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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강남론, 이명박을 놓쳤다

현실에서 반강남 연합전선이 통하지 않는 이유

 가끔씩 내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내게는 너무나 뻔한 이치를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왕 시작한 자화자찬.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련다. 강준만 교수가 새로 책을 펴냈다. 워낙 다작을 하는 학자인지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는데 제목이 범상하지 않았다.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

 강교수는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지역문제 전문가다. 지역주의 연구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강준만의 뛰어남은 그 이상에 있다. 그는 최고의 선거기획자이기도 하다. 지난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는 강준만 교수가 설계한 구도대로 진행되었다. 강교수가 정권창출의 디자이너 역할을 다시금 자임하고 나섰다. 민주당 분당사태 이후 줄곧 외곽만 때리던 강교수가 강남을 화두로 내걸며 장내로 복귀한 것이다. 그는 아마도 ‘강남 대 비강남’ 프레임을 2007년 대선의 명암과 승패를 가를 핵심코드로 짚은 듯하다.

 일찍부터 강남문제를 천착해온 내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황야에서 나 홀로 절규하는 고립의 시대가 이제야 마감이 되었으니 오죽 기쁘겠는가? 한데 씁쓸하고 서글프다. 늦었다.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천시와 결합하지 못한 구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노무현 정권의 아마추어적인 무늬만 ‘반강남 정책기조’는 귀중한 ‘강남 대 비강남’ 구도마저 ‘친노 대 반노’ 구도의 흙탕물에 수장시켜버렸다.

 노무현 정권이 강남의 금권통치를 끝장내주리라고 기대한 것 자체가 애당초 황당무계한 망상이었다. 참여정부의 주요한 정책라인마다 강남에 사는 고위관료들이 포진해있었다. 대통령이 하달한 지시사항은 정책집행과정에서 교묘하게 변질되었다. 참여정부 들어서 강남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현상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이른바 인위적 실수였을 개연성이 짙다.

 더욱이 참여정부 수뇌부는 주소지만 강남이 아닐 뿐, 사고체계는 웬만한 강남부자가 무색할 지경으로 속물근성에 물들었다. 골프에 중독된 이해찬 전총리는 노무현 정권 실세들의 태도와 심리를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다. 결혼한 아들이 미국으로 MBA 학위를 취득하러 떠나는 걸 수수방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세계는 비싼 달러 처발라 아이들 조기유학 보내는 강남지역의 여느 기러기아빠의 그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강남의 생활양식과 소득수준을 누리는 인사들이 강남과 싸우겠다고 설쳐댔으니 잘 될 턱이 있겠나? 등에 LP가스통을 짊어지고 화재를 진압하는 편이 낫겠다.

 강준만 교수가 뒤늦게 강남문제의 중요성을 인지한 원인은 전적으로 환경 탓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서울 한복판에 사는 나는 골백번 머리를 싸매도 지방분권의 의미와 지역균형발전의 본질을 쉽사리 꿰뚫지 못한다. 마찬가지다. 전주에 터전을 둔 강준만 교수에게 강남문제까지 적기에 분석해달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열차 떠난 다음에야 헐레벌떡 달려온 강교수를 원망하지 말라.

 진실로 욕을 먹어야 할 원흉은 수도권에서 일체의 의식주를 해결하면서도 영남이 저렇고, 호남이 어떻고 하는 지방출신의 개혁엘리트들이다. 내가 영남친노의 좌장 유시민 장관이나, 호남의 신흥맹주를 자처하는 천정배 의원을 하찮게 여기는 이유다. 그들 입에서 언제 한번 일산과 안산이 거론된 적이 있었나? 안산시민과 일산주민은 영남패권이나 호남편중이 아니라, 강남의 싹쓸이로 인해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강남과 비강남의 대립을 영호남 갈등으로 바꿔치기 하려는 어떠한 음모와 술책에도 우리는 단호히 반대해야 옳다.

