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마틴 교수는 아래 논문을 통해서 실제로 과학계에서는 크고 작은 연구부정행위가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일부 과학자만의 연구부정행위가 어떤 권력투쟁상의 문제 때문에 발각되고 이후 언론 등을 통해 그 일부 과학자만이 연구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식의 오도(誤導)가 난무하는 현실을 짚고 있다.
한국에서도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조명행 박사 가습기살균제 보고서 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실은 황 박사, 조 박사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연구부정행위를 저질러온 여타 과학자들의 ‘위선의 향연’ 문제는 이전부터 연구진실성검증센터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다. 연구진실성검증센터는 앞으로 브라이언 마틴 교수의 이 분야 논문들도 지속 번역소개할 계획이다.
아래 논문은 1992년도에 ‘혁신(innovation)’ 분야를 다루는 학술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 게재됐다(Vol. 10, No. 1, June 1992, pp. 83-98.) 아래에서 일부 소제목과 사진, 캡션은 연구진실성검증센터가 덧붙인 것이다.
과학에서의 사기 문제와 과학의 권력구조
(Scientific fraud and the power structure of science)
요약(abstract) :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많은 종류의 ‘오도(誤導, misrepresentation)’와 ‘편향(偏向, bias)’ 문제가 빚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직 좁게 정의된 소수의 연구부정행위만이 비난을 받고 이에 ‘과학에서의 사기(scientific fraud)’로 분류된다. 이처럼 ‘과학에서의 사기’ 개념을 좁게 정의내리는 일은, 과학계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항들의 우선순위를 결정함에 있어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특정한 사회집단들 — 즉, 과학 엘리트들, 강력한 정부, 기업들 — 에게 유리한 일이다. 호주에서의 몇 가지 중요한 사례들은, ‘과학에서의 사기’가 언론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일조차도 어떻게 나머지 과학계는 마치 결백한 것처럼 눈속임하게 만드는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키워드(keywords) : 과학에서의 사기(scientific fraud), 편향(bias), 오도(misrepresentation)
감사의 말(acknowledgements) : 초안을 검토해준데 대해 랜달 콜린스(Randall Collins), 클라이드 맨웰(Clyde Manwell), 데이비드 머레이(David Murray), 테리 스톡스(Terry Stokes), 피터 투헤이(Peter Toohey) 및 2명의 익명 심사위원들(referees)에게 감사드린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 ‘과학에서의 사기(scientific fraud)’라는 것이 뭐냐고 질문하면 그들은 선뜻 대답해 줄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사기는 바로 명백하게 연구데이터를 날조하고 실험 결과를 조작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표절 문제도 있다. 즉, 다른 사람의 문장표현이나 연구데이터를 적절한 인용처리 없이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부정행위 중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상에 있는 종류의 문제들은 뭐라고 규정하기가 어렵다. 연구데이터를 약간씩 변조하는 것, 긍정적인 결과만 보고하는 것, 인정해줘야 할 다른 사람의 공헌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뭇 사람들은 과학 분야에서 아주 명백한 사기행위가 드물다고 생각하며 그런 사기행위는 이를 극도로 심각한 일탈 문제라 여기기 때문에, 그에 맞는 무거운 처벌 조치가 따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어쨌든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과학에서의 사기’에 대한 일반적인 그림이다. 하지만 과학계로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본다면 그런 사기 행위가 생각보다 윤곽이 뚜렷하지도 않고, 또 드물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계에서는 아이디어에 대한 ‘공헌(credit)’을 훔치는 일로 인해 논란이 많이 벌어진다. 박사과정을 지도하는 교수가 대학원생이 쓴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고, 최고 명성을 가진 과학자가 자신과 경쟁자 관계에 있는 학자의 논문을 심사하다가 자신이 그 아이디어에 대한 공헌을 혼자 인정받기 위해 논문 발표를 지연시킨 경우도 있다. 그런 식으로 심지어 노벨상을 훔친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기만행위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사연들이 있다.
