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왜 중국에 맞서는가(원제 : 兩岸恩怨如何了?)’의 저자인 뤼슈렌(呂秀蓮) 전 대만 부총통은 독립국가 대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대만섬’의 유래와 ‘대만인’의 유래부터 설명한다.
대만이 선사 시대에 오늘날 태평양 원주민인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원 고향이라는 사실, 그리고 역사 시대에는 중국인보다도 대만섬에 오히려 네덜란드 사람, 스페인 사람이 먼저 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얘기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실은 대만은 그렇게 일찍부터 대륙 중국과는 무관한 해양 태평양의 나라였다. 대만인은 자신들이 비록 과거 중국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대만섬을 점령해본 적이 없는 국가인 중공의 국민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중공의 지도자들은 무책임하게 폭력적으로 중국 통일론을 부르짖으며 대만을 겁박해왔는 사실이다. 대만에 대한 이른바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강요는 지금껏 국제사회가 묵인, 방조해온 스토킹 범죄나 마찬가지다. 대만은 이러한 지난 수십 년간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오히려 자유, 법치, 인권의 가치는 물론 소프트파워 경쟁력을 계속 키워왔고, 특히 코로나 시대에 하나의 모델국가로서 전 세계의 예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저자인 뤼슈렌 전 대만 부총통은 여성으로서, 또 민진당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10대, 11대 부총통까지 지낸 대만의 민주화운동계와 여성운동계에서는 전설적인 존재다. 대만의 거물급 정치인이 바라보는 미중패권전쟁의 전망과 대만 독립의 앞날은 어떠할까.
저자는 시진핑 주석이 개인 독재 체제를 완성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공을 ‘전략적 경쟁자’로 명시한 이래, 태평양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유사한 군사안보동맹이 만들어질 것이며 이로써 중공과의 군사적 전면 대치가 이뤄질 공산을 매우 높게 본다.
대만은 그 뛰어난 지정학적 입지로 인해 현재 양 강대국의 볼모이면서도 동시에 양쪽으로부터 우군이 되라는 강한 유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만약 대만이 미국과 중공 중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졌을 경우에 필연적으로 대만 스스로는 물론, 미국, 중공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이런 비극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차제에 영세중립을 선언해버리고 그래서 대만이 미국과 중공의 완충지대가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이외에 미국과 중공이 갖고 있는 안보 딜레마를 줄여줄 수 있는 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물론 대만 영세중립의 전제는 대만의 유엔 가입, 그리고 독립 국가화다. ‘중국몽’을 꿈꾸는 시진핑 주석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저자는 서태평양이 ‘화약고’가 되어버린 현 상황에서 아예 한국, 일본, 필리핀 등 관련 국가들이 영세중립국 연대를 만들어 ‘동아시아 안보 아키텍처(EASA)’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미국과 중공의 태평양에서의 패권 다툼을 근본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숨기지 않는다.
특히 대만, 한국, 일본은 모두가 자유, 인권, 법치를 존중하는데다가 막강한 소프트파워 경쟁력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 아닌가. 중공의 영토 야심을 강대강식 미국의 파워로써가 아니라 이 ‘평화중립의 만리장성’으로 막아낼 수 있다면 지역 공산 국가들 전체를 평화적으로 변모시키는 소프트파워 효과도 기대해볼만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편 저자는 대만이 오른쪽편에서는 한국, 일본, 캐나다 등 자유민주국가들과 ‘민주태평양국가연합’(또는 ‘동북아민주국가연합’)을 맺고, 왼편에서는 중국, 싱가포르 등과 ‘중화연방’을 동시에 맺는다면 이 역시 군사적 긴장을 줄이고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음도 제안한다.
동북아 주변에서 쿼드(Quad)와 오커스(AUKUS),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다양한 이합집산 논의가 불붙는 속에서 한국 측이 듣기에도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대만이 과연 올해 12월 미국의 ‘민주주의 정상회의(The Summit for Democracy)’에 초청될 것인지도 현재 국내외 외교가의 초미의 관심사다.
카이로 선언으로 엇갈린 대만과 한국의 운명, 늘 중공과 일본의 영유권 갈등의 대상이었던 대만명 ‘댜오위타이(釣魚臺)’(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과 관련한 대만의 입장, 남중국해를 둘러싼 대만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간의 분쟁 상황, 그리고 역대 중립국 사례와 연방과 연합의 사례 설명도 흥미진진하게, 또 부드럽게 잘 읽힌다.
저자의 지적처럼 미국도 실은 20세기에 세계사의 중심에 서기 전에는 사실상의 중립국으로서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해왔다. 일본도 역시 준중립국법이라고 할만한 ‘평화헌법’의 기반에서 전후 착실하게 성장을 해왔다는 점에서 중립과 번영의 상관관계는 충분히 검토해볼만한 주제다.
잘 알려져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대만은 한국과 국교를 맺은 사상 첫 번째 국가이며 한국을 정식 승인해준 사상 두 번째 국가(첫 번째 국가는 미국)다. 장제스 집권 시절부터 우리에게는 임시정부 성립 및 한국전쟁 지원의 은인의 나라이기도 하다.
불행했던 양국 단교 역사 30주년을 앞두고 재국교 논의까지 나오는 속에서 대만 현지 정치인이 저술한, 평화중립 독립국가 대만의 가치를 알려주는 훌륭한 소개서가 출판돼 외교가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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