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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남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제19차 기자회견

김대호 개혁자유연합 서울시장 후보 ... “서울시장 된다면 거짓과 증오의 기억의 터 공간 없애고 서울 곳곳의 위안부상도 철거할 것”

한일우호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20일 수요일 오후 1시 명동에 위치한 ‘남산 위안부 기억의 터’ 앞에서 제19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민행동은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일본군 위안부라고 알려진 이용수 씨의 실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국민행동은 과거부터 이용수가 증언한 내용들을 조목조목 제시하며 그가 말을 수시로 바꿔왔다는 점을 폭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대호 개혁자유연합 서울시장 후보는 “국민행동 김병헌 대표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며 “내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거짓과 증오로 가득한 기억의 터 공간을 없애고 서울 곳곳에 있는 위안부상을 철거하겠다”고 말했다.

국민행동 측은 최근까지 ‘남산 위안부 기억의 터’ 앞에서 매주마다 기자회견을 열었고, 다음 주에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매주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국민행동 기자회견 사진과 성명서. 











[제19차 국민행동 성명서] 가짜 위안부 의혹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맞는가?


“14살이던 1942년 자다가 끌려간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42년 만14살의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다가 해방 이듬해인 46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15살이던 1942년 경 집에서 자다가 일본군에 의해 대만으로 끌려갔다. 15살 때에는 동네에 있는 칠성국민학교에서 정신대 훈련을 받기도 했다. 16살 때인 1943년 여름의 어느 날, 다른 4명의 동네 언니들과 함께 일본군에 끌려갔다. 16살 때인 1943년 10월 고향 대구에서 이웃이 불러 외출했다가 다른 여성 4명과 함께 일본군에 끌려갔다. 1944년 나이 16살이던 어느 날 저녁 밖에 나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1944년 내가 만 16살 때인 가을, 친구 분순이가 불러서 갔다가 일본인이 보여준 빨간 원피스와 가죽 구두가 얼마나 좋았던지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 나섰다. 17살 때 대구에 있는 집 마당에까지 일본군이 들어와서 끌고 갔다. 17세 때(1944년) 취직시켜준다는 일본인의 말에 속아 친구와 함께 대만에 있는 위안소로 강제 연행되었다.”


이상은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가 1992년부터 최근까지 스스로 위안부로 동원되는 과정에 대해 발언한 것을 모은 것이다. 위안부피해자법 제2조 1항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를 말한다.’고 정의하였다. 이용수의 저토록 다양한 증언 중에 어느 것이 진실이며, 어느 것이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이라는 정의에 해당하는가? 


“14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가미카제 부대에서 전기고문까지 당하고 돌아왔다. 15살에 가미가제 부대에 끌려가 온갖 전기 고문, 매를 맞아가지고 지금도 아야 아야 죽지 못해서 이렇게 산다. 16살에 자다가 군인에게 붙들려갔는데 군인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전기고문 등 갖은 고통을 당했다. 대구에서 우리를 데려간 남자가 위안소의 주인이었다. 우리들은 그를 ‘오야지’라고 불렀다. 방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안 들어가려고 하니까 주인이 내 머리끄댕이를 잡아끌고 어느 방으로 데려갔다. 그 방에서 전기고문을 당했다.”


이것은 또 이용수의 전기고문에 대한 증언이다. 도대체 이용수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전기고문을 당했는가? 포주인가, 아니면 가미카제 부대 군인인가? 가미카제 부대라면 당시에 가미카제 특공 요원으로 편성된 정규 부대가 있기나 했는가? 군인이 할 일없어 대만에서 대구까지 와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골 여자를 데리고 가서 전기 고문을 했다는 말인가? 이용수의 횡설수설 증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급기야 일본군 위안부 여부에 대한 본질적 의문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용수는 1993년 초기 증언에서 “밖에 나가서 진단을 받아본 기억은 없다. 삿쿠(콘돔)라는 것도 몰랐다.”고 하는가 하면, “성병에 걸렸다. 주인이 불그스름한 빛이 나는 독한 606호 주사를 놔주었다. 다 낫지 않았는데도 남자를 받아야 하니 잘 낫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주사를 맞아가며 군인들을 받았다. 근처에 병원 같은 곳도 없고 보건소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일제가 군 위안소를 운용한 데는 점령지 여성에 대한 강간을 방지하고 민간 매춘업소 이용으로 인한 군인들의 성병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위안소 규정에는 성병 예방을 위해 반드시 삿쿠를 사용해야 하며 위안소에는 항상 삿쿠를 비치하도록 하였다. 또한 군의(軍醫)가 정기적으로 건강검진과 성병 검사를 실시하였으며, 성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반드시 격리 치료하고, 완치 될 때까지는 군인을 받지 못하도록 하였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영업허가를 취소할 정도로 엄격하였다. 당연히, 군의(軍醫)가 아닌 포주가 성병치료제인 606호 주사를 놓아주고 성병 치료 중에도 일본군을 계속 받았다는 이용수의 증언은 일본군 위안소의 실상과 거리가 멀다. 


이처럼 동원 과정, 위안소 생활, 건강 검진 및 성병 관리 등과 관련된 다양하고도 비현실적 증언으로 인해 우리는 이용수가 과연 일본군 위안부가 맞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당사자인 이용수와 관리감독 부서장인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이용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맞는가? 


2021. 1. 20. 

국사교과서연구소/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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