실제로 과학의 세계는 복잡한 비즈니스다. 정밀한 장비들은 물론이거니와, 지속적으로 장비, 규약, 절차상의 세부사항을 바꿔야 한다. 과학계에서는 모든 다양한 종류의 측정이 이뤄지는데, 보관되는 것보다 폐기되는 잠재적 연구데이터가 더 많다. 방정식이 하나 나오기 위해서 수십 장의 이론적 계산들이 폐기된다. 불충분하게 기록된 데이터시트들과 컴퓨터 출력물들도 산더미처럼 쌓인다.
과학 논문들이 준비되는 책상 옆에는 각종 서적, 학술지, 견본인쇄판, 서신 및 노트들이 쌓여 있다. 과학자들의 머릿속에는 구상중인 다양한 아이디어들, 오랫동안 간직해온 소망들, 편견들, 읽은 논문들에 대한 희미한 기억들, 참석한 세미나, 동료들과의 대화 및 공동연구자들과의 회의 내용 등으로 가득하다.
과학 연구 환경이 이렇게 혼란스럽기 때문에 누군가 ‘사기’를 친다 해도 빨간불이 들어오기가 어렵다. 제대로 된 과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자신들의 작업에 외관상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과학자들에게 있어 사실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한 외관상의 질서 내에서 더구나 ‘사기’라 불리는, 연구에서의 규정 위반에 대한 확고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달리 설명하자면, 과학자들은 그들의 많은 활동들 중 오직 일부에만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것을 ‘과학을 하는 것(doing science)’ 또는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applying the scientific method)’이라고 부른다.[1] 이는 ‘사기’에 관한 사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학에서의 사기’는 바로 과학자들이 사기라고 지칭할 때만이 사기가 된다.
허나 이는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왜 어떤 행위는 사기라고 하고 어떤 것은 아니라고 하는가? 필자가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은, 사회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사기’ 행위의 정의(定義) 그 자체가 바로 과학과 연관된 권력집단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집단들에는 정부기관도 있고, 과학 연구에 돈을 대는 기업들도 있으며, 과학계 집단, 특히 그에 속한 과학 엘리트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필자의 주장은 이런 식으로 더 나아간다. 의혹을 받을 만한 수많은 일들이 과학 연구 내에서 일어난다. 이들 중 어떤 일부는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지는 반면, 어떤 일부는 단순히 용인되고, 또 어떤 일부는 아예 용납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
왜?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여기서는 일단 과학의 권력구조 문제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즉, 과학에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터무니없이 많은 혜택을 챙겨가는 이해집단들에 초점을 맞춰볼 것이다. 그 후에 이 분석을 호주에서의 몇가지 사례들에 적용시켜 볼 것이다.
과학에서 잠재적으로 의심스러운 행위들 POTENTIALLY DUBIOUS PRACTICES IN SCIENCE
과학 분야에서는 ‘잠재적으로 의심스럽다(potentially dubious)’라고 불리는 활동들이 많다. ‘잠재적으로 의심스럽다’는 말의 의미는, 만일 충분한 명수(名數)의 과학자들이 모여서 그렇게 주장한다면, 비윤리적이거나 비난받을 만한다고 규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잠재적으로 의심스러운’ 문제들은 대개 ‘오도(誤導, misrepresentation)’와 ‘편향(偏向, bias)’ 두 부류로 나뉜다.