 콘텐츠에 현혹되지 말고 동선에 유의하기 바란다.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던 강준만 교수가 엄청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은 그가 ‘한국현대사산책’ 완간기념강연을 개최한 장소를 주목해주시라. 교보문고 강남점이다. 본점이 아닌 강남점에 밑줄 쫙. 강교수는 16대 대선이 치러진 직후 “정당으로 쳐들어가자!”고 외친 바 있다. 물론 남들더러 쳐들어가라는 소리였을 따름이었다. 스스로는 강의와 집필에만 전념했다. 정당에는 쳐들어가지 않던 강교수가 신자유주의의 심장부라 할 강남정벌에 착수했다.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안고서 말이다.

 무릇 모든 전쟁에는 선전포고에 앞서 평화적 공존의 메시지가 전달되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화평제안을 받아들이면 그것대로 좋고, 설령 수락하지 않더라도 이쪽 처지에서는 충분한 개전명분이 축적되는 셈이다. 강남으로 쳐들어간 강준만. 사단이라면 적장이 이미 본진을 옮겼다는 데 있다. 강남부자들의 총사령관 격인 이명박 전임 서울시장은 현재 강남에 없다. 그는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나자마자 잽싸게 사령부를 강북으로 이동시켰다. KBS 인기드라마 ‘열아홉 순정’에서 허영심으로 똘똘 뭉친 대기업 회장님 사모님으로 출연하는 윤여정의 표현을 빌리면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함직한 종로구의 어느 낡은 기와집으로 이사한 것이다.

 적의 주력이 사라진 터이므로 남은 과제라고는 눈치 없이 본진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잔적을 소탕하는 일밖에 없다. 박근혜 대표, 여전히 강남에 산다는 소식이다. 박근혜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저주의 화근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비난이 아니다. 강남에 거주하는 부유한 독신녀 이미지다. 강금실씨가 이로 말미암아 5·31 지방선거에서 단단히 독박을 뒤집어썼었다. 대장이 강남에 거주하는 상황을 그냥 방치하고 있는 전략적 판단착오는 박근혜 캠프가 얼마나 형편없이 움직이고 있는지 여실히 반증하는 대목일 게다.

 강남으로 쳐들어가 이명박을 사로잡고 싶었던 강준만 교수는 박근혜를 혼내주는 걸로 만족해야 하리라. 강남에서 죽어라 머물렀던 정동영씨한테 정치적 사망진단서 발급하는 걸로 위안을 삼던지. 개념으로 무장한 이명박, 한발 늦게 개념을 장착한 강준만, 개념이 가물가물한 박근혜가 형성한 먹이사슬은 이토록 기괴하게 이어진다. 그러므로 내가 진작에 이명박이 강남에 서식하고 있을 때 사냥하자고 했거늘. 이래서 천재는 외로운 법인가?

 이명박씨가 강남에 베이스캠프를 계속 유지했다고 해도 그를 성공적으로 포획할 수 있었을지 솔직히 장담하기는 어렵다. 과거에 주워들었던 천문학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겠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천재라는 주장이 순식간에 사기로 판명되는구나.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했는데. 각설하고, 이론상으로 태양계에는 하나의 행성이 더 있어야 한단다. 순전히 이론으로는. 그러나 혹성이 자리해야 할 궤도는 소행성들로 가득하다. 별이 불의의 사고로 파괴되어 그렇다나.

 이론적으로 반강남 구도는 한나라당을 가볍게 격멸할 필승카드다. 허나 지금은 한나라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탈환할 확률이 높다. 이론과 실제가 정반대로 논다. 왜 그럴까? 파괴된 혹성처럼 민생개혁세력, 즉 반강남진영은 무수한 파편으로 흩어져 광막한 허공을 떠돌고 있는 까닭에서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위해 참으로 대형사고를 쳤다. 혜성처럼 나타나 정권을 잡더니만, 멀쩡한 혹성과 정말로 혜성같이 충돌해 개혁세력 전체를 산산조각을 냈다. 확실히 말이 씨가 되나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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