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강원준 기자 | 최근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이제 ‘사(士·師·事)’자 직업만큼이나 견고하게 상위권을 지키는 직업이 있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2025년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희망 직업 3위는 ‘콘텐츠 크리에이터(4.8%)’다.
남학생만 놓고 보면 운동선수에 이어 2위(7.9%)에 달한다. 이웃 나라 일본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교육종합연구소의 청소년 대상 장래 희망 조사 결과,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위가 ‘스트리머’로 집계됐다. 국경을 넘어 한·일 양국의 아이들은 이제 TV 속 스타가 아닌, 손안의 화면 속 인플루언서를 동경하며 자란다.
바야흐로 우리 젊은이들은 인플루언서 광풍의 시대 속에 있는 것이다.
이 광풍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몇 년 전부터 경제 지형을 뒤흔드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Creator Economy)’로 진화했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크리에이터 비즈니스 시장이 지난 2022년 2500억 달러(약 320조 원)에서 2027년까지 약 4800억 달러(약 61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1위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MrBeast)’가 팬덤을 기반으로 초콜릿 브랜드 ‘피스터블스(Feastables)’를 성공시키고, 국내 유통 공룡 쿠팡이 크리에이터들과 손잡고 ‘쿠팡 파트너스’를 통해 쇼핑 접점을 넓히는 현실은 영향력이 곧 자본이 되는 시대임을 방증한다.
인스타그램의 공구(공동구매) 문화 역시 개인의 인지도가 어떻게 즉각적인 소비와 거대한 이윤으로 치환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도 모르길 바라지만, 누구나 알기에 돈이 되는 시대
하지만 이 화려한 광풍의 이면에는 묘한 현대인의 심리적 모순이 흐른다.
몇 년 전 배우 류승수가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던진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고백은 뒤늦게 온라인상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현대인의 보편적 로망’을 상징하는 밈(Meme)이 됐다.
익명성 뒤에서 부의 안락함만 누리고 싶다는 이 솔직한 고백은,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전시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인플루언서 시대에 대한 피로감을 대변한다.
이 지점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이 연출된다. 전 ‘충주맨’ 유튜버 김선태는 공무원 시절 이 밈을 풍자해 “누구나 나를 알지만 돈은 없다”는 15초짜리 영상을 올려 15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유명세는 가졌으되 자본은 가질 수 없었던 공직자 유튜버의 해학이었다. 그러나 그가 퇴사 후 개인 채널을 개설하자마자 단 3일 만에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한 사건은 상징적이다.
대중은 그에게 구독 버튼으로 기꺼이 ‘돈쭐(돈으로 혼내주는 응원)’을 냈고, 그는 마침내 ‘누구나 아는’ 유명세를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본으로 바꿀 수 있는 입장권을 손에 쥐었다.
결국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것은, “아무도 나를 모르길 바란다”는 익명성의 전제를 스스로 깨뜨리고 유명세라는 입장료를 지불해 부의 열차에 올라타는 행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열차에 올라탔을 때 무엇을 마주하게 될까.
인플루언서라는 비즈니스 모델... ‘영향력’을 팔아 ‘수익’을 사다
인플루언서라는 열차에 올라타는 순간,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사치인 ‘익명성’은 영구적으로 박탈된다. 인플루언서 비즈니스의 본질은 자신의 일상과 사생활, 때로는 신념까지 콘텐츠화하여 대중의 관심과 맞바꾸는 ‘감정 노동의 자본화’에 있기 때문이다.
이 거래에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따른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법칙이다.
대중은 인플루언서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주는 동시에, 그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감시를 들이댄다.
특히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를 향한 비난 양상은 매우 가혹하다. 온라인에서 논란이 발생하는 순간 개인은 충분한 해명의 기회를 잃고, 무조건적인 침묵을 강요받는다. 사과는 의무가 되지만, 용서와 회복은 거의 허락되지 않는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사회적 정의의 발현인지 혹은 광기 어린 집단적 폭력인지는 사안마다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중이 인플루언서에게 부여하는 권력만큼이나 잔혹하리만치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며, 이것은 오늘날 인플루언서가 마주해야 하는 서늘한 현실이다.
결국 “누구나 나를 알지만 돈은 없다”는 충주맨의 역설이 해결되는 순간, 그는 “아무도 나를 모르길 바란다”는 평범한 자유를 영원히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전통적인 경제 관점에서 돈을 버는 공식은 단순했다. ‘일하는 시간’에 ‘시간당 임금’을 곱한 값, 즉 근로소득이 부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통찰했듯,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는 자산이 돈을 버는 속도를 결코 앞지를 수 없다.
결국 진정한 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내 몸을 써서 버는 소득을 넘어, 내가 잠든 사이에도 가치를 창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이 지점에서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의 본질이 드러난다.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것은 곧 ‘개인 그 자체를 시스템화’하는 행위다.
과거에는 거대 자본과 공장이 시스템이었다면, 이제는 한 개인의 인지도가 플랫폼과 결합해 거대한 수익을 뽑아내는 유무형의 설비가 된다. 자신의 가치를 무한히 확장해 자본 증식의 속도를 극대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핵심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나락’의 위험에서 보듯 이 시스템은 유리로 만든 성벽과 같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점에서 근로소득보다 훨씬 치명적인 일장일단이 존재한다.
모든 가치가 ‘돈을 벌 수 있느냐 없느냐’로 치환되는 이 냉혹한 효율의 시대에서, 인플루언서가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지점은 어디일까.
롤모델의 변천... 인플루언서 이후의 삶 : ‘배용준 vs 김연아’
최근 대중이 선망하는 롤모델은 단순한 ‘스타’에서 ‘자본가’로 변모하고 있다. 그 정점에는 배우 배용준과 피겨스타 김연아라는 두 가지 상징적인 모델이 존재한다.
