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로 한·일 이간질에 여념이 없는 양국의 종북좌파를 상대를 투쟁을 이어가는 일본인이 있다. 일본 국가기본문제연구소(国家基本問題研究所) 기획위원이자 레이타쿠(麗澤)대학 객원교수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씨다.
한·일 양국 갈등의 핵심 축인 위안부 문제는, 1991년도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기자의 기명으로 위안부 최초 증언자인 김학순 씨 문제를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우에무라 기자는 “김학순 씨가 정신대의 이름으로 전쟁터에 연행됐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 기사 곳곳에 악의적 날조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 ‘위안부 사기극’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낸 일본의 의인이 바로 니시오카 교수다.
우에무라 기자는 자신의 위안부 문제 기사를 날조 기사라고 비판한 니시오카 교수의 평론과 저서에 대해서 2015년도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우에무라 기자는 작년 6월 26일 도쿄지방재판소(1심)에 이어 올해 3월 3일 도쿄고등재판소(2심)에서도 패소했다. 단 한 가지 쟁점에서도 승소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성’과 ‘공익성’을 인정받은 니시오카 교수의 아사히신문 위안부 보도 비판
글 서두에서 니시오카 교수는 어떤 평론이나 기사가 명예훼손 소송으로부터 면책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첫째, 그 내용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것(공공성)이며, 목적이 오로지 공익인 것(공익성)이어야 한다.
둘째, 평론이나 기사에서 쓴 사실이 진실인 것(진실성), 또는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성이 있는 것(진실상당성)이어야 한다.
니시오카 교수는 “공기(公器)인 신문의 기명 기사(아사히신문에 게재된 우에무라 다카시의 기사)에 대한 평론은, 당연히 공공성과 공익성이 있는 것”이라며 “지방재판소(1심)도 고등재판소(2심)도 이 점은 쉽게 인정했다”고 소개했다.
‘진실성’과 ‘진실상당성’도 인정받은 니시오카 교수의 아사히신문 위안부 보도 비판
그러면서 그는 “재판에서 쟁점이 되었던 것은, 내가 평론에서 지적한 다음 세 가지 사실의 진실성·진실상당성”이라면서 일본 고등재판소의 핵심 판결 부분을 자세히 인용했다.
① “항소인(우에무라 다카시)는, 김학순이 경제적 곤궁에 의해 기생으로 팔렸다는 경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것을 기사에서 쓰면 권력(일본 정부 또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라는 전제가 흔들리기 때문에, 일부러 이 문제를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② “항소인(우에무라 다카시)이,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쓴 것은, 권력에 의한 강제연행이라는 전제를 유지하고, 유족회 간부인 장모의 재판(옛 위안부에 대한 배상청구소송)을 유리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③ “항소인(우에무라 다카시)은, 김학순이 ‘여자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전장에 강제연행되어 일본인을 상대로 매춘 행위를 강요당했다고 하는, 사실과 다른 기사를 일부러 썼다.”
이와 관련 니시오카 교수는 “지방재판소에 이어 고등재판소에서도 ①, ②는 진실상당성이, ③은 진실성이 인정되었다”면서, “특히 ③의 진실성이 인정된 의미가 중대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우에무라 다카시 씨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라는 인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고 단정했다”며 “즉 내 평론과 마찬가지로, ‘우에무라 다카시의 기사가 날조’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우에무라 씨가 발행인이자 사장으로 있는 일본 좌익 주간지인 ‘슈칸긴요비(週刊 金曜日)’가 재판소 판결의 권위는 부정하고 니시오카 교수 본인이 재판 심문 과정에서 자신의 평론과 기사에서 날조를 인정했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내가 과거에 한겨레신문을 인용한데서 일부 잘못한 부분은, 우에무라 씨가 재판을 걸기도 이전인 2014년 9월 5일 발행의 문고판 2쇄에서도 이미 정정했던 부분”이라며, “우에무라 씨가 재판소에 제출한 증거조차도 정정 후인 문고판 3쇄의 것이며, 거기서는 문제된 부분이 다 제대로 정정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첫 증언자 김학순은 ‘강제연행’이 아니라 ‘인신매매’를 통해 위안부가 된 사례
이번 글에서 니시오카 교수는 위안부 문제 첫 증언자인 김학순 씨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 아니라 ‘주변 지인들에 의한 인신매매’를 통해 위안부가 된 사례로서, 이는 김 씨의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의 소장에도 분명 나오는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우에무라 씨 등은) ‘슈칸분슌(週刊文春)’의 내 발언 인용 중 ‘김 씨는 부모가 자신을 팔아넘겨 위안부가 되었다고 소장에 썼다’는 기술이 있는데, 김학순 씨의 소장에는 실제 그런 기술은 없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면서 정확한 실상을 보자고 호소했다.
그는 “소장에서 김학순 씨는 ‘가난 때문에 양녀가 되어 기생학교에 들어갔고, 또 양부에 의해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고 밝힌 바 있다”며 “당시 사회상황을 아는 전문가가 본다면, 이러한 기술은 분명 ‘부모가 자신을 팔아넘겨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내 발언은 학술적 담화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위한 담화이기 때문에 단적으로 내용을 말했던 것 뿐”이라며 “이런 것을 두고서 날조라고 하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하는 비판은 전혀 올바르지 않다”고 단언하며 이번 2심 승소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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