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들을 KBS 막내 기자라 표현한 35기 기자들의 김인규 사장 퇴진 성명서를 읽고, 씁쓸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일단 고도의 전문직종으로 발전시켜야할 기자들이 마치 대학가 운동권 신입생들처럼 ‘막내’ 운운하며 생떼를 쓰는 듯한 표현이 들어간 것 자체가 기자로서는 결격사유이다. 기자는 60대 원로 기자든 20대 신입 기자든, 다 같이 자신의 글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할 준 지식인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서울대 막내 교수” 운운하며 성명서 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대한민국의 기자 사회가 언론 선진국과 달리, 기수제 패거리주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런 수준의 기자들이 어떻게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작성한 글의 논리 구조와 근거들 역시 대학교 1학년 정도가 아니라 고등생학생 논술시험 과제 수준이다. 가장 눈에 거슬렸던 몇 대목이다.
“겪어보지 않은 일은 모른다”는 생떼형 기자들
“정연주 전 사장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냐,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그 질문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세대입니다. 그 시간을 겪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KBS란 거대한 조직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문제의식이 그런 식으로 왜곡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습니다”
기자라면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분석과 냉정한 평가를 해야할 상황을 수도 없이 마주친다. KBS의 문제는 내부 구성원 뿐 아니라 외부에서만 보더라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정연주 사장 시절의 KBS 때 이들 기자들은 최소한 대학생 혹은 언론준비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단지 KBS 입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상황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하겠다는 말인가. 차라리 언급이나 하지 않았으면 봐줄 만 했을 것이다.
결국, 정연주 사장 시절의 KBS는 정권과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었는데, 김인규 사장이 들어와서 정권이 다시 장악했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이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보면 명확해진다.
“저희가 취재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친 것은 시민들의 경멸 어린 시선이었습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를 취재하다 욕설을 들으며 쫓겨나는가 하면,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기도 했습니다. 집회나 시위를 취재하기에 앞서 ENG 카메라에 붙은 KBS 로고를 떼어 내야 했던 참담한 상황도 겪었습니다. 의욕과 패기는 버거운 짐이었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친노무현 세력들에 박수 받지 못해 억울한가
대체 이들이 아고라 댓글러들인지 공영방송 기자들인지 수준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노대통령 분향소의 노사모들과, 집회 현장의 정치꾼들에게 욕설을 들으며 쫓겨났다면, 그 사안에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봐야하는 게 기자의 자세 아닐까. 그냥 취재 현장 다니다 정치적 선동꾼들에게 모욕을 당하면, 이를 가지고 어린애들처럼 울고불고 하며 “우리 KBS를 왜 MB정권이 장악했느냐”며 떼를 쓰면 그게 기자란 말인가. 그러니까 정연주 사장 시절에는 친노무현 세력과 정치 선동꾼들의 집회 현장에서 KBS 기자들이 박수를 받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느냐는 반론을 곧바로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그때는 우린 몰라요”라며 역시 막내들의 생떼로 넘어간다.
그러니 이들이 내세운 대안은 오직 김인규 사장의 퇴진 뿐이다. 김인규 사장 하나만 나가면 KBS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다는 것인지 스스로 자문자답해보기 바란다. 정연주 사장 시절은 모른다고 하니, 그때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30기 정도 기자들에게 물어보라. 아니면 정연주 사장 시절에 탄압받아서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KBS 인사들에게 물어보라.
미디어워치, 콘유협은 20대 예비 언론인 대상으로 매체비평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48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바로 정치적 선동과 생떼 수준의 매체비평관을 대안 제시형 생산적 매체비평관으로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KBS 독립은 구조 개혁으로만 가능하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KBS 젊은 기자들은 KBS를 제도적으로 독립시키는 방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현실에서 즉각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바로 최근 몇몇 방송 원로들과 학자들이 주장하는 국민의회 방식 등이다. 현 체제에서는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KBS 독립은 실현될 수 없다. 구조직인 문제를 김인규 사장 한 명에게 덮어씌우지 말라는 것이다. 최소한 김인규 사장은 여러차례 걸쳐, KBS 사장 선임 방식의 개선을 주장해왔다. 김인규 사장과 바로 이런 생산적인 대화를 해보라는 것이다.
방송의회를 통한 KBS 독립안 이외에도, ‘막내 기자’ 운운하는 수준 이하의 젊은 기자들 문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유력 언론사들은 여전히 공기업 공채식으로 기수별로 신입기자를 모집한다. 이 방식으로는 검증된 기자를 채용할 수 없을뿐더러, 전문화 되어야할 기자 사회의 발전에도 심각한 해가 된다. 면접까지 포함된 4차 심사까지 마쳤을 KBS 신입기자들이 공개한 성명서 수준을 보면 이미 답이 나온 것이다.