‘사기’의 사전적 의미는 기만, 속임수, 또는 진실 왜곡이다. 따라서 진실이 왜곡되는 ‘오도’와 ‘편향’도 일종의 사기라고 규정될 수 있지만, 이런 ‘오도’와 ‘편향’까지 ‘과학에서의 사기‘로 분류해 논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부 학자들은 과학에서의 ‘오도’와 ‘편향‘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뭇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해왔다.[2]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도‘와 ’편향‘은 그냥 용인되거나,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잠재적으로 의심스러운 몇 가지 행위들을 묘사하고 그 중 몇 가지에 대해서는 사례도 들 것이다. 각 사례들에 있어 굳이 ’심각성 정도(seriousness)‘에 따라서 순위를 매기고 싶지는 않다. ‘심각성 정도’에 대한 판별이 어떤 절대적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들의 결과라는 것이 곧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호주의 명예훼손법 문제 때문에 현 시대의 사례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실을 다 밝힐 수는 없다.[3] 필자는 관련자들의 신원을 가리기 위해서 종종 실명은 밝히지 않을 것이며, 사안과 관련해 일부 사실도 수정해서 기재할 것이다.
(
편집자주 : 호주는 형사상 명예훼손법이 없고 민사상 명예훼손법만 있다. 단 호주는 영국법 체계를 따라서 명예훼손과 관련 입증 책임을 원고가 아닌 피고에게 두고 있어 소송을 당했을 경우 피고는 기본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해진다. 영국은 최근에야 이런 입증 책임의 문제를 개정한 바 있다. 관련 사연은 미디어워치가 공개한 자료인
'사이비의료와 소송전을 벌인 '사이먼 싱(Simon Singh)'을 참조하라.)
오도(誤導, misrepresentation)
과학 연구와 관련하여 가장 흔한 오도 중 하나는 바로 과학 논문 그 자체에서 일어난다.[4] 과학 논문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신화적으로 재가공한다.
연구 과정에서 잘못된 아이디어, 잘못 설계된 실험 및 틀린 계산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었음에도 발표 논문의 내용에서는 이것들이 모두 생략된다. 연구 전체가 가설검정처럼 정돈되고 엄정한 절차들에 따라 신중하게 기획되고 이뤄진 것처럼 포장된다.
이와 같은 과학 논문에서의 ‘오도’는, 과학연구가 마치 명확하게 정의된 방법에 기반하여 정돈된 과정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오도’의 형식적인 측면을 가장 명확히 보여준다.[5]
일반적인 과학 논문에 내재하고 있는 이런 ‘오도’의 측면은 과학계에서 용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 피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학술지 편집인들도 연구 프로젝트가 실제로 정확히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사실주의적인’ 논문을 채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DNA 구조를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한 서적인 제임스 왓슨(James D. Watson)의 ‘이중나선(The Double Helix)’이 보여줬던 충격은, 바로 왓슨이 이전에 발표했던 건조한 과학 논문과는 눈에 띄는 대조에서 기인한 것이다. 왓슨과 크릭은 1953년에 ‘네이처(Nature)‘지에 그들의 발견에 대한 논문을 게재했는데, 그 논문은 과학연구가 이뤄지는 실제로 관행에 대해서는 분명 ’오도‘를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발견에 대해서 설명하는 적절한 방식으로 간주됐다.
또 다른 종류의 ‘오도’는 과학 논문에서 인용된 문헌 목록에서 볼 수 있다. 논문에서 다른 문헌들을 인용하는 일에는 여러 목적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의 연구의 기반이 되었던 선행 연구에 대해서 ‘공헌(credit)’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용이 이런 용도로 쓰이고 있지 않다.
