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뉴스=서울】김휘영의 문화칼럼 = 대한민국은 아까운 인재 한 분을 잃었다. 다른 건 몰라도 성재기 전 남성연대 대표는 대단한 열정을 가졌던 분임은 확실하다. 고인의 죽음에 대해 설이 분분하다. 1.자살 2. 미필적 고의에 의한 자살 심지어 3. 음모론에 기반한 타살설까지 나온다. 필자는 1.2.3. 모두 틀렸다고 본다. 필자가 보는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은 ‘무모한 자신감에 기반한 안전사고’다. 물론 오랫동안 남성연대를 운영하면서 겪어온 재정적인 압박과 사회적 무관심 등 한국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한국인들은 고인의 생각에 한번 쯤 귀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필자도 이 사건을 계기로 변희재, 곽현화 등과 함께 성재기 전 남성연대대표가 출연한 토론 프로를 찾아 보았다. 성대표의 생각에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남성으로서 상당부분 공감되는 부분도 있었다. 무엇보다 고인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고한 논리체계가 갖추어져 있었고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해서 '더 밝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인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다음에 자세히 논하겠다. 남성연대는 ‘책임을 짊어지고 가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도 여성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적은 예산이라도 지원해주었으면 한다. 이는 사실 남성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한국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를 올리는 일이라는 전향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한강 투신의 위험성에 대한 지식
한강 다리에서 투신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 사실 필자도 잘 모른다. 그 정도 높이에서 다이빙을 하면 죽을까? 필자는 여태까지 한강에서 투신해도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성재기 대표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성재기 대표의 메시지로 보건데 그는 한강투신으로 죽지 않으리라는 나름의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설명에 의하면 성재기 대표는 이소룡의 몸매를 갖고 있고 운동에 능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살아 돌아오리라고 장담했다. 변희재 대표도 각종 운동에 능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필자 또한 그렇다. 필자도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기 위한 근육을 축적하기 위해 하룻 밤사이에 푸쉬업 2000회를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실제로 필자 또한 한강 다리를 여러 번 지나면서 다이빙을 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던 적이 몇 번이나 된다. 물론 추호라도 자살을 목적으로 한 상상이 아니다. 그저 ‘저기서 다이빙하면 참 재미 있겠다‘ 같은 기분이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놀이 정도의 목적일 뿐이다. 필자가 이런 유혹을 느낀 건 아마도 무엇보다 필자가 대학시절 한강을 가로질러 헤엄쳐 건넌 적이 있을 정도로 수영에 매우 자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고등학생 때 바다에서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약 10리(4km) 정도의 거리를 헤엄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자신감으로 한겨울에 부산 태종대 바닷가에 뛰어들었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수영을 못해서가 아니라 ’추워서’였다. 바닷물 속에서는 못느꼈던 한기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엄습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싹한 느낌이 든다. 또 한국의 4대 강 중에서 한강, 낙동강, 섬진강을 헤엄쳐 건너가 본 적이 있다. 금강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시도해 볼 생각이다. 필자가 한강을 건너면서 걱정했던 건 물살의 쎄기나 수온이 아니었다. 그 당시 오염된 강물로 인해 피부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가능한 직선 코스로 가고 싶었지만 다른 편 강변에 도착했을 땐 출발 지점보다 한참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건넌 이후에 특별히 비누로 깨끗이 씻어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별 일 없었다.
자신감의 함정
몇 년 전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멕시코 아카폴카 해변의 높은 절벽에서 맨몸으로 다이빙 하는 사람들을 다룬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오늘 특별히 (Mexico, Diving)을 검색어로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Cliff divers, Acapulco, Mexico ; 절벽 다이버들, 아카풀코, 멕시코’란 제목으로 나온다. 이 동영상에서 보다시피 이들은 무려 35M 높이에서 다이빙하여 머리부터 물에 입수했는데도 멀쩡하다. 아마 이런 경험들이 필자 같은 사람에게 ‘위험한 자신감’을 갖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성재기 대표의 투신 후 사망 사건으로 필자가 얼마나 무모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이건 안전사고의 위험성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오는 자신감'이다. 유독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최근의 한국 사회가 각별히 신경쓰야 할 부분이다. 성재기 대표가 이 퍼포먼스에 대해 그동안 밝혀온 내용에 따르면 성대표는 이 이벤트로 자신이 안전사고의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이벤트 이후에 불고기 파티를 하겠다고 한 점과 ‘전투수영‘으로 100m를 헤엄쳐 나오겠다'고 한 점에서도 그렇다. 성재기 대표가 영남대학교 출신이라 대구 내륙이 고향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마도 필자처럼 어릴 적부터 물을 가까이 하면서 자란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오히려 물의 두려움을 잘 몰랐을 것 같다.
한국 문화 속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
다만 그냥 수영이 아니라 굳이 ’전투’수영이라는 용어를 쓴 점에서 보면 그가 자라오면서 헤엄쳐 왔을 한국 문화 속에서 강조하는 ‘강한 남성’에 대한 강박이 좀 있었지 않나 싶다. 이 점이 그 많은 이벤트 중에서 하필이면 위험한 한강다리 위에서의 투신을 선택하게 한 작은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양성평등, 남녀평등이 아니라 인간평등이란 좋은 이상을 위해서 남성 쪽의 권익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남자로 태어나 쪼잔하게' 식으로 오해받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작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성재기 전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의 의미를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100분 토론 등에서 고인이 평소에 가졌던 주장에 대한 좀 더 높은 차원의 담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과 남성에 대한 담론은 결코 대결의 장이 되어서는 안된다. 여성과 남성은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에서 대부분 핵심적인 파트너이기에 여성의 불행은 곧 남성의 불행이고 남성의 불행 또한 여성의 불행으로 전치될 수 있음을 하루빨리 인식해야 한다.
글 : 김휘영 문화평론가·행복문화발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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