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보 및 독자의견
후원안내 정기구독 미디어워치샵

기타


배너

김미화와 고재열, 하루살이 혁명가들이 사는 법

좌파 셀러브리티가 사는 법

북한의 기습폭격으로 시작된 연평도 사태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분명 사안으로 봐서는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사건인데 너무 조용해 섬뜩할 정도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한데는 유명 인사들의 침묵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해병대 출신 인사 몇몇만이 주목을 받았을 뿐 지난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쏟아져 나왔던 유명인들의 주옥같은 어록에 비하면 낯설기 짝이 없다. 과연 광우병의 공포가 전쟁의 공포보다 컸던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뚜렷한 특징은 이들 대다수가 좌파적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진작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면 할리우드에선 민주당에 대한 지지발언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과거 미스 유니버스 대회 출전자들이 틀에 박힌 듯 ‘세계평화’를 운운한 것처럼 셀러브리티들의 세계에서 좌파 커밍아웃은 하나의 패션이다.

그렇다면 왜 유명 인사들은 친좌파적 발언에 집중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대중 스타들에게 진보담론은 쿨한 이미지를 전파하는 좋은 소재다. 지금처럼 ‘애국’과 같은 단어가 진부해진 세상에서 ‘인권’, ‘평화’와 같은 구호는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내는 효과적 수단이다. 더욱이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지명도가 곧 수익으로 연결된다. 대중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곧 죽음인 셀러브리티의 세계에서 가십거리로나마 기억되는 것을 마다할리 없다.

연예인들의 잦은 좌파적 선동은 장사가 되기 때문

최근에 사회적 발언으로 주목받는 친좌파 연예인들을 보면 한 결 같이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에 비해 인기가 떨어졌거나 처음부터 주목받지 못하던 2%부족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에게 친좌파 커밍아웃은 일종의 레버리지 전략이다. 다소의 리스크가 있지만 성공하면 투자 대비 큰 수익이 돌아온다.

김미화의 경우가 전형이다. 그는 1980년대 최고의 개그우먼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와 동년배 개그맨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정통 코미디 프로에서 사라진지는 오래되었다. 그 후 그가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꿈꾼다는 소문이 들려오면서 조금씩 정치적 사건 속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최근 이슈의 중심으로 복귀한 블랙리스트 발언은 레버리지 전략의 좋은 예다. 그는 블랙리스트 발언을 하던 날 자신의 남편 음반 홍보를 위해 보도자료를 돌리고 있었다. 자신의 친정집이던 거대 방송사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는 것은 위험할 법도 하지만 그가 받는 수난의 이미지만큼 반대급부가 보상으로 돌아온다. 대중적 관심이 필요한 시기에 그는 정확히 사이비 순교자의 이미지를 취했다.

김제동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2010년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서 어떤 형태로건 사회와 불화할 요소가 다분하다. 김제동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와 김대중을 꼽는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그 두 사람은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만큼이나 거리가 멀다. 지금은 비록 보수정권의 핍박을 받는 모양새를 취하며 좌파의 동정표를 얻지만 그의 줄타기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한쪽의 반감을 불러오게 된다. 행여 친박정희적 발언을 하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협량한 좌파들의 폭격이 시작 될 것이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웃기는 데는 좌도 없고, 우도 없다’는 말을 했다. 누가 아니라고 했나? 대중이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회는 김제동에게 웃기는 역할 이상을 기대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처음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등장하던 당시와 비교해 너무도 변하지 않았다. 연예계처럼 트렌드의 변화가 극심한 세계에서 그가 뒤처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강호동과 유재석은 변덕스런 대중들의 기호를 따라잡기 위해 끊임없이 변신함으로써 오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좌파의 신데렐라들

김미화나 김제동의 경우는 한때나마 자신의 재능을 입증했던 인물이기에 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의 재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좌파적 유명세만으로 먹고 사는 이들도 있다. 인터넷에서 노정렬이라는 이름을 한 번 검색해 보라. 신상정보에는 분명히 개그맨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한 번이라도 사람 웃기는 장면을 목격한 독자가 있다면 제보해 주시기 바란다. 노정렬은 희극인이라는 본질적인 재능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명문대 출신의 학력과 행정고시 합격이라는 이력으로 유명해졌다.

그에게는 유독 ‘시사개그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가 정통 희극무대에 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준이 안 맞아서일까, 아니면 능력이 안 되어서일까? 사람 웃기는 재주는 없는 그가 희한하게도 먹고 사는 재주는 있다. 최근 주목을 받은 것은 조전혁 의원에게 모욕죄로 고소당하면서 부터다. 하지만 조전혁 의원은 그를 모욕죄 대신 직무유기로 고소했어야 했다. 개그맨으로서 웃기지 못한 죄, 그것이 진짜 죄다. 그러니 풍자는 없고 거친 비난과 인신모욕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는 실제 능력보다 학벌로 과잉보상을 받는 방송가의 똥돼지에 불과하다.

이런 전략은 연예인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도 패리스 힐튼 같은 모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낸시 랭이나 에이미가 언론의 가십걸로 등장한지는 이미 오래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녀들의 정체성을 여전히 혼돈스러워 한다. 지난 광우병 시위 당시 또 한 사람의 이런 모델이 등장했다. 이여영이라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대중들은 앞서의 인물들과 동일한 의문을 갖게 된다. ‘도대체 뭐하는 여자들일까?’

한 사람의 영웅이 특별한 사회적 맥락도 없이,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와 상관없이 급조되는 경향은 유독 좌파진영에서 극심하다. 그러나 지난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질 당시 광우병 파동의 잔다르크는 졸지에 연평도처럼 집중포화를 당했다. 이여영의 동생이 한나라당 소속으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여론이 순식간에 뒤집혔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여영이나 그를 신데렐라로 만든 좌파진영이나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에는 김대중이나 노무현, 리영희처럼 한 평생을 두고 평가할 만한 진보의 어른들이 있음에도 이렇게 영웅 만들기에 조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인스턴트 혁명가들은 결국 진보진영에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뜨거운 감자가 된다.

자신의 세대를 배신하고 386세대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재열의 대가

고재열의 경우도 주목하도록 하자. 그는 외근이 잦은 기자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한 조직에 소속된 직장인이다. 그런데 그가 트위터에 쏟아 붓는 정성은 무서울 정도다. 도대체 그를 통해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왜 기자가 기사 대신에 트워터질에 목숨을 거는가? 그가 꿈꾸는 길은 정동영의 길인가, 아니면 손석희의 길인가? 자기 세대의 이익을 배신하고 386세대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대가로 어떻게 치부하는지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이주일이나 배삼룡은 살아서 크게 존경받지는 못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처럼 그들은 생전과 후에 극명하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살아서는 저질 코미디언이었지만 떠나서는 국민 희극인으로 승격됐다. 좋건 싫건 이것이 우리 국민들의 정서다. 한국인들이 산 자들을 경계하고, 돌아간 자들에게 후한 것은 고인들이야말로 진정한 평가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산 자들은 누구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들에게 바쳐지는 성급한 찬사는 그들의 인생에는 족쇄가 되고, 이 사회에는 정치적 허무주의가 된다. 일생을 두고 노력한 자들을 위해 존경의 자리는 비워놓도록 하자.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야말로 공정사회의 종착점일지도 모른다.




배너

배너

배너

미디어워치 일시후원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현대사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