다른 문헌을 인용하는 이유는 해당 문헌들을 실제로 읽어서도 아니고, 해당 문헌들로부터 연구에 도움을 받아서도 아니다 -- DNA발견에 기여했던 생화학자인 어윈 샤가프(Erwin Chargaff)는 과학 논문에서의 참고문헌 목록들을 “한 논문에서 다음 논문으로 통째로 옮겨지는 덩어리”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6] 다만, 긴 참고문헌 목록이 논문 심사위원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남기거나, 자신의 논문을 더 좋게 포장해서 경쟁자와 숙적들을 폄하하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편, 보통은 아예 인용이 되지 않는 출처들도 있다. 이는 그 출처 종류 자체가 인용문헌으로서의 적절한 ‘지위’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연구비 지원 신청서, 개인적 대화, 서신교환, 신문기사 및 기타 ‘비학술적’ 출판물 등이 있다. 이런 출처들은 연구에 핵심적으로 공헌했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인용처리가 이뤄지지 않는다.[7] 일부 학술지들이 요구하는 인용처리 형식은 아예 그런 출처 종류를 인용하는 것을 시스템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과학 연구에 있어 또 한 가지 잠재적으로 의심스러운 행위는 ‘지적 착취(intellectual exploitation)’라고 불린다. 이는 연구자가 공동연구에 있어서 타인이 기여한 바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한 학자의 아내가 특정 연구와 관련하여 정기적으로 샘플들을 모았다거나, 논문의 초안을 작성했거나, 또 관계된 문헌을 읽고 참고문헌을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의 공동저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다.
학자들의 아내들 뿐 아니라, 이런 경우의 일반적인 피해자들은 바로 대학원생들과 연구조교들이다. 과학 분야의 많은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의 지도교수가 연구 프로젝트에 기여를 아주 조금 기여했거나 전혀 기여하지 않았어도 논문의 공동저자로 기재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이것도 또 하나의 ‘오도’ 사례다. 비공식적인 증언들에 의하면 이런 관행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 보다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시비가 공식적으로 문서화되는 경우는 드물다.[8]
학적 착취는 그저 흔할 뿐만이 아니라 많은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요청되기도 한다. 과학 논문들에서 타이피스트, 비서, 도서관 사서, 실험실 조교 등, ‘진짜 과학’에는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여겨진다(일반 서적에서는 이들이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논문 저자와 동등한 위치에 있거나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후한 ‘감사의 말’을 기대한다. 학과장들이나 연구소장들은, 실제로 자신들이 그 연구에 기여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자기 밑에서 생산된 모든 논문에는 자신들의 이름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9] 일부는 연구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한 연구자금을 유치하자는 차원에서 그런 공동저자 자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연구 활동에 있어 또 다른 일반적인 ‘오도’는 연구의 퀄리티와 진전, 그리고 사회적 중요성을 과장함으로 인해서 일어난다. 이것은 성공적인 과학자의 경력을 가지기 위해 거의 필수적이다. 겸손하고 솔직한 내용의 연구비 지원 신청서가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연구비를 지원받으려면 지원자는 자신의 과거 연구의 퀄리티는 물론, 그 중요성에 대해 과장을 해야 한다. 또 연구비를 지원받는다면 미래에 그 결과가 얼마나 대단할지에 대해 아주 비현실적인 분석도 보여줘야 한다. 이런 것이 아니라면, 이미 종결된 연구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요청하는 일도 만연하다. 대부분의 연구비 지원 신청서들은 편리한 허구일 뿐이다.
일반 대중을 위한 연례보고서나 언론기고문 등도 같은 상황이다. ‘돌파구’를 찾았다는 식의 연구들이 흘러넘친다. ‘암 치유법’과 관련된 연구는 생명과학 전반(全般)을 뒤덮는다. 연구의 질적 수준이 정직하게 평가되는 일은 없다(썩 좋지 않은 수준의 연구에 대해서도 보고하는 연례보고서를 읽어본 적 있었던가?).
연구비 지원 신청서, 연례보고서 및 언론기고문에서 나타나는 정직성이란, 신문 광고나 TV 광고에서 나타나는 정직성과 같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과학에 대한 ‘오도(misrepresentation)’ 또는 ‘설명(representation)’이란, 사실은 마케팅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오도’는 학자의 공식적인 경력을 소개하는 이력서에서도 만연하다. ‘창의적인 이력서 쓰기’는 이제 하나의 예술이 됐다: 사소한 공적들을 과대포장하고, 수행했던 학교행정업무들도 과장하며, 공동연구에서도 자신의 큰 공헌을 주장한다. 또한 가능한 한 모든 발표문들을 나열한다(아마 이중게재된 컨퍼런스 논문이나, 아직 승인받지 못했거나 정식으로 발표하지도 않은 ‘언론 보도용’ 논문도 여기에 다 포함시킬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실패 사례들은 이력서에서 빠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전반적으로 관행화되어 있어서, 받지도 않는 학위나 발표하지도 않은 논문을 이력서에 기재하는 정도는 되어야 본격적으로 ‘오도’를 의심받게 된다.
