전체를 쓰레기로 모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모독을 당한 연예언론은 나훈아의 처신의 문제점을 짚지 못한 채, 오히려 나훈아를 영웅으로 만드는 보도마저 쏟아내었다. 스캔들 기사 양산의 가장 중요한 책임자인 연예인과 기획사에서 언론을 조롱하는 내용의 가사를 내보내도 입 한번 열지 못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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