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심규진 | 정치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흔히 우유부단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태도나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비판받기 쉽다. 그러나 모든 모호성이 회피는 아니다. 때로는 분열된 진영을 묶기 위한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최근 보수 진영 내부 논쟁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장동혁 체제를 두고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 모두에서 “왜 ‘윤어게인’ 혹은 내란 몰이를 하는 내부 세력과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러다 좌우 강경론자들 사이의 대립 구조에 끼여 정치적으로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은 선 긋기보다 판을 넓힐 때”라는 주장도 있다. 이 논쟁을 단순히 ‘강경 대 온건’의 구도로 해석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본질은 보수가 어떤 방식으로 ‘선명 우파’로서 재구성될 것인가의 문제다.
현재 보수 진영은 구조적으로 언더독(Underdog)이다. 미디어 환경, 여론 지형, 세대 구도 중 어느 하나 유리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분파의 대표가 되어 내부 결속만을 강화하는 전략은 단기적 쾌감을 줄지는 몰라도 확장성은 제한된다. 오히려 내부의 ‘정통성 경쟁’과 ‘이단 논쟁’을 가속화해 외연을 더 좁힐 위험이 있다.
이 대목에서 장동혁의 행보는 다소 역설적으로 읽힌다. 일부 강성 지지층이 기대하는 직선적 투쟁 대신, 그는 한 발 물러선 듯한 언어를 사용한다. 특정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그 구호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과 의제를 재구성하려 한다. 이것이 비판자들의 눈에는 모호성으로 비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그는 특정 인물의 ‘반사체’가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로 서려 한다는 해석이다. 반사체 정치는 강력한 상징에 기대 단숨에 세력을 모을 수 있지만, 상징이 흔들리면 함께 무너진다. 반면 발광체 정치는 속도는 느려도 독자적 기반을 구축한다. 장동혁이 택한 길은 후자에 가깝다.
그동안 보수 진영 내부에서 반복된 문제는 ‘가두리 정치’였다. 선거 때마다 선명 우파 지지층을 ‘집토끼’ 취급하며 표만 받은 뒤, 정작 그들을 위한 효능감 있는 정치는 뒷전으로 미뤘다. 중도 지향을 명분 삼아 ‘좌파 2중대’ 격인 귀족 세습 정치에만 몰두한 결과, 지지층 이탈과 신뢰 파탄을 맞이한 것이다.
반대로 결집만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강성 지지층을 관리하는 방식은 안정적일지 모르나 확장성이 없다. 결국 올드 미디어 의존도가 높은 정치 저관여층이나 무당층의 벽에 번번이 부딪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가두리가 아니라 ‘광장’이다. 특정 구호를 신앙처럼 공유하는 소수 집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을 가진 보수 유권자들이 함께 설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장동혁 대표는 “윤어게인과의 절연은 없다”고 밝히며, 정권 창출을 통해 해당 의제를 현실화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김민수 최고위원 역시 “윤어게인은 특정 세력이 아니라 선거관리 시스템의 공정성 강화와 체제 수호를 외치는 보편적 국민”이라며, 올드 미디어와 좌파 세력의 ‘극우 낙인’ 프레임을 무력화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적 구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서는 상징의 절대화가 아니라 의제의 보편화가 필요하다. 인물 중심의 정치에서 의제 중심의 정치로 이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기존 지지층 일부는 배신감을 느낄 수 있고 내부 충돌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정치가 제도권에서 승리해야 의미를 갖는다면, 감정의 순도를 지키는 것보다 연대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장동혁 체제의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보수 진영이 선택해야 할 길이 ‘더 좁은 결속’이 아니라 ‘더 넓은 연대’라는 점이다. 논란이 된 “한동훈 지지 세력도 안아야 한다”는 주장 또한, 특정 인물을 종교처럼 추앙하는 이들까지 설득하여 ‘신우파 대중주의’라는 의제로 전향시켜야 한다는 것이 본질이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보이는 태도가 사실 분열을 흡수하기 위한 완충지대라면,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정면승부다.
정치는 결국 세력을 만드는 일이다. 세력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와 정서를 묶어내는 설계 능력에서 나온다. 장동혁 호가 또 하나의 ‘우파 가두리’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신우파 연대의 광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바로 이 설계 능력에 달려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헨리 8세의 사생아로서 가톨릭 세력에 의해 참수당한 앤 불린의 딸이었다. 그는 종교 전쟁의 혼돈기에 신교와 구교 모두에게 모호한 태도를 취하며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했다. 탕평적 중도주의를 넘어 ‘자신이 곧 영국의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위대한 군주가 되었다.
장동혁의 입지도 이와 유사하다. 독자적 세력 기반이 약한 당 대표로서 ‘윤어게인’ 지지층을 흡수하는 동시에 대중적 신우파로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계파 정치가 아닌 ‘신우파 수장’으로서의 브랜딩 확립이 그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보수 재편은 인물의 승패를 넘어 구조의 재구성을 요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장 강한 구호가 아니라 가장 넓은 판이다. 그리고 그 판 위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정치가 다음 국면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조교수 약력
정치 문법을 문화 전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우파의 문화적·정치적 복권과 승리를 이끄는 담론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연구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교육부 미디어개발국 및 스페인 과학혁신부의 지원을 받아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ICA)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역민방 청주방송과 미디어다음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실무를 아우르는 보수 우파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국민스피커 심규진 교수〉를 통해 정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민심과 데이터 기반 정치 평론이라는 대중적 실험에 나서고 있다.
▶ 유튜브 검색: @kyujinshim78
저서로는 『하이퍼젠더』,『K-드라마 윤석열』, 『새로운 대한민국』(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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