여기서 ‘조잡한 과학(shoddy science)’ 또는 ‘허술한 학문(sloppy scholarship)’은 이상적인 가설적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연구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조잡한 과학’에는 조악한 실험 디자인, 실수투성이 통계, 미완성 데이터시트, 잘못 검증된 가설, 기존 연구작업물에 대한 부정확한 언급, 수정되지 않은 컴퓨터 프로그램상의 사소한 실수,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대안적 가설, 논문의 핵심이 반영되지 않는 결론 등이 포함된다. ‘조잡한 과학’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10]
수많은 ‘조잡한 과학’ 논문들이 과학 학술지에 실리는데, 게재되지 못하고 거부되는 ‘조잡한 과학‘ 논문들은 더더욱 많다. 하지만, 이렇게 종종 있는 학술지의 게재 거부만이 형편없는 연구에 대한 유일한 제재 조치이다. 오히려 엉터리 논문들을 많이 생산한 대가로 승진과 같은 보상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조잡한 과학’과 소위 ‘과학에서의 사기’의 경계는 흐릿하다. 어떤 과학자도 연구실험노트상의 모든 원본 데이터를 발표하지는 않는다.
논문 발표 이전에 원시(原始) 데이터의 질적 수준이 평가되어야하며(모순된 데이터는 실험 실수로 취급해서 버린다), 그 후 적합한 방법으로 데이터를 프로세스해야 하고(이론적으로 변환하고, 매끄럽게 만들며 재편성한다), 그런 연후에 논문 발표 전에 데이터를 또 걸러내야 한다(일부 데이터만 선택적으로 발표된다).
이런 일들을 적절하게 처리했을 때에야, 그것은 표준적인 절차를 밟은 연구라고 칭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을 때(적절한 처리인지 여부는 개개인들의 평가에 따라 다르다), 그 연구는 ‘조리(cooking)’, ‘조율(fiddling)’, ‘손질(trimming)’, ‘변조(fudging)’, 또는 심지어 ‘날조(forging)’를 한 연구라고 불리게 된다.
여러 근거에 따르면 과학계에서 데이터를 부적절하게 다루는 일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비일비재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저명한 과학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분명히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졸업 후에 과학계에서 저명한 학자가 된 내 대학원생들 중에서 데이터 변조 문제에 확실하게 연루된 사람을 한 명 이상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 학부생들 중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서 다른 대학으로 간 몇 명은, 교수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데이터 변조에 이르는 부정행위들을 관찰하고(실험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해질 때까지 실험을 10번 반복하고서는 실패 사례들은 빼고 성공적인 하나의 실험 결과만을 발표한 것 등), 이에 대해 보고한 바도 있다.
나는 생물학계 및 심리학계에서 일하는 과학자들 중 재연될 수 없는 연구결과를 내고, 원본 데이터의 접근할 기회를 봉쇄하고, 기간 내에 실험을 마치는 것이 명백히 불가능한데도,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척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러 명 알고 있다. 그들의 가까운 동료들은 진실을 알고 있지만 대학 측에서는 그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사기꾼 같은 교직원들을 고용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학교 이미지에 나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사례에 따르면 연구조교가 얻은 수치들을 어느 교수가 변조를 하다가 적발됐다. 대학 측에서 취한 조치는 고작 해당 교수를 견책하고, 그 교수가 그 대학에 남아있는 한 더 이상 연구비를 지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통보를 한 것 뿐이었다. 현재 그 교수는 다른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다. 명예훼손법 문제로 인해 내가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11]
수학자이며 몽펠리에 대학교(Montpelier University) 교수인 알렉산더 그로텐디크(Alexandre Grothendiek)은 서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며 크라포르드(Crafoord) 상 수상을 거절했다.