배용준은 유명세를 시스템으로 완벽히 치환한 ‘은둔형 자본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아시아를 뒤흔든 슈퍼스타였던 그는 어느 순간 화면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는 자신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키이스트’라는 엔터 기업을 창업하고 상장시켰으며, 최근에는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투자자의 행보를 증명하고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배용준은 최근 장내 매수를 통해 코스닥 상장사 블리츠웨이엔터 주식 약 42만 주를 추가 취득하며 지분율을 8.63%까지 끌어올렸다.
이 소식에 해당 종목이 상한가로 직행할 만큼 그의 ‘이름값’은 여전히 강력한 자본 권력으로 작동한다. 그는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 ‘익명성이 보장된 자본가’로서 시스템 뒤에서 부를 증식시키고 있다.
반면, 김연아는 유명세를 독보적인 ‘신뢰’로 구축한 ‘현역형 브랜드 자본가’ 모델이다.
은퇴 후에도 그는 여전히 광고계의 톱 티어를 지키며 자신의 브랜드를 관리하지만, 그 내면에는 익명성에 대한 갈망과 유명세의 무게가 공존한다.
최근 김연경의 유튜브 ‘식빵언니 김연경’ 채널에 출연한 김연아는 “어렸을 때부터 노출이 워낙 많다 보니 (대중 앞에 서는 것이) 부담이 된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는 아무도 나를 모르길 바라지만, 영향력은 유지해야 하는 현대 인플루언서들의 딜레마를 가장 우아하게 해결한 사례다.
그는 과도한 일상 노출 대신 ‘무결점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을 하나의 상징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유지하며, 대중과 엄격한 거리두기를 통해 개인의 삶을 방어한다.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밑천’을 만들 것인가
이러한 인플루언서들의 삶을 목도하며 우리가 얻어야 할 인사이트는 명확하다. 단순히 “나도 인플루언서가 돼야겠다”는 조급함이 아니라,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부를 쌓고, 그 부로 어떤 삶을 지탱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부를 이루는 전통적인 루트는 커리어를 정교하게 갈고닦아 근로소득을 극대화하고, 이를 밑천 삼아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 투자로 나아가는 길이다.
다만, 오늘날 이 전통적인 루트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부동산 가치가 솟아오르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시대에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렵다’는 절망감은 청년들을 막다른 길로 내몬다.
성실한 노동으로 시드머니를 모으기엔 이미 사다리가 너무 높이 치워져 버린 탓에, 많은 이들이 코인이나 3배 레버리지 투자 같은 초고위험 자산에 뛰어드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고전적인 루트 안에서 자신만의 ‘자생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단순히 시간을 팔아 임금을 받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을 확장해 대체 불가능한 핵심 역량으로 키워내는 것 또한 하나의 강력한 시스템 구축 과정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플루언서의 길은 한 개인의 브랜드 파워를 극대화해 자본 증식의 시간을 압축하는 ‘창의적 돌파구’다.
이는 단순히 유명해지는 게임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철학에 공감하는 팬덤을 구축하고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는 현대판 창업가 정신의 발현이기도 하다.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영향력을 자산으로 변환하는 이 길은, 정체된 시대 속에서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내고 부의 지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는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전이다.
결국, 전통적인 루트가 ‘안정적인 뿌리를 깊게 내리는 작업’이라면, 인플루언서의 길은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널리 퍼뜨려 거대한 숲을 이루는 작업’이다.
두 길 모두 각기 다른 형태의 용기와 인내를 요구하며,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자신만의 확고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위대한 여정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뿌리를 내리든 숲을 이루든, 그 모든 행위는 결국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철학적 토대 위에서만 생명력을 얻는다는 점이다.
방법론에만 매몰돼 ‘왜’라는 질문을 놓칠 때, 부의 축적은 보상 없는 고역이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집단적 우울의 핵심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최근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입소스(Ipsos)가 발표한 <2026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조사 대상 29개국 중 28위(57%)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불행의 가장 큰 이유로 ‘재정 상태(60%)’가 꼽힌 것은 예상 가능한 결과였으나, 정작 충격적인 대목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응답(45%)이 29개국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단순히 가난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다. ‘왜 사는지 모르는 상태’, 즉 삶의 방향과 목적 자체가 흔들리는 ‘의미의 실종’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재정이 삶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부를 쌓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나머지 그 너머의 가치를 잃어버린 셈이다.
결국 삶의 태도에 관한 질문
지금의 인플루언서 열풍은 자산 형성의 골든타임을 단축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탈출하려는 시대적 조급함의 반영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부는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일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배용준이 자본 시스템을 구축해 투자자의 길을 걷고, 김연아가 신뢰라는 자산을 바탕으로 선별적 노출을 택한 것은 각자가 선택한 ‘삶의 운용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정교한 자기 객관화다. 대중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비즈니스로 연결해 가치를 창출하는 인플루언서의 삶을 선택하는 것 또한 이 시대가 제안하는 하나의 능동적이고 멋진 방식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잠재력을 가장 화려하게 꽃피우는 존중할 만한 경로가 될 수 있다.
반면, 묵묵히 전문성을 갈고닦아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자산을 일궈나가는 길 역시 그 나름의 단단한 미학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본질적인 욕망을 직시하는 일이다. 그 선택의 기준은 단순히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를 넘어, ‘내 삶에 어떤 의미와 무게를 부여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새로운 경제 모델이 쏟아져 나와도, 삶의 철학이 결여된 부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 같다.
재정적 자유를 꿈꾸는 열망만큼이나, 그 자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미’를 찾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밑천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할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로 채워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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