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호남팔이가 한창이다. 김상곤 후보는 광주 출신임을 내세워 호남의 아들임을 자랑하고, 추미애 후보는 호남 출신 남편을 내세워 호남의 며느리를 자칭한다.

그러나 우스운 점은, 이들 모두 사실상 더민주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부산 출신 문재인을 받들어 모시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출신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서로 호남의 아들과 며느리임을 내세워 싸우는 격이다.

호남을 대변하는 정당임을 표방하고 창당한 국민의당의 처지도 비슷하다. 현재까지 이 당의 유일한 대선 후보는 부산 출신 안철수 의원이다. 안철수 의원도 호남 출신 부인을 내세워 호남의 사위를 자청한다. 그러나 현역 의원 3분의 2 이상이 호남 출신 임에도 유독 안철수 의원만이 대권주자 노릇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부산 출신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도 호남의 아들을 자청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최근 호남 각지를 돌아다니며 “호남 출신 장관을 대폭 기용하라”고 포효하는 부산 출신, 김무성 전 대표이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한나라당까지 포함, 새누리당 역사상 최초로 경선을 통해 호남 출신 당대표에 도전한 이정현 의원을 돕지 않았다. 호남 출신 장관은 되도, 호남 출신 당 대표는 안된다는 말인가.

더민주, 국민의당, 새누리당 상황을 보면, 비슷한 지역 코드가 작동한다. 모두가 호남 타령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호남 대권주자 만큼은 금칙어 수준이다. 이미 국민의당의 박지원, 새누리당의 이정현 등 호남 출신이 당대표를 석권하고 있으니, 더민주에서 김상곤만 당선되면, 여야 정당 모두를 호남 출신이 장악하는 셈이다. 박지원도 김무성도, 문재인도 집권하면 호남 총리를 앉히겠다 공언한다. 당대표, 총리, 장관 모두 호남타령, 호남타령 하는데, 대권 후보 만큼은 절대 호남 출신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격이다.

충청도의 경우 여권 쪽은 반기문, 야권 쪽은 안희정을 내세우며 충청도 대통령 만들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충청인이 충청의 큰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은 지역감정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에 95% 몰표를 호남,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에 80% 몰표를 준 TK의 표심은 상식적이고 정당한 것이다. 미국의 선거에서도 각자의 고향 혹은 주요 활동지였던, 클린턴이 아칸소주, 오바마가 일리노이주, 부시가 텍사스주에서 압승하는 것을 놓고 어느 누구도 지역감정이라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 부산 출신 문재인이 호남에서 90% 몰표를 받은 건, 도무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물론 이런 호남의 왜곡된 표심은 노무현 때부터 시작되었다. 노무현은 호남 포위전략이었던 3당 합당 당시, 호남당으로 고립된 평민당과 손을 잡은 정치 이력이 있다. 호남인들로서는 충분히 표를 던질 만한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노무현의 비서실장으로서 “노무현 정권은 부산 정권”이라고 발언했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에게 호남인들이 90% 몰표를 던졌다는 건, 도저히 정상적인 표심이라 볼 수가 없다.

여야 3당에서, 호남 당대표만 모이고, 집권 이후 호남 총리, 호남 장관 타령만 하되, 단 한 명의 호남 대권주자도 없는 것 역시, 2012년 당시 문재인에 몰표를 쏟아부은 호남인의 잘못된 선택 탓이 크다. “어차피 너희는 갈 데 없지 않느냐”는 호남 집토끼론이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를 전적으로 호남 유권자들 탓만 할 수도 없다. 지난 총선에서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에서, 정운천 전 농림수산부 장관이 전북 전주에서 새누리당 간판으로 당선되었다. 청와대 수석과 장관 출신 등 큰 인물이 나서니, 호남인들은 소속 정당의 선호도와 관계없이 표를 준 것이다. 그리고 이정현 의원은 이런 호남의 표심을 등에 업고 “대선에서 호남 20%의 표를 얻겠다”는 공약으로, 영남 기반 정당 새누리당의 당대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김경재 현 자유총연맹 총재, 한광옥 현 국민대통령합위 위원장 등 호남과 동교동의 거물 정치인들을 영입하고서야, 여당 최초로 호남에서 두자리수인 10%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호남은 인구수로 보나 응집력으로 보나, 영남권과 함께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 양대 산맥이다. 더구나 최근 TK와 PK 표심이 분리되는 현상이 두드러진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영남권을 앞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호남의 표심은 수도권 등에서도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호남이 김대중 이후, 유력 대권주자의 씨가 말라버리고, 여야 합쳐 대권 후보조차 없는 건, 기현상 중의 기현상이다.

부산 친노들로부터 독립하겠다는 호남향우회의 결단이 국민의당 창당 성공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그래봐야 결국 부산 출신 안철수 하나에 호남 전체가 기대야 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호남 출신들은 약 1년 5개월 남은 대선 기간 동안, 왜 호남 출신이 대권후보 금칙어가 되었는지 원흉부터 분석하기 바란다. 그게 당면한 가장 시급한 정치개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