“...지난 20년간 동안, 과학인들의 (적어도 수학자들의 경우) 도덕성이 너무나 타락해서, 단순하고 명백한 학적 강탈 행위도 거의 규범화 되었고, 가장 노골적이고 부당한 행위들조차 묵인되고 있다.”[12]
그로텐디크가 지적한 실상이 과학계에서 완전히 일반화되어 있는 행태는 아니지만, 문제시될만한 일들이 묵인되고 있는 사례가 많은 것만은 분명하다. 광범위하게 공론화된 사례들조차 빙산의 일각이라고 볼 수 있다.[13]
(편집자주 : 크라포르드(Crafoord, 또는 크래포드) 상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노벨상이 없는 과학 전공 분야인 진화생물학과 생태학, 천문학, 수학 등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크라포르드 상은 대중적으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과학계에서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권위가 있는 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크라포르드 상은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 조지 C. 윌리엄스(George C. Williams), 로버트 트라이버스(Robert Trivers)와 같은 저명한 진화생물학자들을 수상자로 두고 있으며, 역시 저명한 과학자들인 천문학의 마틴 리스(Martin Rees), 수학의 에드워드 위튼(Edward Witten)도 수상을 한 바 있다. 여기서 위튼은 물리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학적으로는 수학(위상수학) 발전에 더 근본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학자다.)
대중의 믿음과는 다르게, 데이터 조작과 관련된 거개의 연구부정행위는 적발해내는 일부터가 쉽지 않다. 한 도발적인 평가에 따르면, 과학은 ‘범인(凡人)들에 의한 과두제(oligarchy of mediocrity)’로 돌아가고 있다:[14] 실력 없는 연구자들이 겉멋만 살린 무의미한 연구를 하는 혼란 속에서는 부정행위들이 적발되지 않고 빠져 나가기 쉽다.
편향(bias)
묵인되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부조리는 바로 강력한 이해관계에 따른 ‘편향’된 관점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기업 또는 정부 기관에서 일하거나 그들로부터 연구자금을 받기 때문에, 이런 기관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결과만을 창출해내야 한다는 것은 당연시된다.
화학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농약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농약의 위험 또는 한계에 대해서는 좀처럼 주의를 상기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농약 사용이 적절한 일이라고 전제되고 있는 틀 내에서 자신들의 연구를 진행한다. 핵무기 개발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좁은 연구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 자동차회사에 고용된 엔지니어들은 자동차의 안전 문제나 자동차의 대체품에 대한 연구는 제안하지 않는다.[15]
거개 과학자들의 관점은 편향되었다기보다는, 제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강력한 후원자들이 짜놓은 좁은 맥락에서 연구를 하고자 한다. 편향은 과학자의 어떤 고의적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 연구의 맥락으로부터 온다.
여하튼 이런 종류의 편향은 일반적으로 통용되거나 최악의 경우 묵인된다. 담배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서 담배가 건강에 미칠 영향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비난은 받을지언정, 부정행위 혐의로 과학계에서 추방당하지는 않는다.
과학계의 구조에 내재한 ‘편향’의 다른 측면은 바로 ‘저항적 소수파에 대한 탄압(suppression of dissent)’이다. 지배적 이해관계(농약, 원자력 발전 또는 자동차 설계)에 반기를 든 일부 과학자들은 심각한 공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평판은 더렵혀지고 강등되며 좌천된다. 논문 발표의 길이 막히고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해임되기도 한다.[16]
모든 과학 연구에는 어차피 편향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편향을 과연 문제로 봐야하는지 여부는 그 편향이 과연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다. 강력한 이해관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편향은 그냥 관행으로 취급되거나 묵인된다. 반면에 강력한 이해관계를 위협하는 편향은 분노의 공격을 받게 된다.
