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부가 2017년 국과수 버전의 태블릿 이미징파일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가까스로 피고인들의 기피신청을 피할 수 있었다.
태블릿 항소심 제9차공판은 14일 오후 2시 37분 시작됐다. 쟁점은 태블릿 이미징파일 확보였다. 검찰은 보관 중인 이미징파일을 피고인들에게 내어주라는 재판부의 결정을 5개월째 무시하다 마침내 줄 수 없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이에 피고인들은 검찰청 압수수색과 김한수 증인신문을 요구하며 태블릿PC 본체, 검찰 버전 이미징파일, 국과수 버전 이미징파일을 모두 확보하겠다고 별렀다.
검찰 뜻 받들어 모시려던 재판부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길게 공판 상황을 체크하면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속내를 드러냈다. 이미징파일을 포기하고 검찰이 원하는 대로 포렌식 보고서만 갖고서 심규선 증인신문을 하겠다는 것이다. 심규선 국과수 포렌식 연구관은 이 사건을 담당하는 홍성준 검사에게 일방적으로 포렌식 자문을 해줄 정도로 편향적인 인물이다.
피고인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송지안 검찰 포렌식 수사관이 2016년 10월 25일 이 태블릿을 불법포렌식 했다고 자백한 상황에서 그 포렌식 보고서만으로 증인신문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버텼다. 또 법원의 명령을 어긴 것은 검찰인데 왜 재판부는 당장 직권 압수수색을 집행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예상대로 반대에 부딪혔지만 재판부는 피고인 측 설득을 포기하고 심규선 증인신문을 강행하려 했다. 작심하고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송지안, 심규선 증인신문은 전임 재판부가 포렌식 보고서에 관한 전문가 증인신문이 필요하다고 해서 결정한 사안인데, 피고인들이 이제 와서 이미징파일 입수를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며 심규선 증인신문에 반대하는 것은 재판부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변희재 피고인은 “태블릿 검증은 저희가 갑자기 요청한 게 아니고 1심 때부터 계속해서 요구해온 것”이라며 “그걸 재판부가 들어주지 않으니까 차라리 이미징파일을 제출 받아서 우리가 직접 민간 검증을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라고 따졌다.
이동환 변호사도 “재판부는 재판부가 결정한 명령사항을 왜 이행하지 않는가부터 검찰에게 물어달라”고 요구했다. 고심하던 재판부는 “검사님께서는 이 상황에 대해서 입장이 어떠십니까”라고 물었다. 76년생 젊은검사(장욱환)는 “검찰의 입장은 의견서로 다 말씀드렸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재판부는 검사에게 “검찰에선 검찰이 포렌식한 이미징파일 5개 중에 1개만 있다고 하셨고, 그럼 피고인들이 요구하는 태블릿 본체와 국과수의 이미징파일은 현재 검찰에 있는지 확인이 되십니까”라고 물었다.
검사는 “저희가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검사의 대답과 동시에 이동환 변호사와 피고인들은 “우리가 다 확인했다 검찰에 있다”고 반발했다. 이동환 변호사는 “저희가 검찰에 있는 걸 다 아는데 지금 검찰에 없다고 하시는 겁니까”라고 쏘아붙였다.
검사는 “저는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반발했다. 이어서 재판부를 향해 “저희는 모든 입장을 의견서로 다 말씀드렸습니다”라며 “예정대로 심규선 증인신문을 진행한 후에 조속히 재판을 종결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재판부는 “심규선 증인신문을 4월 8일에 하는 것으로 결정하겠다. 변호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으니 그럼 증인신청을 철회하는 것으로 판단하겠다”고 날짜를 지정하며 밀어부쳤다.