대한민국 언론의 희망은 KBS 철밥통 생떼형 젊은 기자들이 아니다
필자는 예비 언론인 중에서 3년, 4년씩 KBS, MBC 같은 데 입사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인물들을 볼 때마다, 언론사 경영진들에 대한 분노가 치민다. 이미 2000여개가 넘는 인터넷신문사 등에서 언론활동을 해온 사람들 내에서만 선별적으로 경력자 채용을 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에서 낡은 운동권 책 몇 권 읽고, KBS와 같은 공영방송에 입사하여, 자신이 무슨 기사를 쓰고 있는지도 모른 채, 펜대를 휘두르게 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인터넷미디어협회 활동을 해보다보니, 인터넷매체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기르며 진취적으로 기자 생활을 하는 젊은 언론인들을 자주 본다. 이들과 KBS나 MBC의 동년배 기자들을 비교해보면, 짜증이 날 지경이다. 도대체 실력도 없고, 공부도 하지 않고, 아고라 댓글 수준의 기사나 쓰는 인물들은 왜 KBS와 MBC에서 온갖 조작 기사 남발하며 철밥통 신분을 유지하고, 실력과 열정을 갖춘 인터넷신문 기자들은 왜 미래를 불안해며 살아야 하는가. 대한민국 언론계야말로 인도 수준의 카스트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젊은 언론인들이라면, 이러한 매체 간의 장벽부터 허무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유력 매체의 젊은 기자들은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대안은 마련할 능력과 의지도 없이 ‘기자 정신’, ‘방송 독립’을 외치니 역겹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거부할 수 없는 법, 이 철밥통의 장벽은 분명히 무너진다. 피해자는 바로 KBS 등의 공부하지 않는 젊은 기자들이 될 거다.
대한민국의 언론은 분명히 희망이 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언론사업을 하나하나 확장해가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언론의 희망은 KBS의 철밥통 생떼형 기자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전문매체에서 자기 실력을 연마하는 청년 기자들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KBS 35기 기자들의 형편없는 성명서를 보면서 이러한 믿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바이다.
KBS 35기 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권하는 바는, 정략적 성명서 내기 전에, 미디어워치, 콘유협, 국가전략포럼 등이 주최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언론 현장 특강’ 강좌부터 들으면서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라는 것이다.
또한 현재 시점에서 KBS 젊은 기자들이 가장 부끄러워해아 할 점은 자신들이 만든 뉴스를 20대 미모의 여성 앵커가 읽어주지 않으면 보지도 않을 거라 지레짐작하여, 성차별적 앵커구조를 고집하는 KBS 구성원 전체이다. 정치적 선동에 나서기 전에, 이런 거라도 하나 바꿔보라. / 변희재
주최: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 콘텐츠유통기업협회, 실크로드CEO포럼
장소: 여의도 국회 건너 편 금산빌딩 412호
일시: 1월 둘째 주 화요일(11일)부터, 매주 화요일 1강씩 (저녁 7시30분 시작)
수강료: 10강 전체 3만 원 (수강료는 뒤풀이 비용으로 사용합니다)
신청: 변해룡 콘텐츠유통기업협회 사무국장 (02-761-0888)
취지: 예비 언론인들은 언론의 현실이나 언론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언론사에 입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입사 이후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예비 언론인에 대한 교육은 몇몇 단체가 독점, 입사 전부터 특정 정치이념을 교육받게 된다. 이에 예비 언론인들이 10년 뒤 20년 뒤 대한민국 언론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개선된 교육을 시행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강좌의 특징은 기사쓰기?편집 등 실무나 미디어 담론 등 이론이 아닌 현직 언론인들이 나서 현재 언론의 실제를 정확히 알려주는 데 있다.
1강: 대한민국 언론의 지형도와 미래-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1월11일)
2강: 방송기자의 현실- SBS 사회부 기자 (1월18일)
3강: 연예기자의 현실-김용호 스포츠월드 연예문화부장(1월25일)
4강: 기자와 독서-이한우 조선일보 출판팀장 (2월1일)
5강: 법과 언론-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대학원 교수(2월8일)
6강: 통일시대의 청년 언론인의 역할 - 김성욱 프리랜서 기자 (2월15일)
7강: 방송사 예능PD의 현실-KBS 예능PD섭외(2월22일)
8강: 기자의 윤리와 취재-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3월2일)
9강: MBC가 당면한 과제와 현실-박명규 전 MBC 아카데미 사장(3월8일)
10강: 20대와 30대를 위한 언론의 역할 - 정해윤 미디어워치 논설위원 (3월15일)
미디어경영의 실제 -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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