과학에서의 사기 혐의 문제를 넓은 관점에서 제대로 보려면, 소위 과학이라는 것이 수많은 잠재적으로 의심스러운 행위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그 중 다수는 그저 관례로 여겨지는 반면 그 외의 많은 경우는 광범위하게 묵인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면, 과학이 봉사하는 지배적 이해관계들에 대해서 살펴봐야 한다.
과학의 권력 구조 THE POWER STRUCTURE OF SCIENCE
오늘날의 과학은 대규모의 산업으로,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고 많은 통제를 받는다. 이 거대한 산업에서 핵심적 존재는 과학에 투입되는 자금을 담당하는 정부와 대기업들, 그리고 전문 과학자 집단, 특히 과학 엘리트들이다.
예를 들어보자. 신약을 검증하고 생산하는데 수많은 과학 연구가 행해진다. 왜냐하면 우선적으로 이것은 제약회사들의 직접적인 자금 지원으로 인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약회사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지 않은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조차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이 ‘중요한 과학적 문제’라고 여기는 것들이 제약회사들의 우선순위에 의해 영향을 받아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역학(epidemiology) 및 뇌화학(brain chemistry)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심을 증가시킨다. 물론 제약산업은 잠재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 일부 ‘순수 연구(pure research)’를 후원하기도 한다. 뭔가 유용한 것이 나오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약회사들 입장에서 도움이 안 되는 일부 연구분야들은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다른 분야의 연구에도 같은 과정이 적용된다. 압도적인 영향은 정부와 대기업들로부터 받지만, 다른 곳으로부터도 약간의 영향을 받는다.[17]
과학 연구에서의 준-관료적(semi-bureaucratic)인 조직 역시 과학의 목표를 다져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의 과학자들과 관료들이 연구와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다: 여기에는 연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중단하는 것에서부터, 주요 인사 임명, 학술지 편집, 연구비 분배, 표창장 수여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그룹은 정치적 과학 엘리트라고 불릴 수 있다.[18]
과학 엘리트들은 과학 내의 우선순위 문제에 대한 압도적인 영향력을 누린다. 그들은 대부분의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정부 및 기업의 관련 엘리트들과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한다. 이들과 일반적으로 같은 기본적 관심을 공유하는 한편, 과학 엘리트들은 또한 과학 분야의 자율성, 자치성 유지에 대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과학계가 그저 외부 권력의 하인이 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한다. 그들은 정부 및 기업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일반적인 영향권 내에서 과학자들이 나름의 자율성, 자치성을 유지하기를 바란다.[19]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이뤄지는 이 총체적인 권력 시스템 내에서, 과학적 행위의 기준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협상이 이뤄진다. 이 기준들은 교과서나 굉장한 권위로부터 도출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사회-정치적 맥락 내에서 과학 연구의 현실에 적응하면서 도출된다.
만연한 ‘오도’와 ‘편향’ 중에서 몇몇은 과학 조직들 내의 위계질서로 인한 자연적 결과물이다. 여기엔 인용처리에서의 오도, 연구비 지원 신청서 작성을 엉터리로 하는 일,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는 일, 부하직원들을 착취하는 일 등이 포함된다. 위계질서 내에서 상층에 있는 이들 중 다수가 자신이 기여한 바에 비해 과도히 많은 공헌을 챙김으로써 그 자리에 앉는다. 어느 정도 높은 자리에 일단 위치하게 되면 그 지위의 힘을 이용해서 이런 일들을 계속 하기가 쉬워진다.