5분 휴정과 김인성 교수의 일장설
변호인과 피고인들은 “왜 상의도 없이 결정하느냐”고 반발하면서 “5분 휴정”을 요구했다. 변호인과 피고인들은 법원 복도에 나와 서로의 분명한 의지를 확인했다. 이대로는 재판이 무의미했다. 재판부가 이미징 파일을 확보하지 않고 심규선 증인신문을 강행한다면 기피신청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변호인과 피고인들은 1분만에 제자리로 돌아와 착석했으나 재판부가 5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약 10분 만에 돌아온 재판부는 피고인 측의 의견을 물었다. 이동환 변호사는 “이미징 파일은 꼭 필요하며 그에 관해 국내 최정상 포렌식 전문가인 김인성 교수가 다행히 이 법정에 계십니다”며 “김인성 교수에게 발언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마지못해 김인성 교수를 호명해 마이크 앞에 불렀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느 날 변희재 피고인이 연락해서 도와달라기에 ‘그럼 검찰과 국과수의 포렌식 보고서가 맞는지 검증을 해봐야 하니, 이미징 파일부터 좀 보자’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미징파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변희재 피고인은 3년간 재판을 하면서 검찰과 국과수가 작성한 보고서만 갖고서 재판을 받아온 것입니다. 피고인이 재판을 받는데 증거도 없이 재판을 받는 걸 저는 처음 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디지털포렌식을 하는 사람 치고 지금 저처럼 이 자리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수사기관 소속 전문가는 말할 것도 없고, 민간 포렌식 전문가도 검찰과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문가는 우리나라에 한 사람도 없다고 저는 장담합니다. 포렌식 의뢰가 전부 검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나마 포렌식을 업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는 겁니다. 검찰의 포렌식 보고서는 조작이 만연합니다. 저는 과거에 국가보안법 사건에서조차도 검찰이나 국정원이 제출한 보고서를 검증하기 위해 관련 증거를 내놔라 해서 하드디스크까지도 다 제출받아서 직접 검증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피고인이 북한에서 찍은 사진이라면서 국정원이 내놓은 흑백사진이, 원본 파일을 복구해서 분석해보니 북한이 아니라 중국 연변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걸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검찰이 이미징파일을 안주겠다고 하면, 재판부께서는 그냥 ‘가져와라’ 명령만 하시면 되는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우선 국과수 이미징파일부터
재판부는 김인성 교수의 말을 끊고 자리로 돌려보냈다. 고심을 거듭하던 재판부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들이 자신들은 이미징 파일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니 이들에게 이미징파일을 달라고 요구하면 결과는 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결된 다른 사건에 증거로 첨부된 이미징파일을 달라고 요구해 받아오자고 재판부는 제안했다.
현재 최서원 사건이 종결돼 원청인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자료가 보관돼 있다. 이 사건자료에는 국과수 이미징파일이 포함돼 있다. 재판부는 이 국과수 이미징 파일을 요청해서 받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변희재 피고인은 “검찰이 검찰 이미징파일도 주지 않고 버티는데, 국과수 이미징파일이라고 쉽게 주겠느냐 그것도 내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재판장이 “설마...”라고 운을 떼자 방청석에선 원성이 터져 나왔다. 검찰이 법원 결정까지도 무시하는 지경인데 재판부의 판단이 너무 안이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이동환 변호사도 “법원의 명령도 무시하는 검찰이 국과수 이미징 파일을 과연 쉽게 내주겠냐”고 우려하며 “늦어도 3월초까지는 이미징파일을 확보해야 민간기관 2곳에 분석을 맡겨 그 결과를 토대로 심규선 증인신문을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구두 서약을 했다. 재판부는 “우리가 증거번호를 적시해서 달라고 요구하는데 그걸 주지 않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피고인들이 우려하니 만약 어떤 이유로든 검찰에서 제출이 늦어지거나 하면 재판부가 이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3월초까지 이미징파일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피고인들이 기일변경 신청을 하고 재판부가 증인신문 날짜를 늦추면 된다”고 덧붙였다. 변호인과 피고인들은 이에 동의했다.
한편, 재판부는 ‘태블릿 관련 일체의 집회나 시위참여를 금지’한 지나친 보석조건을 변경해달라는 변희재 피고인의 요구에 대해서 검토 후 변경하겠다고 말했다. 또, 태블릿 신규 계약서 조작과 관련 SKT 본사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요청에 대해선, SKT 측에 한 차례 더 사실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논의하자며 일단 거부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