이와 같은 일들이 왜 거의 규범으로까지 자리 잡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연구공동체에서 권력이 있는 일원들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주된 저항의 목소리는, 어떤 손해를 보고 있거나 다른 방식으로 경쟁을 벌여보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비판은 대체로 영향력이 없다. 이들조차 때때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문제시 되는 행위들은 수그러들지 않고 지속된다.
‘허술한 학문(sloppy scholarship)’과 ‘미미한 속임수(minor cheating)’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다뤄진다. 여기서 권력관계를 이해하려면, 두 종류의 과학 소비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은 정부나 기업 등의 이해집단들이 있고, 다음은 다른 과학자들이 있다. 데이터에 대한 손질 및 조리는 이 양쪽의 소비자들 모두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제품(연구)의 쓸모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미미한 속임수(minor cheating)’는 이름 그대로, 누구에게도 들고 일어날 정도의 심각한 피해는 주지는 않는 속임수다. 역시 중언부언으로서의 명명(命名)이지만, ‘대규모 사기(major fraud)’는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행동에 나설 정도가 되도록 만든다는 종류의 그런 사기다.
과학 연구에서 빚어지는 속임수를 가장 잘 파악하는 이들은 거의 항상 다른 과학자들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충돌하는 압력이 있다. 일부 동료들은 그들이 믿는 과학적 이상이 더렵혀지는 것을 저어하거나, 또는 동료가 조잡한 속임수를 근거로 자기보다 잘나가는 것을 막고 싶어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과학에서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개인적 분쟁을 겪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관과 학교의 당국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사건을 키우는 것을 꺼린다. 그것이 자기 기관의 사회적 평판을 해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과학은 다른 많은 직종들과 거의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건축업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건축업자들은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며 자신들의 직업에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일부는 인센티브에 따라서 ‘지름길(편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런 지름길이 프로젝트 전체를 위태롭게 하거나 다른 건축업자들을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는 한, 그저 규범적인 관행으로 생각되든지 그냥 묵인될 수 있다.
다른 건축업자들에게 심히 불편을 끼치거나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작업을 엉터리로 한다면 그는 추후에 일감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더 나아가, 만약 작업의 결과가 너무나 나빠서 소비자들이 이를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라면, 이는 다른 분야 기능공들의 작업마저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엉터리 작업이나 부패에 대해서 큰 소리 내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위반자들 -- 다른 기능공들에게도 잘 알려진 -- 을 조용히 밀어내고, 미미한 속임수는 용인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과학도 기본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돌아간다. 내부관객들과 외부관객들이 있다. 조잡한 과학 연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선호되는 방법은, 아주 심각한 위반자들은 조용히 처리해버리고, 만연한 작은 속임수들은 그냥 묵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부정행위자들로 인해 과학 분야가 공공적인 오명을 쓰지는 않는다.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부정행위에 대해 내부고발을 한 이들은 업계 전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취급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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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강력한 이해집단들과 연관된, 편향된 관점에 대한 범주가 남았다. 예컨대, 화학회사들에게 유리한 관점을 가진 농약 연구자들이 있다. 이들은 과학의 권력구조를 위협하기 보다는 권력구조에 봉사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직 다른 과학자들이 다른 관점을 주장할 때만 문제라고 인식된다.
제약회사 사례로 돌아가 보자. 제약산업에 직접적으로 또는 잠재적으로 쓸모가 있는 연구를 수상쩍은 연구라고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는 드물다(다만 소비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판이 있을 때에도 원론적인 비판 이상은 거의 없다. DNA 재조합 연구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거부는 예외적으로 부각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대안적 구상을 유지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도, 대안적 자금도 없다. 따라서 권력이 얽힌 이해관계를 돕는 과학은 용인되는 것이다.
과학에서의 권력 작동에 대해서 지금까지 매우 일반적인 요약을 했다. 필자가 제시한 일반론에는 물론 많은 예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과학에서 잠재적으로 의심스러운 행위들’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관련된 통상적 반응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 전체적인 그림이 꽤 쓸모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